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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Dec 01. 2023

이렇게는 못 죽어!

사명이 수명

두 번의 사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억도 잘 안 나는 걸 보니 꽤나 어릴 때의 일이다.  나는 시골 동네에 살았는데 논길 사이로 걸어 다니다 논둑에 빠져 신발을 잃어버리고 맨발로 울며 집에 가기도 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엄마가 오빠와 나를 데리고 인근 도시에 가는 길이었다. 오빠, 나, 엄마 모두 손잡이를 잡고  선 채로 시외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버스가 길을 벗어나 옆으로 구르더니 쿵 처박혔다. 나는 잠깐 공중에 떠 상하좌우가 돌아가며 사방에서 나뒹굴며 떨어지는 물건들을 본 듯하다. 지금이야 번듯한 도로가 쭉 뻗은 길이지만 당시는 좁은 길 양편으로 낙차가 큰 논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여기저기 부딪힌 사람들이 아파했다.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사람들이 구하러 왔고 옆으로 누운 버스 창문으로 사람들을 끌어냈다. 밑에서 받쳐주고 위에서 끌어올렸는데 하늘로 끌려 올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뒤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정신이 없었다. 아마 다 병원에 가서 진료, 치료를 받은 것 같은데 엄마는 몸 구석구석 심한 타박상을 입었고 오빠도 팔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나는 멀쩡했다. 아마도 엄마가 급히 나를 안아 지켰었나 보다.


두 번째는 5학년때였다. 학교에서 수영장을 갔는데 수영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했던 나였다. 바닥이 깊어 발이 닿지 않는 곳이었는데 튜브 없이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들 재미있게 놀고 있던 중에 꼭 쥐고 있던 부표가 쑥 빠져나가면서 물속 깊이 빠져들었다. 꼬르륵. 작은 키에 발이 닿지 않으니 아무리 몸을 세워봐도 숨을 쉴 수 없었고 계속 물을 먹으며 허우적거렸는데 물속 깊이 가라앉은 탓인지 물도 튀지 않았다. 친구들은 뒤돌아 있었고 언뜻 본 친구도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는지, 못 본 건지 고개를 돌렸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부르려고 했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고 나 혼자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자 암울한 생각과 함께 그동안의 즐겁고 행복한 순간순간의 기억이 눈앞에 지나갔다. 필름이 돌아간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힘이 빠져 몸부림을 멈출 즈음 손에 부표줄이 부딪혔고 부표를 끌어당긴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투를 마치고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잊고 있었다. 구태여 기억할 일도 아니지만...
대학 기독동아리 수련회에서 '사명자가 수명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맡겨진 임무,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다 이뤄야 수명을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하면 죽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두 번의 사고가 생각났다. 아. 꽤 큰 일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죽을 뻔했던 것 같은데 난 아직 살아있구나. 덤으로 사는 인생인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 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나 봐. 감사한 삶이네.



40대. 딱히 이룬 것 없이 또 잊고 지내왔다. 다시금 기억나는 걸 보니 아직 생각해야 할 거리가 남았나 보다.

사명이 수명이다.

내 사명은 뭐지? 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내가 이뤄야 할 일은 뭘까? 아직 그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타고난 게으름을 이겨내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내 몫을 다하기 위해 생각도 키워본다.

제 몫도 못하고, 이렇게는 못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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