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 잘하고 완벽할 거 같은 친한 동생이 유독 음식에 대해서는 섬세하달까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몸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굳이 이로울 것 없는 과자, 간식류는 집에 놔두지도 않았다. 술도 잘 마시지 않는 데다 닭가슴살을 쟁여놓고 거의 매 끼니 닭가슴살만 먹는 통에 듣는 내가 질릴 뻔도 했다. 물론 요즘 닭가슴살은 적당히 맛있고 촉촉하게 잘 나오기 때문에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한 달 내내 늘 똑같은 것만 먹다니! 가능한 건가? 영양 균형을 생각하게 되는 엄마의 입장으론 무척이나 곤란한 이야기다. (물론 과일, 채소를 따로 챙겨 먹겠지만)
그게 아니면 늘 거기서 거기인 배달음식만 먹게 되는 단편적인 식사패턴이라 엄마 같은 마음으로 신경이 쓰인다. 이 단순한 패턴 속에서도 메뉴 구성과 양, 뒤처리 등 갖가지 디테일을 고민하다 지쳐서 "귀찮아. 안 먹어"를 외치는 아들에겐 엄마의 등짝스매싱을 대신 전해주고 싶기도 한다. (우리 아들도 나중에 이러면 어쩌나 싶어서 속이 갑갑해지는 기분이다.)
아마 대부분의 2~30대 혼자 거주하는 남성 직장인들은 인스턴트 아니면 외식으로 점철된 식사를 할 거라 예상되긴 한다. 혼자 살면서 챙기고 신경 쓸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지쳐 쓰러져 잠들 때가 부지기수일 거다. 그래도 가끔은 조금 맛있는 음식을,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당부하는 꼰대 모멘트 한 자락. 자주 본가에 가서 엄마밥을 즐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동생을 향하는 요리라곤 잘 모르는 누나의 잔소리타임이다. 수요 없는 공급이랄까.
얼큰하고 칼칼한 닭볶음탕은 원래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거니까? 엄마 손맛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으른이니까 이 정도는 혼자서도 챙겨 먹어보자. 계속하다 보면 눈 감고도 하게 되는 법. 술안주로도 그냥 밥반찬으로 좋은, 혼자 먹어도, 둘이면 더 좋은 닭볶음탕이다.
절단닭 한팩을 끓는 물에 3분 정도 데쳐서 헹구면 기름기와 불순물을 제거해 더 깔끔한 맛을 즐길 순 있지만 귀찮아서 하기 어렵겠지? 그냥 닭이 담긴 포장재에 구멍 조금 뚫어 물을 담고 흔들어 헹궈보자. 뼛가루라도 씻겨 내려가게. 데치는 건 귀찮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나서 맛에 욕심이 날 때 시도해 보지 뭐.
채소는 뭘 좋아하더라? 파, 청양고추, 당근, 감자, 양파를 다 챙기긴 귀찮을 테니까 파 한대랑 청양고추, 감자 만이라도 챙겨보는 건 어떨까? 너무 작지 않게 숭덩숭덩 썰어주면 부스러지지 않고 적당히 먹기 좋을 거야. 녹진한 국물보다 맑은 국물이 좋다면 껍질 벗겨 썰어둔 감자를 물에 잠깐 담가 전분기를 빼도 좋고. 깔끔한 국물 끝맛에 칼칼한 매력이 더 살아날 거야.
이제 제일 중요한 양념이야. 고추장 2큰술에 고춧가루 7큰술, 설탕 2큰술, 국간장 5큰술에 마늘 1큰술이면 돼. 이것도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면 곤란한데 몇 번 먹을 양념을 한 번에 만들어서 소분해 보는 건 어떨까? 손이 가는 느낌이겠지만 챙겨두면 그냥 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더 간편할 텐데? 재료가 다 잠길락 말락 한 정도로 물을 붓고 끓이면 돼. 양념이 잘 풀리게 한번 섞어주고 국물이 반으로 졸면 감자랑 닭이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러 확인해 봐. 국물이 너무 졸았거나 닭, 감자가 안 익었다면 뜨거운 물을 좀 더 넣어서 마저 익혀주면 돼. 대파, 고추를 넣어서 1분 더 끓여주면 청양고추의 매콤함에 대파의 신선한 향이 살아서 밥에 비벼먹기 딱 좋을 걸? 다 귀찮으면 통돌이 냄비에 재료다 넣고 잠깐 딴생각해도 괜찮고.
근데 있지, 이것도 안 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 굳이 알려주고 있는 노파심은 뭘까? 닭가슴살 두어 개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넣고 시판 닭볶음탕 양념 두어 스푼 버무려서 전자레인지에 3분만 돌려 먹어도 기분은 낼 수 있을 거 같아. 피곤하고 지친 하루에 정신 드는 칼칼함으로, 맛있게 먹고 조금은 행복하게 기운을 차리길 바라는 응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