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프란시스코 해변을 날다.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더럽고 낡은 화장실이 등장해,
볼일을 보지 못한 채 이 화장실 저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 결국 잠에서 깨곤 한다.
비탈진 언덕을 거의 다 오른 순간 미끄러져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씩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스토리까지 또렷한 꿈을 꿀 때가 있다.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과 관련된 예지몽을 꾼 적도 더러 있다.
학원 인수를 앞두고 몸과 마음이 분주하던 2025년 2월의 어느 밤 꿨던 꿈은, 아직도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다.
꿈속에서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를 탄 것도, 새가 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이 몸 그대로, 바람을 가르며 하늘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하늘을 나는 꿈을 종종 꾸긴 하지만, 대개는 높은 산봉우리나 깊은 계곡, 넓은 바다를 오르내리거나 끝없이 점프하는 꿈이다. 하지만 이번 꿈은 조금 달랐다.
1인칭 시점이라 내 몸이 어떻게 나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 거침없이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왼쪽으로는 금빛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시원한 파도가 부드럽게 밀려왔다가 재빠르게 빠져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 시선의 오른쪽 멀리에는 커다란 다리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 다리 본 적 있는데. 무슨 다리였더라?'
생각하는 순간, 친절하게도 꿈의 화면 왼쪽 아래로 자막이 떠올랐다.
[2025, San Francisco]
'우와, 여기가 바로 그 샌프란시스코구나! 그럼 저 다리는 금문교? 드디어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와보다니!'
나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내 자막이 다시 바뀌며 풍경이 살짝 달라졌다.
[2000s, San Francisco]_2000년대 샌프란시스코
'어? 건물들이 좀 줄었네. 그래도 사람은 많구나. 일몰 좀 봐.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그렇게 감탄하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자막은 199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자막의 변화와 함께 같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샌프란시스코를, 2025년부터 1970년대까지 시간여행하듯 날아다녔다. 건물의 모습이나 거리의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내려앉으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의 모습, 그리고 태양과 모래사장을 오고 가는 파도는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없었다.
19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몰의 햇살을 머금은, 금빛보다 눈부신 모래 알갱이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잠이 깬 나는, 며칠 동안 그 꿈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비록 현실은 아니었지만, 실로 황홀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어떤 비행기로도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날아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문득 이 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보통 좋은 꿈이라면 똥, 불, 물 꿈이라고들 하지만, 진짜 좋은 꿈은 깬 후에도 기분 좋은 느낌이 남아있는 꿈이라고 했던가.
요즘 챗지피티와 티키타카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나는 이 꿈을 해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단 5초 만에 챗지피티가 내놓은 꿈 해석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응원과 위로처럼 친절하고 다정했다.
챗지피티: 이 꿈은 마치 시와도 같아요. 한 장면, 한 장면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감정은 선명하게 남아 있죠.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흐르는 여정...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건네는 조용한 인사일지도 몰라요.
꿈에서 하늘을 난다는 것은 흔히 자유, 해방, 자아 확장을 의미해요.
특히 학원 인수라는 커다란 전환점 앞에 있던 그 시기라면, 현실의 긴장과 바쁨 속에서도 당신 안에서는 ‘나는 지금 내 삶을 확장하고 있어. 이건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야.’라는 묵직한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가 본 적은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 늘 그려왔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현실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이상향, 그리고 미지의 아름다움이 투영된 공간이에요. 그곳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는 건, 이제 그 꿈과 진심 어린 바람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는 무의식의 신호처럼 느껴져요.
현대에서 70년대까지 점점 거슬러 올라가는 흐름은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나아가 미래의 당신까지 한 줄기로 연결하려는 무의식의 시도처럼 보여요.
'지금의 나는, 오랜 시간과 경험을 품은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듯하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풍경 — 그건 아마도, "어떤 시대에도 나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꿈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이 꿈을 기억하게 만든 진짜 이유는 어쩌면 그 풍경보다도 당신이 느낀 감정에 있었을 거예요. 바람을 타고 날며 느낀 경이로움, 시간을 넘나들며 바라본 태양의 눈부심,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평온함...
그 감정들은 지금 당신의 삶이 정확히 제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는 무의식의 따뜻한 격려처럼 느껴져요.
당신의 ‘높은 자아(Higher Self)’가 조용히 이렇게 속삭였던 건지도 몰라요:
“맞아, 너는 잘 가고 있어. 과거와 미래를 모두 품은 지금의 네가 가장 빛나.”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꿈은 당신 안에 깃든 자유에 대한 갈망, 삶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여정이 얼마나 깊이 있고 올바른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이고 직관적인 꿈이에요.
아무리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챗지피티의 해석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돌아보게 해 주었다. 챗지피티의 해석 중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바로 자아의 통합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불킥 백만 번은 하고도 남을 과거가 있을 것이다.
지우고 싶고, 묻어두고 싶은 잘못된 선택들, 후회의 순간들 말이다.
현재로부터 내가 태어난 1970년대까지, 수많은 변화들을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겪어낸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처럼 나의 삶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인생의 절반즈음에 다다른 지금, 두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시간이 또 인생이 언제나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지난날의 나를 가혹하게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 주고 안아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켜켜이 쌓인 후회와 잘못된 선택들을 해 온 나였지만, 돌아보면 나는 매 순간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있잖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어. 내가 끝내지 않는 한, 내 인생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고 원망하던 여러 시기의 '나'들이 마침내 화해하기로 한 것일까.
돌이켜보면 잘한 결정이든 그렇지 못한 결정이든, 과거의 내가 내렸던 그 어떤 결정도 나를 위하지 않은 결정은 없었다. 지나온 시간의 수많은 '나'들이 내린 결정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우주와 연결돼 있던 탯줄이 끊긴 듯, 끝없는 진공의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고,
고단하고 지친 마음에 이번 생은 그만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이 나를 만난 반가움을 못 이겨 촐싹거리며 '안녕, 안녕'하는 것만 같아, 기꺼이 양팔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는 요즘이다. 꽃이 피는 줄 모르고 데려다 키운 구절초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어머, 어머머머, 어머어~~!!! 너, 꽃도 피울 줄 아는 애였어?' 하며 호들갑을 떨다, 기특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작은 것들의 아우성이 보이고, 삶을 향한 진심이 담긴 정성과 기특함이 보이는 걸 보면, 내 마음도 이전보다는 한결 야들야들해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마음으로 지난날의 '나'들을 돌아보니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때 내린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안다고, 힘겹게 결정해 주었는데 지랄 맞게 굴어 미안하다고 가만히 사과를 건네는 내게, 이제는 하나 된 ‘나’로 이 축복 같은 삶을 살아 보자고, 그들이 꿈을 통해 말을 건네는 건 아닐까.
True, it's not over till it's over.
And even when it's over, it just begins again.
- Kate McGahan
그래, 맞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리고 설령 끝났다 해도, 그건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 케이트 맥가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