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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Jan 04. 2022

하루를 행복으로 만드는 비법




지난 한 해 동안 즐겁게 한 일을 생각해보자며 오랜 시간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글쓰기. 하루 한두 시간의 글 쓰는 시간, 글을 쓰고 블로그 글 게시하기를 인증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 내 글을 어떻게 봐줄까 걱정하고 고민하며 설레었던, 카톡 채팅방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반응을 살피었던 그 시간들이었다. 행복했다. 그 외에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정의 다른 표현이다.



일을 쉬고 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과는 집안일이다. 하지만 일을 핑계로 집안일을 외면했던 지난날의 내가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리는 없었다. 일을 쉬면서도 내가 마주해야 하는 다양한 영역의 집안일은 미룰 수 있는 대로 미루고 피할 수 있는 대로 피한다. 그 첫 번째가 청소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을 청소하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될 최소한의 영역을 정리하고 먼지를 쓸어낸다. 협소한 땅에 꽉 끼어 맞춰 지어낸 삼층 주택에서 꼭 청소해야만 하는 층수를 선택한다. 오늘 청소할 곳은 삼일 동안 쌓인 머리카락이 불쾌하게 밟히는 2층이다. 17평도 채 안 되는 면적을 청소기로 쓱 밀어주면 끝. 바닥을 닦아 낸 과거를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청소기 파워모드를 작동하는 것으로 물걸레 질을 대신한다. 다음 집안일은 요리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여독이 풀리지 않아 더 그렇겠지 하는 마음에 이번 주는 요리도 접어두었다. 요 며칠간을 배달 음식에 기대어 주방의 강제 휴식기를 가졌다. 마지막은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아이들 공부 봐주기.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좋아하는 카페로 피신을 간다. 다녀와서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 저녁을 먹고 나서는 엄마도 좀 쉬자는 핑계를 대며 이 시간을 좀 더 미루고 미룬다. 핑곗거리가 떨어져서야 문제집을 함께 봐주고 영어 책을 함께 읽어주고 단어 외우기를 확인해준다. 가끔은 스스로 해야 하지 않겠냐며 나의 일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거나 오늘은 특별히 휴식 시간을 주겠다며 다음 날로 이 시간을 유예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한 어느 날은 어지러운 집 안의 물건을 제 자리에 정리하면서 차분해지는 마음에 즐거이 청소를 하게 된다. 점심을 거른 어느 날 유독 구미가 당기는 음식을 요리하는 순간에는 재료를 다듬는 손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새로 산 문제집을 펴는 날에는 의욕에 가득 차 먼저 나서 아이들을 불러낸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는 문장을 쥐어짜는 고통으로 노트북을 쳐다보지 않게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 항상 좋거나 싫은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좋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외면하고 싶고 어느 날에는 너무 싫다가도 어떤 찰나에는 그 일이 꽤 괜찮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날의 긍정의 신호가 오는 일을 찾는다. 이 신호는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반복된 횟수에 따라 다양한 변인으로 바뀌는 변덕스러운 녀석이다. 다행인 것은 시시각각 매일매일 바뀌는 수준의 변덕이 아니라는 것. 보통 일주일 정도,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3일 정도의 유지기를 가진다. 내 마음에 솔직하게 답하며 변화 기를 겪는 순간을 잘 잡아내어 오늘의 즐거운 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잘 감싸 쥔다. 그리고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 지금 이 일을 하고 싶어.’라는 마음이 뿜어져 나오는 일부터. ‘이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하는 일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오늘의 일과를 시작한다.



글이 너무 쓰고 싶은 날이었다. 요즘 들어 평소보다 글이 수월하게 써져서 인지, 최근 시작한 블로그에 글 게시하기 인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빨리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이었다. 아침에 눈곱만 떼고 일어나 거실에 노트북을 들고 내려갔다. 노트북을 바닥에 놓고 쿠션을 베고 엎드려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 쓰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내 글을 블로그에 게시하고 시계를 보니 훌쩍 두 시간이 지나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행복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행복감이 천천히 흐르게 한다.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 그 하루가 행복하다. 행복의 여운이 길게 늘어져 그 하루가 된다. 글 한편 쓴 날의 청소는 좀 더 보람되고 글 한편 쓴 날의 요리는 그 맛이 좀 더 기대된다. 내가 즐거운 일을 맛보고 난 뒤의 청소와 요리는 어느 다른 날보다도 조금은 덜 피곤하고 덜 지루한 날의 일과가 된다. 그렇게 보낸 하루는 ‘오늘 꽤 괜찮은 하루이지 않았어? 즐거웠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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