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수능 만점자가 사교육 없이 공부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아들과 그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고1, 고2가 되는 아들들은 사교육 시간표대로 일상이 흐른다. 학원 수업에 따라 숙제를 하고 잠을 자고 깬다. 사교육 없는 2020년은 상상할 수 없다. 학교는 못가도 학원은 갈 수 있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못했지만(성적표 말고) 학원은 학습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했다. 학원, 학교 수업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온라인 학교 수업은 무의식으로 듣고, 온라인 학원 수업은 의식상태로 참여하는 아들을 지켜보았다. 학교는 무상이고 학원은 유상이라서 그럴까? 학교는 의무고, 학원은 선택이라서 그럴까?
#2.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아들을 영어 학원에 보냈다. 수학학원은 중학생이 되어서 몇 번의 시험을 치른 뒤 보냈다. 주위에 비해 많이 늦게 사교육에 발을 디뎠다. 대학 내내 고등학생 수학 과외를 했고 졸업 후 학원 선생님 경험이 있는 엄마는 절대 아들의 선생님이 될 수 없었다. 아이는 엄마를 선생님으로 볼 수 없다. 옆집 아들은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
지금은 밥을 해주고 잠을 재워주며 교육비를 입금시키는 엄마 역할에 만족한다.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다. 오늘도 고등학생 아들은 학원 숙제 중 풀리지 않는 수학 I 지수 문제를 들이민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또 풀면 풀린다. 기분이 좋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아들이 묻지 않는 것을 가르치려 들면 역효과 난다.
#3.
학교 선생님은 내신 성적 산출을 위해 무조건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을 세워야 하는 상대 평가자이다. 어떻게든 학생들이 풀지 못할 문제를 난이도별로 출제해야 한다. 고등학생 아들의 시험 문제 배점이 2.1, 2.2, 3.1처럼 소수점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학원 선생님은 한 달에 몇십만 원을 지불하는 학생들에게 내신등급을 잘 받도록 시험 준비를 시킨다. 아이들은 시험 전 엄청난 양의 문제를 푼다. 본인 학교는 물론 근처 학교 기출문제까지 푼다. 기본, 실력 수학정석을 푸는 것이면 충분했던 나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학원과 학교 선생님의 수 싸움에서 학생은 아바타 같다.
고등학생이 된 두 아들은 사교육에 더욱 의존한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절대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아들들은 말한다. 그런데 수능 만점자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했다고 한다. 난 아들 말을 믿는다. 평범한 두 아들의 말을.
우린 공부를 누구나 노력만 하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두 아들은 초등학생 시절 to do list를 만들어 하루를 살았고, 방학이면 선행학습보다 정리 학습을 했다. 독서와 수학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럭저럭 잘 따라왔던 아들. 하지만 중학교 공부는 달랐고 고등학교 공부는 또 다른 것 같다. 이제는 학원 수업에 의존하며 지내고 있다. 공부 재능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현재 그냥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가 공부했던 시절을 아들 공부에 갖다 붙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아들 말대로 “엄마 때와는 완전히 달라”를 인정한다.
난 비싼 돈을 들여 아들에게 잔소리할 시간을 줄이고, 엄마의 불안을 줄이고, 아들이 게임 대신할 것을 만들어주며, 누군가와 소통하게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자식의 시험성적까지 오르면 더 좋고. 아들에게 학원은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