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초등학교 시절 내 별명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들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너는 어릴 때 별명이 뭐였어?”
이 질문에 내 별명을 이야기하면 열에 아홉은 되묻는다.
“왜?”
그럼 나는 뭔가 뜻드미지근한 목소리로,
“어.. 그게, 나 이름에 혜가 들어가잖아. 그래서 해파리라던데?” 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이유가 이게 맞는지 알 수 없어 찜찜한 기분으로.
어린 시절 별명은 이유가 없다. 이유는 별명이 생긴 후에 어떤 것이든 가져다 붙여놓은 것일 뿐.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스꽝스러운 호칭이 다른 친구들의 빅 재미를 사게 되면 그 때부터 그 별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린 시절 별명에는 아이들 귀에 스치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똥’, ‘개’와 같은 말이 들어가거나 ‘빡, 찐’과 같은 된소리가 들어가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뭔가 특이하고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생명체인 해파리가 선택된 것이고.
이런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꼭 가져야 할 자세가 무신경함이다. 혹여라도 누군가 “똥자루!”하고 자신을 부르는 말에 눈썹을 휘며 동공을 키우고 큰 소리로 대꾸했다가는 평생 그 별명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허나 당시 나는 이 진리를 깨우치기엔 너무 어렸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니 초등학교에서 함께 중고등학교를 올라간 친구들과 흩어지게 될 때까지 나는 해파리로 불렸다. 초중고 친구들과 더이상의 접점이 없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흐물흐물 해파리와 이별하였다.
대학 3학년, 국어 글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수필 쓰기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은 학교 내에서 아주 악명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셨다. 국어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온다. 교수님께서는 매주 수필 쓰기 과제를 내 주셨는데 그 과제를 통과하는 과정이 매우 혹독했다.
수필은 컴퓨터를 이용해 워드 작성을 하는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종이에 글을 써와야 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궁서체 글자를 플러스 펜으로 비포 종이에 가득 한 자 한 자 글씨를 새겨 넣었다. 자음과 모음의 크기가 균형이 맞지 않거나, 모음의 세로획, 가로획이 반듯하지 않고 기울어지거나, 한 줄의 문장이 수평을 이루지 않고 아래로 늘어지게 되면 어김없이 빨간 선이 죽죽 그어져 수필은 쓰레기통 행이 되곤 했다.
글씨 뿐만 아니라 수필에 등장하는 단어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통해서’라는 표현은 일제식 표현이니까 사용해서는 안되는 말이고, ‘같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지 못하는 비겁한 표현이라며 이런 글자가 보이기만 하면 또다시 종이엔 빨간 동그라미가 여기저기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이런 글자가 한 두개가 아니라는 거. 수필을 한 번에 통과하기란 천지개벽 할 일이었고, 한 두번의 퇴짜는 행복한 수준이었다. 보통 네다섯번의 퇴짜를 맡고 나서야 통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 통과를 받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는 수업 시작 종이 울림과 동시에 인쇄물을 나누어 주셨다. 종이는 과제로 내준 수필 중에서 글 한 편을 복사한 것이었다. 어떤 글일까 궁금해하며 앞에서 넘어온 종이를 받은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 수필은 내 글이었다. 내가 지난 번 과제로 제출한 글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 글을…?’
종이가 모두에게 돌아가고 교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내 글을 읽어내려가신다. 내가 쓴 글을 모두 함께 듣고, 보고, 읽는 동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
글을 읽던 와중 갑자기 교수님께서 물으신다.
“이거, 글 쓴 학생? 누구지?”
“아… 저… 전데요.”
“그래? 학생 앞으로 나와봐.”
숨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교실, 내게 쏠린 친구들의 수많은 눈을 헤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 녀석, 걷는 것도 딱 벌레구만.”
그 글의 제목은 벌레, 그 이후로 내 별명은 벌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