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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Nov 14. 2021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김장하기

 나는 1남 4녀 중 둘째다. 셋째 여동생은 백두대간 수목원 근처에서 배추와 고추 농사를 짓는다. 올해도 김장을 위해 여동생 집으로 모였다. 오남매 맏이인 언니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을 알려왔고 나를 포함한 세 자매의 남편들은 생업을 위해 김장에서 제외되었다. 김장 모임의 기준점은 당연히 엄마다. 농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엄마와 여동생은 9월에는 밭에 씨를 뿌렸을 것이고 배추를 수확하기까지 꾸준히 들여다봤을 것이다. 올해는 유독 배추 무름병이 심하다는 것을 서울 사는 내가 알 정도니 엄마는 김장 배추가 잘못 될까 봐 애가 쓰였을 것이다. 하나하나 딴 고추를 햇빛에서 말린다고 늦여름부터 몇 번을 걷었다 펼쳤다 했을 것이다. 무, 쪽파, 청갓까지 모두 직접 기른 것들이다. 2년 전 무릎 수술을 한 엄마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엄마는 하고야 만다.

 

 

토요일이 김장날이다. 목요일부터 엄마와 여동생은 배추를 절였다. 김장을 직접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배추 절이고 씻는 것이 김장 노동의 반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그 힘듦을 덜어주고 싶어 서둘러 금요일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세상일이 내 맘 같지 않다. 둘째 아이 고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밀접 접촉 여부 상관없이 1학년 학생 전체가 검사 대상자가 되었다. 둘째가 음성 결과를 받아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 금요일 아침 9시쯤 음성 결과를 받고 드디어 출발이다.

 

 

가락시장에 들러 생새우와 배를 사서 드디어 출발. 3시간을 달려 드디어 동생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절인 배추를 이미 모두 씻어놓은 상태다. 속상했다. 내가 아무리 부모를 챙기려 애를 써도 서울서 힘들여 내려오는 딸을 생각하는 엄마 속을 좇아갈 수 없다. 셋째 동생은 인근 소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과 지내다 주말에 농사짓는 집으로 온다. 그동안의 이 집 온기는 엄마 몫이다. 밭일 중 힘든 것은 여동생 몫이나 소소한 밭일은 엄마가 공을 들이고 있다. 김장을 위한 배추, 무, 갓, 쪽파는 그렇게 길러졌다. 셋째와 넷째는 직장과 아이들 학교가 끝나야 도착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라도 더 서두르고 싶었지만 결국 나도 오후 2시가 되어야 엄마에게 도착했다. 엄마가 서둘러 배추를 씻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배추를 소금에 푹 절이는 것을 딸들은 싫어한다. 김치의 아삭한 맛이 덜하고 덜 짜게 먹고 싶어 하는 젊은 자식들의 취향을 엄마가 따라준 것이다. 말로는 '내가 할게'라면서 정작 행동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것은 또 까탈스러운 자식들. 우리집 자식이나, 엄마집 자식이나 매 한가지다.

 

 

나도 서둘러 다른 재료 준비를 했다. 일을 하다 보니 나는 따뜻한 실내에서 일하고 엄마는 쌀쌀한 바깥에서 일을 한다. 마흔이 넘은 자식은 끊임없이 엄마의 배려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 배추 130포기, 고춧가루 25,  11, 새우젓 7kg, 엄마가 직접 담근 멸치 액젓 1L, 까나리 액젓 2.5kg, 황석어젓 5kg 달인 , 생강   3.5,  15, 생새우 9kg, 마늘 9kg, 양파 10, 육수(디포리, 멸치, 다시마, 황태, , 양파 등등) 3, , 쪽파까지 재료 준비가 끝났다. 이제 절인 배추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배추 양이 많으니  빠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하룻밤이 필요하다.

 

 

저녁이 되니 셋째와 넷째 여동생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잠시 2층에 올려 보내고 오랜만에 엄마, 아빠, 세 자매가 모여 밥상에 둘러앉았다. 결혼하기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이다. 오랜만에 다섯 명이 둘러앉아 수다를 늘어놓는다. 자식들이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엄마, 아빠는 들어준다. 아빠의 옛이야기도 시작된다. 광부였던 아빠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살면서 수십 번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아빠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줘야 할 것같다. 광산 갱도가 무너지고 함께 퇴근하던 동료가 갱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목격한 아빠에겐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용어조차 없던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겪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아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몰라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잠든 어린 자식들을 보면 다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아빠. 당시 아빠의 나이가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일 것이다. 어쩌면 김장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아빠와 엄마가 나이 들수록 자식들은 귀를 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수없이 이야기해야 그나마 아빠의 상처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젊은 아빠,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위로를 건네고 싶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두 여동생과 까만 밤, 별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조용한 산동네라 별도 잘 보인다. 별을 보다가 갑자기 우린 울진 밤바다를 보러 갔다. 산촌에서 한 시간만 차로 달리면 바닷가에 도착하다니 놀랍다. 바닷가에서는 10분 정도 머물렀을까? 사실 우리에겐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차 안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 자식 이야기, 결혼 이야기, 부모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자라면서 받았던 상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웃음과 울컥함이 섞인 차 안의 공기는 따뜻했다. 운전하며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떠올랐다. 살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을 가진 느낌이다.

 

 

드디어 김장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7시부터 온 가족이 분주하다. 작년 김장은 함께 모여 각자 취향에 따라 김칫소를 만들었다. 젓갈을 넉넉히 쓰는 사람, 무를 더 갈아 넣는 사람, 자기만의 레시피로 각자 만들었다. 엄마는 셋째, 넷째, 막내까지의 김장양념을 도맡았고, 언니와 난 각자 자기 가족들 입맛에 맞춰 양념을 준비했다. 난 김장 때 1년 김치를 한다. 더운 여름에 배추김치를 담그는 것은 힘들며, 여름 배추와 무는 맛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 년 김치 맛을 좌우하므로 김장 양념에 엄청 공을 들인다. 올해도 당연히 각자 양념을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모든 김치 양념을 맡겼다. 언니가 참석하지 않은 김장에서 둘째인 나에게 130포기의 김치 양념의 총대를 넘긴 것이다. 40포기 정도의 김장 양념은 혼자 만든 지 6년이 넘었지만 130포기의 양념이라니 감이 없다. 겁이 나서 엄마에게 은근슬쩍 책임을 넘겨본다.

“엄마가 해야지.”

“너희가 맛있게 잘 하더라.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춰서 해.”

작년에 다른 가족들이 내가 한 양념이 더 맛있다고 해서 속상했나싶어 맘이 쓰인다. 올해는 엄마 양념이 맛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난생처음 130포기 김장 양념을 만들었다. 엄마와 넷째는 야채를 썰고, 셋째는 무한 믹서기를 사용해 온갖 재료들을 갈았다. 난 육수에 고춧가루를 풀면서 양념 재료를 하나씩 더해본다.

‘이 맛이던가? 아닌가? 뭐가 부족하지?’

양념은 아주 깊은 빨강 고무 통, 어린아이 다섯은 들어가서 목욕해도 될 엄청난 크기의 통에 준비했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는 도저히 섞을 수 없는 양이라 긴 손잡이가 달린 냄비를 주걱 대신하여 양념을 섞었다. 넷째 여동생이 골고루 양념을 섞으면 난 옆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넣으며 간을 맞춘다.

“그래 이 맛이야!”

식구들이 돌아가며 양념 맛을 본다. 나에게 양념을 일임한 엄마도 맛있다며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다행이다.

일흔 넘은 아빠는 마당에서 절인 배추를 열심히 거실로 나른다. 세 자매는 배추에 김칫소를 버무려 각자 김치 통에 담는다. 바닥에 오래 앉기 힘든 엄마는 열심히 김치 통을 바꿔주고 동생네 김치냉장고를 채운다. 한참 버무리다 보니 막내 남동생 부부가 첫째 언니의 김치통을 갖고 도착했다. 사실 남동생 네는 아이가 어리고 이사를 앞두고 있어 김장 김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큰 누나의 김치 배달을 자청해서 두 시간을 달려왔다. 고맙다. 올해는 김장하기 힘든 상황이니 좀 얻어먹어야겠다는 언니는 수육 사 먹으라며 내게 돈을 부쳤다. 덥석 받았다. 사실, 언니는 부모, 형제에게도 뭔가를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언니가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동생은 기분이 좋다. 언니의 취향에 맞춰 김치통을 채웠고 수육은 우리 뱃속에 채웠다. 올해 김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언니는 동생에게, 동생은 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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