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혼의 놀이터
'I’m sorry. Please forgive me. I thank you. I love you.'
'미안해, 용서해 줘, 고마워, 사랑해'
요즘은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혹은 틈 날 때마다 속으로 이 말을 되뇐다.
호오포노포노 철학에서는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주와 맞닿아 있는 나의 잠재의식을 깨우고 치유할 수 있다는 '호오포노포노' (하와이 전통 치유 명상)
정화 문장을 틈날 때마다 반복하면, 내면이 정화되고 고요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밑져야 본전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젯밤에도, 시절시절의 나의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듯 이 말을 반복하고 잠이 들었다.
장소는 분명하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맞은편 멀리,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깊이 집중하는 사람이 보였다.
그 발치에는 팔다리가 힘없이 꺾여 제멋대로 늘어진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아무도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에게서 고통스러운 기색은 없었지만,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미동도 없이 그저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모습이 내 시야로 들어오자 가스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순간,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직선으로 곧은길이라 찾아가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아이는 나이에 비해 꽤 무거웠다.
방향을 바꾸어 안아가며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는 내 뒤를,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 힘드시면 제가 좀 안고 갈게요.
- 아, 아니에요. 아직은 괜찮아요. 너무 힘들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아이를 안고 걷는 내 뒤를, 그녀는 조용히 좇아오고 있었다.
멀리 병원 건물이 보일 즈음,
힘없이 늘어져있던 아이의 두 눈이 튀어나오고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
'조금만 버티자! 거의 다 왔어!'
다급한 마음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아이의 얼굴은 점점 부풀어 올라 곧 터질 것만 같았다.
길과 아이를 번갈아 보며 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선 바람이 푸르르하고 빠지듯 아이의 입에서 긴 숨이 뱉어졌고
이내 고른 숨을 쉬기 시작했다.
'고마워, 고마워! 조금만 더 버텨 줘!'
병원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난데없이 양치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안은 채 양치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마주한 공간은 병원이라기엔 다소 산만하고 복잡했다.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곳은 마치 박물관이나 전시관 같았고,
통로 한쪽에선 모든 동물들의 ‘출산 홀로그램’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끼를 출산하는 모든 동물들의 얼굴과 몸짓은 하나같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뒤틀려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동물도 괴성이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새끼가 태어나자 자신의 고통도 잊은 채, 새끼의 얼굴과 몸을 핥아주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산할 때는 머리를 쓰는 게 아니야. 엉덩이를 쓰는 거야. 엉덩이가 뇌야.'
'엉덩이가, 뇌라고?'
그러고 보니 안고 있는 아이의 무게가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게뿐 아니라 아이의 몸체도 작아져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 같았다.
포동하고 뽀얀 얼굴에 두 눈은 초롱했다.
군중 속을 헤치는 사이, 아이는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탐색하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아는 노래였기에 같이 따라 부르는데 여기저기서 하나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로 변한 아이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발음도 분명했다.
왼쪽팔에 안긴 아이가 어깨너머 뒤쪽도 보고 싶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돌려 안아 나의 왼쪽 어깨에 기대게 해 주었다.
어깨너머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문득, 아이를 안아 올린 것은 나였지만
이 아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는 것 같다는, 아이와의 연결로부터 전해 오는 따뜻한 기댐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꿈속에서 따라 부르던 노래의 제목을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잠에서 깨자마자 기억은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대신, 한 문장만이 또렷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출산할 때는 엉덩이가 뇌다.”
챗쥐피티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까?
1. '가스'에 질식되어 스러져있던 아이
그 아이는 나의 내면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쌓이며 ‘독(=가스)’이 되어 아이를 시들게 만든 것이다.
2.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행동
이는 죽어가는 내면 아이, 자아, 꿈, 가능성 등에 대한 스스로의 회복과 돌봄의 의지라고 했다.
아이는 무겁고, 병원까지의 길은 멀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책임지고 치유하려는 결단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3. 병원에 가기 전 고비를 넘긴 아이
아직 치료를 받기도 전이지만, 내가 책임을 받아들이고 함께 걷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
아이는 나의 의지에 공명하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의식의 전환이 곧 생명력의 회복이 된다는 상징이었다.
4. 양치
꿈에서 양치하는 행위는 보통 감정적·에너지적인 정화를 뜻한다고 한다.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 마치 의식을 치르듯 감정을 정돈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내면의 정화 의식이었다는 해석이었다.
5. '엉덩이가 뇌다'
이토록 우스운 말에 챗쥐피티는 뜻밖의 의미를 부여했다.
출산은 곧 새 생명의 탄생, 즉 새로운 나, 영혼의 재탄생을 뜻한다.
동물들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러나 온몸으로 출산하는 장면은
진짜 창조는 머리가 아닌, 몸의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엉덩이는 본능, 생식력, 뿌리 차크라를 상징하고,
뇌는 의식, 판단, 통제를 상징하므로
이 문장은 곧,
“진짜 창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엉덩이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된다.
6. 주변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노래하는 장면
이 장면은 치유의 합창, 깨어남의 의식, 공명의 상징이라고 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내 안에 가장 순수한, 태곳적 기억의 소리이고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나와 우주의 연결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유받은 내면아이가 다시 세상과, 우주와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7. 아이를 왼쪽으로 안은 장면
왼쪽은 심장과 가까운 쪽으로, 감정, 직관, 어머니성을 상징한다.
아이를 왼쪽으로 안았다는 것은 이성보다 감성, 판단보다 수용의 에너지를 선택한 것으로,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이 된다.
이는 마치 호오포노포노 정화문장의 마지막, “사랑해.”로 끝나는 정서와 닿아 있다.
결국, 오랫동안 외면해온 내면아이를 온전히 사랑하고 품에 안음으로써,
나 또한 치유되고 받아들여지게 된 순간이라는 것이다.
처음 별자리 리딩을 배울 때,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 사회와, 사람들과 무난히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겉도는 느낌일까.'
그 모든 게 누군가의 뜻이라면,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의 싸대기를 지칠 때까지 갈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던 나의 삶 속의 모든 일들이
지구 게임을 하러 오기 전, 내가 스스로 미리 선택하고 배치해서 갖고 온 것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밖으로만 향하던 원망의 손가락질을 멈추게 했다.
내 인생 속 ‘악역’들 역시 사실은 나의 성장을 위해 내가 고용한 배우들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왜 우리의 영혼은,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굳이 이 고달픈 ‘지구 게임’을 선택하는 것일까?
'경험 없는 완전함'은 지식일 뿐 지혜가 아니기에,
영혼은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망각'과 '지구게임'을 선택한다고 했다.
완전함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 우리는 불완전함을 경험하고
빛으로 존재하기 위해, 어둠을 통과한다.
결국, 태곳적 자신을 망각한 채
본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살아내며
‘진짜 나’를 다시 깨우는 것 —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다.
출산은 - 곧 영혼으로서의 나의 재탄생은,
머리(이성과 논리)로서가 아니라,
엉덩이(연약하고 불완전한 육체)로 이루어진다.
이 말은,
지구라는 영혼의 놀이터에서
내가 왜 이토록 연약하고 불완전한 육체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잊고 있던 나의 영혼이,
꼭 들어야 했던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This is the real secret of life –
to be completely engaged with what you are doing in the here and now.
And instead of calling it work, realize it is play.
— Alan Watts —
삶의 진짜 비밀은 이것이다 –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일'이라 여기기보다, '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이미지 출처: Canva Pro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