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우리에게 빅엿을 날릴 때.
Don't take it too personally.
캐나다에 살 때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다.
말이란 게 으레 그렇듯, 상황과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말을 그들의 의도를 포장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이 ‘Don't take it personally.’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실제 의미는 이렇다:
‘내 말 잘 들어. 네 이런 면이 좀 거슬리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충고라는 형식을 빌려 내가 원하는 걸 말할 건데,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
또 어떤 때는 상대가 아무런 악의 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말하고 행동하는데, 그게 나의 생각이나 상황과 얽힐 때, 그들의 말과 행동에 내 감정이 휩싸이지 않게 하기 위한 주문 혹은 만트라로 쓰이기도 한다.
캐나다에서 서버로 일할 때의 일이다.
호텔에서 일 년에 두 차례 BOGO(Buy One, Get One free) 세일을 하던 때라 끼니는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을 만큼 바쁜 날이었다.
친구로 보이는 중년의 두 여자 손님이 내 섹션에 앉았다. 인사와 메뉴 안내를 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두 여자 손님 중 한 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Are you my server? I'm f**king hungry, so get your f**king face out of here and get me something to eat. 네가 내 서버니? 나 정말 배고프니까 네 *같은 얼굴 치우고 가서 먹을 거나 가져와."
캐나다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아시아인 서버를 불편해하는 백인들이 있다. 그래서 다른 서버로 바꿔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이 손님처럼 '아시아인 서버를 나한테 보내다니, 날 무시하는 거야?'와 같은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친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난처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주문을 마쳤다. 나는 주문을 받고 곧장 슈퍼바이저를 찾아갔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손님이 한 번 더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한다면 다른 서버에게 그 테이블을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슈퍼바이저는 자신의 팀원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더 흥분해 그 손님과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주문한 음료와 음식을 가지고 가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I think I'm going to have it to go. 나 그냥 음식 싸갈래."
'오호라~ 제 발로 걸어 나가 주시겠다고? Gladly!(나야 좋지!)'
그녀들이 떠나자마자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우르르 내게 다가와 내 기분을 살피며 그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알고 보니 내가 자리를 떠난 뒤, 다른 손님들이 그 두 여자 손님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한 마디씩 했다고 한다.
유학 초의 나였다면 ‘Race card’ — 즉, 상대방의 발언이나 행동이 인종차별적이라고 항의하는 것 — 를 꺼내 들고 내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호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모션 중이라도 여전히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다른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라는 전제를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전제가 현실이 되는 순간, 내가 어쩔수 없는 이유로 내 기분과 하루가 망쳐지는 것 같았다. 오래전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이 그날의 나와 내 하루를 지켜주었다.
'Don't take it too personally. Then it won't affect you and your day.'
너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
그러면 그게 네 기분과 하루까지 망치진 않을 거야.
살다 보면, 신이 혹은 인생이 내게 빅엿을 날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온 우주가 내게 엿가락을 날리며 '이래도 살아볼 테냐? 이래도!' 하는 것만 같은 때 말이다.
한두 번 겪고 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날아오는 엿가락은 언제나 새롭다.
중3으로 올라갈 무렵, 하교 후 집에 오니 늘 있어야 할 엄마가 집에 없었다.
저녁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야, 아빠가 일하시다가 사고를 당해서 지금 수술 중이셔. 수술하고 나면 중환자실로 가야 한대. 당분간 집에 못 갈 것 같으니까 동생 잘 챙기고 있어.'
나는 무슨 상황인지 더 묻지도, 알겠다는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과 달리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했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내겐 마치 간곡한 부탁처럼 들렸다. 엄마가 없어도 잘 지내달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엄마야? 뭐라셔?" 동생이 물었다.
"아빠가 지금 수술 중이래. 당분간 집에 못 오신다고, 둘이 잘 지내고 있으래."
동생도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가장 먼저 냉장고의 김치와 쌀통의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나는 나와 내 동생을 돌봐야 했고, 중환자실에서 아빠를 돌봐야 하는 엄마가 되도록 우리 걱정은 하시지 않도록 잘 지내야만 했다.
까짓 거, 인생이 엿을 던져 준다면, 기꺼이 각설이가 되어 주리라.
<Why me? Why not?>
오래전 우연히 보게 된 연재만화 중 하나다.
만화의 주인공이 신에게 'Why me? 왜 하필 접니까?'라고 외치자, 신은 곧 'Why not? 왜 너는 안 되는데?'라고 답한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나의 신이 내게 고난을 줄 리 없다’는 선민의식 같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진짜...?)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신이 나를 버린 걸까? 온 우주가 나를 방해하려고 작정이라도 했나? 내가 뭘 잘못해서 벌을 주시나?'와 같은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나에게 그렇게 악의적으로 굴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저 지구별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경험 중 하나를 겪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종종 그러한 경험들에 지나치게 큰 무게와 의미를 부여해, 이미 힘겨운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곤 한다.
다짐에 다짐을 더해도, 또다시 빅엿과 스몰엿이 내게 찾아올 때면 나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일희일비로 반응하고 만다. 하지만 일희일비 또한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닐까?
초연한 듯, 해탈한 듯 삶의 경험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애초에 이 지구별에 왔을 리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미지출처: Hägar the Horrible © Dik Browne / King Features Syndicate (출처: www.cbr.com/hagar-the-horrible-funniest-comics)
사진 출처: Adam Eason, How to Stop Taking Things Person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