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처_꿈이 내게 말을 건넸다.

3. 우연 같은 필연으로 빚어지는 삶

by 천지랄

교직 7년 차,

네 번째 학교에서 신설 특수학급 하나, 기간제 교사 한 명으로 시작해,

이듬해에는 세 개 학급과 기간제 교사 두 명, 특수보조교사 한 명과 함께

36명의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을 지도했다.

특수학급은 학교 안의 또 다른 학교처럼 운영되기에, 일은 늘 많은 편이었다.


교직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일보다 사람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어 "아이가 사라졌으니 찾아달라"라고 전화하는 학부모,

"나도 교사해 봐서 아는데, 하는 일이 뭐가 있냐"며 방과 후 수업을 더 늘려달라는 학부모,

"우리 애들이 아니면 어떻게 교사로 밥 벌어먹고 사시겠어요"라고 말하는 학부모,

"특수교사라 일을 특수하게 하느냐"는 교감,

"내년에 교장으로 나가야 하니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1년만 버텨 달라'던 장학사.


학생들에게 물리고 뜯기고 걷어차이거나, 대소변 기저귀를 가는 등의 일은 특수교사에게는 디폴트값이다.

'모자란 아이들을 왜 밖으로 데리고 다니느냐'는 낯선 시선은 덤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보다 크고 넓은 세상을 더 자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안팎으로부터 가해진 과도한 의무와 책임, 기대와 비난, 조롱과 외면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마음의 힘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무시하니, 몸이 먼저 반응해 왔다.

학교에 있는 내내 두통이 이어지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이 견디기 어려웠다.

병가 휴직을 냈지만, '정교사가 기간제 둘만 남겨두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들려왔다.

휴직 중에도 학교 일로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1년에 두 번 있는 유급 방학에 퇴직금과 연금.
머리로 생각하면 그만둘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머리와 몸의 시소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마다 살려달라 외치며 버티던 어느 날,

그 꿈을 꾸었다.


교직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3년 차부터였다.

그때는 근무연차 홀수년마다 찾아온다는 권태기쯤으로 여겼다.


아빠는 "여자에게 교직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냐"며, 머리가 어떻게 된 아니냐고 하셨다.

노량진 출신이 아니라 교직이 우습게 보이나 보다며 비아냥대는 동료들도 있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이 길을, 왜 내 몸과 마음은 이토록 거부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길래 이 모양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별자리차트 리딩이란 걸 알게 됐다.


내 차트 리딩을 들은 후,

나와 내 인생을 더 이해하고 싶어, 별자리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 별자리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무렵,

꿈에서 정 선생님을 만났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로는 뵌 적이 없는 분이었다.

정 선생님은 한국에 별자리차트 리딩을 처음 들여온 분이라고 했다.


그분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꿈속의 나는 그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안다는 듯, 차분히 앉아 있었다.

곧, 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리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인생지도를 가지고, 그 지도대로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모인 자리입니다.

모의인생을 다 살고 나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각자의 인생이 어땠는지 소감을 나눌 것입니다.

제가 곧 여러분에게 지도를 한 장씩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이 지도는 각자에 맞게 맞춤 제작된 것이므로, 같은 지도는 한 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인생이 끝나면 영화 엔딩처럼 [The End]라는 이정표가 보일 겁니다. 그때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 내 손바닥 위에 두루마리처럼 말린 종이 한 장이 놓였다.

두꺼운 한지 같은 느낌의 지도로, 가장자리는 이미 너덜너덜했다.


'이게 나만의 인생지도라는 거지?'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끈을 풀어 지도를 펼치는 순간,

지도가 사라져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지도를 따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빈 손바닥만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맑고 차가운 금속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지도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일단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눈앞에 두 명의 전사가 보였다.

갑옷을 입은 비장한 모습의 두 사람은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둘은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칼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서로의 칼에 찔려, 바닥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두 전사는 동시에 쓰러졌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지도를 다시 달라고 부탁해 볼까?'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어릿광대와 그를 둘러싼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하얀 바탕에 빨간 줄무늬가 그려진 피에로 복장,

빨간 코와 고깔콘 모자를 쓴 어릿광대가

커다란 외발 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을 하고 있었다.

피에로는 신들린 듯 외발 자전거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묘기를 부렸다.

그리고 달콤한 솜사탕을 끝도 없이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이들 틈에 섞여 묘기를 보고 있자니,

방금 보았던 두 전사의 싸움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을 자극했다.


허기를 느끼며 냄새를 따라가자, 울창한 숲 속에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곧게 뻗은 나무들과 형형색색 꽃들로 둘러싸인 그 집은

빵과 과자, 쿠키와 케이크로 지어진 집이었다.


사람들은 지붕과 기둥, 창문까지 마음대로 뜯어먹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어대도 집은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 집을 뜯어먹기 시작했는데,

살면서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맛들이 입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때그때 들려오는 소리나 냄새를 좇아,

그저 감각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한 경험들을 마치 처음 겪는 것인 양,

어린아이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관중석 제1열에서 본 칼싸움은 끔찍했지만,

어릿광대의 묘기와 빵으로 지어진 집에서의 경험은

앞으로의 여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뒤로 끝없는 들판을 걷고, 구불한 강줄기를 건넜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높은 산 봉우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음을 알게 된 것은

[The End]라는 푯말을 발견했을 때였다.

걸어온 길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처음에 모였던 그 장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장기나 체스판의 말을 집어 옮기듯,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목덜미를 잡아 옮겨놓은 듯했다.


"다들 돌아오셨죠?

이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은 어떤 인생을 살았고, 그 인생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정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 옆에 앉은 사람부터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제가 경험한 인생이 저의 인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 제 인생 지도를 받고 펼쳐본 순간, 지도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거든요.

선생님께 다시 돌아올 용기가 없어, 감각이 이끄는 대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 말씀하신 푯말을 보고 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지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질책을 각오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지랄씨의 인생 지도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도가 없이 사는 인생이 천 지랄씨의 인생이란 말입니다.

지랄 씨는 '내가 가는 대로 길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 지도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순간순간 만나는 삶의 사건들을 충분히 경험하면 되는 인생이니,

본인이 갖고 오신 대로 잘 사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단단히 묶여있던 실타래가 스르르 풀려나갔다.

'그랬구나...

내 인생에 정해진 길은 애초에 없었구나.

내가 옳다고 믿는 그 길을 따라,

나만의 인생 지도를 만들어 가면 되는 거였구나.'


그동안 나는 내 마음만 바꾸면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몸과 마음은 내 이성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불면의 밤은 길어지고, 몸과 마음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 아픈 절망과 좌절의 끝에서 꾼 꿈.


사방이 어둡고 고요했던 그 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모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나의 발악 같은 질문에 답을 들려준 신과 우주,

그리고 나를 이 땅에 보낸 또 다른 나에게,

무엇보다, 그들을 끝까지 붙잡고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내던 내게,

꼭 필요한 답이, 꿈을 통해 찾아왔다.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고,

내 지친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 같았던 꿈.


희미하고 뿌옇던 머릿속 짙은 안개가 걷히고,

짧고 얕게만 이어지던 숨이 길게 뻗어 나갔다.

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