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 천지랄입니다.

by 천지랄

항상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엄마아빠 말씀으로는, 손에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쥘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방바닥이나 벽지, 성경책, 달력 등 선을 긋고 칠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 됐건 나는 나의 흔적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말려보기도 하고 혼도 내보다가 지친 부모님은, 큰 달력종이로 벽을 빙 둘러 붙여주시고 '팔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네 마음대로 휘갈겨보거라' 하셨단다.

"감사합니다, 엄마아빠!" 덕분에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은 참, 지랄 맞다.

내 성격도 나의 인생 못지않게 지랄 맞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지랄 맞음'이 싫지 않다.

백수를 훌쩍 넘기시고 내가 한국으로 입국하기 2주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생전에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미친년, 지랄하네~'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에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는 이랬던 것 같다.

-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100살이 넘었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피부가 곱고 아기 같지? 시집 한 번 더 가야 되나?

- 미친년, 지랄하네~ 가나단지 캐나단지 왜 그렇게 멀리 가서 보고 싶어도 맘대로 보지도 못하게.

- 우리 귀여운 할머니~~ 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 그래, 이년아! 네 엄마도 보고 싶고, 너도 보고 싶고.

외할머니는 100년 넘게 살아보니 병원에 누워서 보는 드라마는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뻔히 알겠다고 하셨다. 102년째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도, 그걸 복붙한 드라마도 지루해서 하루라도 빨리 족쇄 같은 육신을 떠나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던 할머니는 당신 소원대로 넓은 바다, 높은 하늘을 날며 그동안 못한 세상 구경을 하고 계실까.


할머니의 '지랄하네'는 다정한 포옹 같았다. '지랄하네'라는 그 투박한 외마디 같은 말속에는 '보고 싶다, 사랑한다, 할미가 용돈 좀 주랴, 엄마한테 잘해라, 밥 잘 먹고 건강해야지 왜 또 아프냐, 너만 행복하면 된다' 등과 같은 쑥스럽고 낯간지러워 차마 얼굴 똑바로 보고는 하지 못 할 그 많은 마음이 담겨있었다.


지난 내 인생도 그랬다. 할머니의 '지랄하네~'처럼 변화무쌍하고 고단하며 때로는 롤러코스터보다 더 극적이고 때로는 인생이 나를 잊었나 싶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루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남은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의 나는, 이토록 지랄 맞은 인생에게 똑같이 지랄 맞게 대해주었다. 적어도 지난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은 그랬다.

이제 마흔의 끝자락으로 옮겨가는 나이가 되니, 지랄도 몸과 마음의 체력이 받쳐주어야 떨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 후반전 나의 인생 좌우명은 '지랄 그만 떨고 힘 빼기'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동네마트나 휴대폰매장 앞에서 볼 수 있는 손님 끌기용 풍선이 등장한다. '인생에서 힘을 빼면 저런 모습일까? 지랄 맞게 웃기겠구나' 싶다.


직장을 옮기거나 전업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작성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현타가 온다.
‘어떻게 이 직장에서 이렇게 오래 버텼지?’
‘이런 직장은 왜 다닌 거야?’
‘와, 그때 여기서 버텼어야 했어...’ 같은.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셨으니, 지난 인생의 이력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나의 시간을 어루만져 보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 같이 보통의 지구여행자가 쓴 글을 통해
‘지구여행이 힘든 게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하고 위로를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로서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