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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Mar 28. 2021

말만 씨가 되는 것이 아니다

         

 봄이다. 뭔가 가벼워지고 싶다. 거실 가구와 물건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요리조리 치워 봐도 두 개의 PC, 두 개의 책상, 두 개의 의자는 거실 인테리어의 테러리스트다. 맘 같아서는 PC가 놓인 책상 하나를 없애고 싶은데 쉽지 않다. 

‘두 개의 책상 중 하나만 없어도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대형 모니터를 가진 PC 책상은 너무 튼튼한 원목이라 망가질 일도 없고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씨라 거실 책상 위치를 변경하려 움직여보는데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책상 다리가 힘없이 빠지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나사가 빠진 채 상판만 지탱하고 있었던 거다. 책상을 눕혀 빠진 다리를 맞추며 요리조리 고쳐봤다. 우리 집 물건 중 내가 고치지 못하면 더 이상 우리 집 물건이 될 수 없다. 혼자 낑낑대며 30분 동안 뚝딱뚝딱 해봤지만 소용없다. 회복불가 판정! 응급실 간호사 출신답게 결정은 늘 빠르다.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 바람이 불어온다.       




며칠 전 <물건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을 읽었다. 난 댓글을 달았다. 

“물건의 유효기간은 내 마음이 떠나기 전까지인가요?”     



 망가진 책상은 14년 전, 내가 처음으로 구입한 4인 식탁이었다. 진한 고동색의 튼튼한 원목식탁으로 당시 나에겐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내 취향을 고려해 큰 맘 먹고 구입한 물건이었다. 밥상, 술상, 책상의 역할을 하며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았던 식탁. 3년 전 이사 올 때, 늘어난 식구에 맞춰 6인용 식탁을 새로 구입하면서 사용하던 4인용 식탁을 버리지 않고 함께 이사 왔다. 어떤 날은 창가에 두어 화분을 올려놓고 한강을 내다보며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테이블이 되어 주기도 했다. 작년부터 테이블은 대형 모니터와 본체를 올려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용도로 써도 만족스러운 물건이었다. 며칠 전 어지러운 거실을 지켜보며 잠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테이블이 거실을 너무 많이 잡아먹네. 답답해 보인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오늘 아침, 정든 식탁이며 책상이었던 그 물건은 스스로 이별을 고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미안했다. 말만 씨가 되는 게 아니구나. 마음만으로도 씨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는 우연의 일치라 이야기할 것이다. 내 마음은 어디든지 깃들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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