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었을까.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by 천지랄

살면서 한 번쯤, 혹은 더 자주

평온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어릴 때 누군가 내게 학교를 왜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재미로 다닌다고 말했을 만큼, 친구가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교실문을 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던 친구들.

그 얼굴들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던 중2 어느 봄날,

내 세상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었던 우리는,

학교 교실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가는 순간까지, 마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화장실을 갈 때도, 점심 도시락을 먹고 매점으로 달려가 츄파춥스를 사 먹을 때도,

우리는 늘 함께였다.


어떤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또 어떤 친구는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공부를 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시험을 망쳐 울거나,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았다는 친구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 경우엔 숙제를 했냐는 엄마의 질문에

하지 않아도 했다고 했고, 선생님께 혼이 나면 그만이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오기’라는 게 있다.

하지만 내게 가난은 그저 약간의 불편함일 뿐,

지긋지긋하거나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켜 오기를 발동하게 하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나는 이미 가난함이라는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추운 겨울이면 냄비에 뜨거운 물을 끓여 집 밖에 있는 화장실로 들고 갔다.

화장실 바닥에 뜨거운 물을 뿌리고 나서야 겨우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안 그러면 꽁꽁 얼어붙은 바닥에 그대로 미끄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뜨겁고 차가운 물을 막 섞은 세숫대야에 손을 담그면

따뜻한지 차가운 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알싸한 통증이 올라왔다. 겨울에 씻는 일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여름에는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허락도 없이 우리 집 화장실을 쓰기도 했다.

문을 열었는데 낯선 사람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섬뜩함을 몇 번 겪고 나니 그것도 무덤덤해졌다.

가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던 내가 진심으로 생각했던 한 가지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었다.


봄 햇살이 먼지 위에서 춤추던 어느 아침,

표정이 풍부해서 표정천재라고 불리던 한 친구가 평소와 다른 싸늘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야, 천지랄. 너는 어떻게 친구가 속상해하는데 그게 짜증 난다고 할 수 있어? 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전날 우리는 봄소풍을 갔다.

한 친구의 엄마가 소풍이라 당시 유행하던 모카신을 사주셨다. 예쁜 리본 장식이 달린 신발이었다.

소풍 중, 그 리본이 떨어진 걸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 친구는 소풍 내내 짜증을 냈다.

그 모습을 거슬려 한 표정천재 친구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솔직히 자기가 잃어버린 건데 왜 저렇게 구는지 모르겠어.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지 않냐?"

좀처럼 새 물건을 가져본 적 없던 나는 그 친구의 속상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말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그 친구가 속상한 마음은 이해가 되니 조금만 참아주자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친구의 험담을 한 사람은 내가 되어 있었다.

표정천재는 밤새 자기 스스로를 설득했는지,

내 앞에서도 미안함이나 죄책감이란 찾아볼 수 없는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말했다며?” 새 신발의 주인인 친구가 말했다.

다른 네 명의 친구들도 표정천재의 말을 믿는 듯, 나를 쏘아보기만 했다.

단 한 명도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은 내가 원하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딱히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는 아무하고나 친구가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친구가 사라지자, 학교에서의 시간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힘겹게 걸어가는 달팽이만큼 더디게 흘러갔다.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같이 놀자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이동하고, 혼자 쉬는 시간을 보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도 많았다.

책상만 멍하니 바라보거나 책상에 엎드려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자다가 목과 어깨가 아파올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많은데 공부나 해볼까?’

국어 교과서를 읽다 질리면 영어 교과서를 읽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냥 읽었다.

읽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 몇 주를 보냈다.


그러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 문장을 읽으면서 뒷 문장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앞 단원에서 읽은 내용이 한참 뒤에 나오는 단원의 내용과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고물상에서 사 온 헌 문제집을 지우개로 지워가며 풀기 시작했다.

문제집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풀면서 다 맞을 때까지 문제집을 여러 번 반복해 풀다 보니,

문제에는 ‘출제자의 의도’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국어와 영어 공부로 시간을 채워나가던 어느 날,

1학기 기말고사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국어 선생님이 전교에서 몇 안 되는 국어시험 만점자라며 내 이름과 몇 명의 이름을 더 불렀다.

보통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혼이 나거나 지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쟤가 국어를 잘하던 애였나' 수군거리는 반 아이들 사이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어울리던 친구 중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던 아이의 질투와 분노, 원망이 섞인 눈빛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그 친구는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단 1분도 쉬지 않고 떠들어댔던 나는, 얼마나 외롭고 말이 하고 싶었던지

남들은 유치원 때 만든다는 '상상 속 친구'를 중 2 때 만들었다.

도시락을 혼자 먹을 때, 특별실을 갈 때,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 때도

상상 속 친구는 늘 나를 응원하며 내 옆을 지켜주었다.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될 일이 아닌가 싶겠지만,

믿었던 친구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데다,

외로워서 친구를 사귀고 싶진 않았다.

나를 믿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싶었다.


왜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어야 했는지,

왜 그런 고통이 내게 찾아왔는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많은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니,

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친구와의, 나아가 사람 사이의 신뢰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천천히 친구를 사귀는 법도, 가려 사귄 친구를 소중히 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별자리 리딩에서 플루토(Pluto)는 대격변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지나야 한다.

옛 것이 자리를 내주어야만 그 위에 비로소 새로운 삶이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인생의 열다섯째 해에 플루토를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명왕성은 나의 옛 자아를 손가락 튕기듯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도록 이끌어주었다.


이처럼 삶은,

우리가 꼭 마주해야 하는 일을,

가장 절묘한 순간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발 앞에 놓고 간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당신을 꺾지 못한 시련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
Friedrich Nietzsche

사진 출처: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Vocal.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