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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Sep 22. 2021

남편이 말하는 나의 매력

사흘이나 밀렸다. 어린 시절 방학 일기 몰아 쓰듯 셀프 인터뷰 질문에 답을 써 내려갔다. 질문하나에 덜컥 브레이크가 걸린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당신의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인가요?” 내 생각을 써 내려가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하려니 쉽지 않다. 타인의 생각을 예측한다는 것은 이미 내 생각이 많이 포함된 것 같아 질문의 의도와 멀어진 듯하다. 고2 큰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매력이나 장점이 뭐야?”

“몰라, 관심 없어.”

고1 둘째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오픈 마인드? 아닌데......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결국 두 아들로부터 엄마의 매력을 듣는 것은 실패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이 생각하는 내 매력이나 장점은 뭐야?”

남편이 문자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시간적 여유 있을 때 셀프 인터뷰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 독서 모임 단톡방에도 같은 질문을 보냈다. 그 사이 남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답변 대신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나에게 묻는다. 셀프 인터뷰 질문이라는 말 대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 장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두 아들에게 물었는데 아빠에게 물어보라 했다는 상황만 대답했다. 남편은 신중하게 답을 적으려는 듯 빨리 문자가 오지 않는다. 잠시 후 남편의 답변이 도착했다.

“의욕, 에너지”

독서모임 친구들도 그 사이에 답을 주었다.

“열정, 성실성, 몰입”

남편과 독서모임 친구들의 답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내 장점과 결이 같다. 그런데 남편의 단어 선택이 유독 목에 탁 걸리는 느낌이다. 친구들은 긍정적 뉘앙스의 단어를 선택했다면 남편은 애써 중립적인 단어를 선택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답 문자를 남겼다.

“좀 과할 때가 있지요. 그래서 옆 사람이 좀 피곤하다는 것도 나이 들면서 알기 시작했어. 알려줘서 고마워!”

 

 

 

목에 걸린 남편의 답을 곱씹어 본다. 몇 가지가 떠오른다. 함안 고향집 마당 수돗가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집을 막 지었을 무렵 시어머니는 생명력 강하고 향이 좋은 박하(애플 민트) 한 무더기를 심었다. 몇 년 후 박하가 화단 전체를 덮었다. 그곳에 심은 다른 꽃들이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세력이 엄청났다. 시어머니는 그냥 두기엔 번식력이 무섭다고 여겼고 뽑아내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향집에 머무는 이틀 동안 박하 화단을 정리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면 팔다리로 옮겨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호미를 들고 슬슬 시동을 거는데 시어머니가 힘들다고 극구 말린다. 환갑 넘은 아주버님도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그냥 두라 한다. 나를 아는 남편은 말을 아낀다. 어차피 말려도 결국 원하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고 마음먹은 사람이 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호미로 박하 뿌리를 캐서 뽑아냈다. 사람들이 말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호락호락하게 뽑히지 않는다. 여전히 난 이 녀석과 한 판 할 각오가 돼 있다.

“아무도 말리지 마세요. 아주버님도 어머님도 저 쳐다보지도 마세요. 저 말려도 할 거예요.” 아주버님은 포기한 듯 헛웃음을 보이며 자리를 피했다.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하지 말라고 옆에서 말린다. 오늘 뽑고야 말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수돗가 긴 호수를 화단으로 옮겨 물을 틀었다. 땅이 젖으니 한결 호미질이 쉬워진다. 박하의 모든 뿌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 얕은 땅속 뿌리를 캐어냈을 때는 그것이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땅속 깊이 칡뿌리 같은 단단한 원뿌리가 있었다. 독한 놈들.......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호미질을 하고 두 손으로 뿌리를 잡아당겨 뽑느라 진흙이 옷과 얼굴에 모두 튀었다. 이제 멈출 수 없다. 원뿌리를 캐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 수고가 헛일이 되기에 끝을 봐야 했다. 요가 수련이라 생각하고 땀을 흘렸다. 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맘이 불편했을 것이다. 같이 도우려 덤벼들자니 엄두가 나지 않고 혼자 일하게 두자니 맘이 쓰이는 상황이다. 솔직히 열정이라기보다는 남들 눈에는 의욕 과다, 에너지 과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틀 전 박하 화단 정리만 생각난 것이 아니다. 남편이 보낸 답을 동아줄 삼아 내 머릿속은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 응급실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같은 환자를 매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매일이 새롭다. 중증 환자를 집중 간호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흘렀다. 응급처치가 끝난 후 환자가  중환자실로 입원하면 그제야 좀 배고픈 것도,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생각난다. 응급 환자에게 순간적으로 에너지 폭발하여 집중하고 잠시 숨을 고를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중독성 있다. 평정심의 에너지로 한결같이 환자를 돌봐야 하는 외래나 병동간호와는 분명 다르다. 내가 10년 동안 응급실 근무를 사랑했던 이유를 남편의 ‘의욕, 에너지’ 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되는 순간이다. 그뿐인가. 강사로 일할 때 난 강의를 연극 무대에 비유하곤 했다. 에너지를 집중시켜 몰입하여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려 했다. 만족스러운 수업이 끝난 후 행복감을 자주 느꼈다. 남편이 말한 의욕, 에너지를 폭발하여 강의 시간에 사용한 경험으로 12년 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남편 말대로 난 에너지와 의욕 있는 사람이라 하고 싶은 일과 만나면 시너지가 폭발했다. 난 열심히 하고 잘 하려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깥일을 그만두었으니......

 

 

 

나의 시계는 계속 거꾸로 돌아갔다. 응급실에서, 강의실에서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나에게 전업주부와 육아는 너무 밋밋했다. 가사와 육아만큼 똑같은 것을 오랫동안 반복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 사실 난 지금은 가사 일이 재밌다. 내가 주도적으로 김장을 하고, 감자탕을 끓여 내고, 장을 담그면서부터다. 남들은 힘들다고 말리는 그 일을 할 때 난 오히려 행복했다. 의욕, 에너지라는 단어가 목에 탁 걸린 이유를 육아에서 발견했다. 나의 에너지, 의욕이 첫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나와 기질이 다른 첫째에게 엄마의 의욕이, 에너지가 얼마나 숨 막혔을까?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고 사직 후 집에 있으면서 그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아부으니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을까? 육아를 하며 그나마 강사 일을 병행했던 것은 나보다 아이에게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육아하면서 강의는 나의 숨구멍이었다. 돌이켜보니 아이에게도 숨구멍이었다.

 

 

 

남편은 날 제대로 꿰뚫고 있는 듯하다. 나의 장점을 열정이라 답하지 않고 의욕, 에너지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인 선택일지라도. 남편은 오랜 시간 내 옆을 지키면서 바라보거나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먹어도 왜 끝장을 볼 사람처럼 마시냐며 남편은 나에게 싫은 내색을 했다. 난 육아하며 술 마실 기회가 없었기에 시공간이 허락하면 맘껏 마시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난 평정심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의욕과 에너지를 폭발해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다. 결혼 후 육아를 하며 그러지 못했던 내 젊은 날에 대한 안쓰러움도 함께 밀려온다.

 

 

시간은 흘렀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이와  삶을 분리했고  에너지는  삶에 퍼붓고 있다. 글쓰기,  읽기, 요가, 플루트로 에너지를 폭발한  남은 에너지로 가사와 육아를 한다. 덕분에 힘을  육아가 되었고 19 동안 해온 가사 일은 베테랑이 되어 남은 에너지로 해도 충분하다.  달에   가구를 옮겨가며 배치를 바꾸는 것도 어쩌면 넘쳐나는 에너지를 애먼 ,  아이나 남편에게 화로 내뿜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기억해야겠다.  에너지와 의욕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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