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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Jan 05. 2021

층층이 쌓인 오해

  새해 첫날, 저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큰 아들은 내가 마트 다녀온 사이에 층간소음으로 경비원이 왔다 간 사실을 알렸다. 보름 전쯤에도 층간소음 민원을 들었던 터라 엄청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여섯 살 막내딸은 소파 아니면 침대, 매트 위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퀴 의자도 신경 쓰며 꺼낼 정도로 조심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소음이 발생하는지 나조차도 궁금했다.

식사 준비를 멈추고 마스크만 챙겨 내려가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난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했고 그 집에서는 몇 시간씩 지속되는 쿵쿵 거리는 소리에 참기 힘들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내려온 것은 경비실 아저씨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면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아랫집에서 층간소음으로 힘든 것 인정해요. 예민하기보다는 분명 힘든 부분이 있으니 민원 제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소음이 힘든지 알면 저희 집에서 노력할게요. 서로 감정 상하며 지내고 싶지 않거든요. 소음이 들릴 때 부담 갖지 말고 직접 문자를 보내주세요”                                              


                                 



 15년 동안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층간소음 민원을 받아 본 적이 없다. 2년 7개월 전,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층간소음 민원을 들었다. 예전 살던 아파트는 시멘트 바닥에 장판을 깔아 지냈고 이사 온 아파트는 마룻바닥이라는 점이 차이다. 마룻바닥이 소음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식탁 아래 카펫, 의자 발 테니스 공, 실내 슬리퍼를 구입했고, 당시 네 살이었던 딸이 후다닥 뛰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다. 아이는 어렸고 의도치 않게 쿵쿵 거리는 소음을 유발했다.



2년 동안은 아주 가끔씩 층간소음 민원을 받았다. 막내딸은 성장하고 있었고 좀 더 조심하는 법을 배웠기에 층간소음은 곧 해결될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층간소음은  다시 우리 집 스트레스로 부상했다. 몇 달 전 층간소음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싶어 아랫집과  직접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후 한두 번 문자 연락을 받았고 우리는 좀 더 조심했으므로 소음이 줄어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사, 마룻바닥 공사도 알아봤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아랫집 사람은 소음으로, 우리는 행동제약으로 모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이 방 매트 깔기, 거실 카우치 소파 구입, 거실 매트 깔기, 실내화 신기, 청소기 흡입구에 헝겊 씌우기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지만 아랫집은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아랫집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온 식구는 어린 막내딸의 행동에 예민해졌고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딸은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절대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성이 매우 많으며 활동성이 적은 아이다. 그렇지만 안방에서 엄마를 부르며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 나오거나 걸을 때 쿵쿵 발 망치 소리도 내기에 층간소음 이야기를 들으면 막내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실내화를 신기고 살살 걸으라고 습관적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 두 오빠가 한 마디씩 거드는 날에는 자기도 조심하고 있다며 막내는 울먹인다.


아랫집에서는 나에게 직접 연락해도 소음이 줄지 않으니 불편함을 감수하며 문자 하는 것이 소용없다 여겼나 보다. 얼마 전부터 다시  경비원을 통해 층간소음 민원을 들었다. 경비원도 우리 집에 말을 전하는 게 미안했고 우리는 무슨 소음을 내는지 몰라 황당했으며 아이가 뛰지 않았으니 뛰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층간소음 민원을 받는 입장에서는 미안함도 있지만 수치심도 있다. 내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된 기분이 불쾌감을 유발한다. 아랫집에서는 자신들이 예민해서 유별나게 행동한다고 여겨질까 조심스러울 것이다. 아래층 사람들과 누수 문제로 이야기를 몇 번 나눈 적이 있다. 이웃에게 과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 주기를 원하지도 않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나 또한 위층의 아랫집으로서 층간 소음에 예민해질 때가 있다. 지속되는 소리가 아니면 그냥 지낼만하다. 만약 윗집 소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면 아마 나도 경비실 또는 메모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이웃인데 아파트 생활 매너를 모르는 사람 또는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서로 괴로운 듯했다. 실제 원인 유무와 상관없이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은 그 통증을 인정하는 간호사였던 직업 덕분일까? 난 소음으로 인한 아랫집 불편을 인정한다. 하지만 해결방법은 어렵다. 약간의 돈을 들여 해결할 수 있으면 차라리 쉬운 문제일 것이다.



                                 

저녁시간, 문자가 왔다.

“지금 윗집에서도 쿵쿵 소리가 들리나요?”

“아니요. 저희 집에서는 안 들려요. 두 아들은 책상 앞에 막내딸은 안방 화장실에 있는 상황이에요.”

다시 한번 우리 집을 둘러봤다. 세탁기, 식기세척기도 멈춘 상태다. 거실에서 컴퓨터 게임 중인 아들의 마우스 움직이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아들에게 잠시 멈춰보라 했다.

“혹시 지금도 들리나요?”

“아니요.”

다시 아들에게 마우스를 움직여보라 했다.

“지금은요?”

“다시 들려요”

허탈했다.

“마우스 소리인 것 같아요.”


두 아들이 배틀 그라운드 또는 오버워치 게임을 즐겨하는데 마우스 조작할 때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룻바닥을 통해 아랫집으로 전해지는 소음이 원인이었다. 아랫집에서는 당연히 어린아이가 위층에 살고 있으니 콩콩 뛰는 소리라 여겼고 불평할 때마다 우리는 안 뛰었다고 하니 화가 났을 것이다.

마우스 패드 아래 두꺼운 수건을 깔았더니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수건을 아래에 까니 패드가 밀려 마우스 조작이 잘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아랫집 눈치도 보이지만 코로나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사춘기 두 아들 눈치도 보인다. 방법을 바꾸었다. 대책을 세우는데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누명을 벗은 막내딸이었다.

막내딸이 층간소음의 주범이라 생각했기에 막내딸 행동반경에만 매트를 깔았는데 이제 원인이 달라졌으니 대책이 달라졌다. 책상 아래에 두꺼운 매트를 깔고 아랫집에 문자를 보내 소음이 들리지는 확인해달라고 했다.

“안 들려요.”

아랫집은 아이가 뛰는 거라고 오해해서 미안하고, 노력하고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난 아이들이 일 년 내내 엄청난 시간을 게임하며 지냈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죄송하다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꼭 나 때문은 아니었다고 아랫집에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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