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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Jan 22. 2021

겨울나무는 앙상하지 않다

“유레카~”

누가 나에게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책에서 읽어 본 적도 없는 사실을 삼십 대 후반 동네 가로수를 보며 스스로 발견했다. 봄이면 새잎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풍성한 초록 잎으로 존재감을 뽐내며 가을이면 단풍이 들었다가 추운 겨울엔 앙상한 나뭇가지로 보내는 줄 알았다.  나뭇가지가 가장 앙상한 때는 겨울이 아니였다.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가을이 가는구나 생각했을 때, 그때가 나뭇가지는 가장 앙상했다. 단 며칠만 지나면 나뭇가지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늦여름부터 겨울눈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몇십 년 동안 보고 다녔던 나무인데 왜 몰랐을까 싶다. 겨울 나무에 붙어있는 겨울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겨울눈은 빨리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낙엽이 떨어지자마자 나뭇가지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추운 겨울에도 겨울눈은 조금씩 성장했다. 어느 날 꽃과 잎을 세상 밖으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봄이라 말하기 위해서.




내 삶은 어떤지 생각한다. 나에게도 청춘(靑春)이라는 이십 대 시절이 있었다. 직장에서 돈을 벌기도 했고 아이를 낳고 생산적 활동이 활발했던 삼십 대도 있었다. 마흔 중반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준비하고 기분은 시원 섭섭하다. 그리고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겨울눈이 있을까? 나는 겨울눈을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을까? 얼핏 보면 생기 없는 겨울나무인데 다시 돌아올 봄을 꿈꾸고 있는가? 내 인생 제2의 봄은 언제부터일까?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쉽게 가지가 부러지듯 내 삶이 너무 삭막하여 허공에서 사라지지는 않을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다”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살면서 지치고 헤맬 때, 도저히 답을 모르는 것 같을 때 난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일까?”에서 답을 구하곤 한다. 반려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육아를 많이 떠올렸다. 오늘은 추운 겨울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버티는 가로수 나무의 겨울눈을 보며 나를 키우는 것을 이야기한다. 1월이지만 이른 봄 제일 먼저 꽃을 피울 목련나무 겨울눈은 눈에 띄게 커져있다. 봄이 오고 있구나.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한파가 닥쳐도 나무는 겨울눈을 잘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꽃으로 피어 어느 봄날 밤을 은은하게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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