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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Apr 24. 2023

부산촌놈, 그 불편한 예능에 대해

워킹 홀리데이의 명암

예고편부터 찝찝했다. 출연진이 싫은 건 아니다.

제목은? 그래. 나도 부산촌놈이지만 제목이 맘에 안 든다고 마음이 찝찝할 것까진 없다. 호주는 한동안 지냈던 곳이기에 TV 나오면 더 관심이 가고 보면 그립기도 한다. 언제고 다시 가야지 마음도 먹으니까. 그런데 워킹 홀리데이를 체험해 본다니.. 떡이 목에 걸린 듯 콱 막힌 기분이 들면서 도대체 누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을까 짜증이 밀려오는 걸 참을 수 없다.


워킹 홀리데이가 좋은 프로그램이란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젊은 시절 어학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돈도 벌 수 있으니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고 싶다. 스스로의 장단점을 느끼고  직접 겪어보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그건 준비를 제대로 안 한 내 책임이라 치고 제대로 잘 준비해 가길 바란다는 말을 꼭꼭 덧붙이며 말이다.

그런데 그걸 TV예능으로 '잠깐' 맛만 보고 경험해 본다니 베알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나도 가기 전까지는 뭔가 즐겁고 새롭고 막연한 기대로 환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 같다. 현지인들과 마음껏 소통하며 나도 그들 사이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누리는 모습말이다. 일도 척척 구해지고 굳이 어학원 다니지 않아도 언어도 쑥쑥 늘고, 내가 하는 일들은  다 잘 될 것 같은 느낌.

그건 정말 느낌일 뿐이다.



예능은 그것이 관찰예능이든 어떻든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기'때문에 이미 조절되고 통제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개인이 아니라 관찰자가 한 명 더 있는 것만으로 어려운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예능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웃긴 상황으로 포장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저 한번 보고 웃으며 지나치는 여러 예능 중 하나면 모르겠지만 혹여나 보고 핑크빛 꿈만을 품는 젊은 친구들이 있을까 괜히 걱정이 앞선다.

아직도 인종차별 폭행이 간간히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 워홀러들 중 초기에 일을 못 구하고 수입이 없어 정착하지 못하고 3개월 안에 돌아가는 비율이 꽤나 높다고 할 만큼 초기 정착이 쉽지 않기도 하다. 나도 갓 도착한 지인들에게 돈깨나 빌려줬었고(무이자, 무기한이었다) 나 역시 3개월 만에 귀국했다 다시 나갈 만큼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들도 많았다. 10여 년 전 그때랑 지금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변화 속도가 느린 호주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으리라 보진 않는다.



기다리진 않았건만 볼 것 없는 주말에 우연히 보게 된 방송 첫 회. 아니나 다를까, 이미 숙소는 있고, 이력서는 내지도 않았는데 일은 이미 정해져 선택도 할 수 있다. 굳이 내가 스스로 찾아보지 않아도 갖춰져 있는 상황, 선별되었을 일자리들(악덕고용주들이 방송에 나가는 걸 좋다고 허락했을까?) 그냥 판타지 드라마라고 하던가, 현실인 양 가장한 채 보여주는 건 현실감각을 떨어트리고 위험에 취약하게 만드는 악이다. 이건 그냥 '체험, 삶의 현장' 호주편이지.


워킹 홀리데이 2년여.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또래들을 만나고 할 이야기가 참 많은 기간이었다. 말 많고 탈 많은 그 이야기를 조금 꺼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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