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전문가이자 강연자 김창옥 교수의 치매 소식을 들었다. 아... 어려움을 겪고 계시구나.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분도 치매라 한다. 펀자이씨툰으로 만난 '행복한 철학자'의 저자 우애령 교수님이다. 이렇게 톡톡 튀고 사랑스러운 분들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마가 일찍 찾아오다니. 안타까움과 삶의 덧없음을 느끼며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클리셰 같은 알츠하이머. 그들 모두 주인공이었기에 만난 것일까?
정확히 알츠하이머는 치매 원인 중 한 갈래이다. 기억력, 사고력 및 행동에 장애 및 문제를 일으키는 뇌질환이다. 이상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질환이다. 중증도에 따라 양상이 다르지만 펀자이씨툰의 엄유진 작가는 '저장이 안 되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이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사라져 간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 미련할 매라는 한자어로 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기에 개선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정말로 치매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일까?
기억이 그 사람일까? 기억이 지워지면 그 사람이 아닌 걸까? 기억이 기록되고 남겨지지 않는다면 어리석고 미련해지는 걸까?
고릿적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분류하는 말 중 프리웨어, 셰어웨어, 트라이얼 이라는 말이 있다. 만든 이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든 기능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 놓은 무료버전은 프리웨어, 대부분의 기능이 작동하지만 저장이나 인쇄 등 일부 기능을 제한해 둔 체험판은 셰어웨어, 몇몇 기능만 사용하도록 해놓거나 혹은 일정기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시험작(?)은 트라이얼이라 한다. 실상 셰어웨어나 트라이얼이 비슷하지만 기능의 가짓수 정도의 차이랄까.
그런데 셰어웨어나 트라이얼판을 사용하는 사람도 꽤 있다. 몇 가지 기능이 안 된다고 그 프로그램이 나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온전하지 않다고 참신하지 않다거나 멀끔하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나름의 기능으로 역할할 때 그저 체험판이나 트라이얼이라도 어쨌거나 오래 보고 싶을 뿐이다.
뇌과학자 장동선 교수는 대개 4살(빨라도 2살) 이전의 기억이 없는 까닭은 그때까지는 아직 언어가 정립되지 않아서 기록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 순간 신기하고 새로운 많은 경험을 하지만 표현하고 남길 수 있는 사고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휘발되어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는 말이다.
삶의 한 줄기를 지나온 이들은 이미 언어가 있고 사고체계가 정립되어 있다. 그들만의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으며 유머가 있고 사랑이 있다. 잘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 각자의 희로애락이 있다. 비록 생각의 길 한 조각이 끊어져 겉으로 드러나고 표현되는 것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자신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길 하나를 잃었기에 오히려 자신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간다. 나는 이런 일을 겪었어.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보고 싶던 건. 나는, 나는...
자신 속으로 들어갈 때 주위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그, 혹은 그녀)는 과거의 순간을 여행하고 있고, 그래서 현재의 나와 다른 과거의 나, 혹은 인생의 순례자인 제3의 나로서 주변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며 기능이 하나씩 사라져 갈 때,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외부적 갈등을 배제한다면 온전히 자신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그 시간을 나쁘다고만 할 건가?
표현의 길 한 가지가 닫힌 알츠하이머 반려인들께 기록을 권하고 싶다. 글이건 그림이건 말이건 몸짓이건. 저장은 머리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우리가 기억할 테니. 당신은 그 시간에 온전히 당신이면 된다. 있는 동안 당신의 마음길을 잘 남겨주기를. 그러면 우리는 또 당신을 사랑하며 추앙할 테다.
방금 김창옥 교수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단기기억상실 증상은 맞지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란다. 진단 결과는 나와봐야 한다니 우선은 다행이다 마음을 쓸어내린다. 글은 다 써놨는데 어쩐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