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꽤나 감정기복이 큰 편이다.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우울해졌다. 하루의 기분을 그래프로 그리면 심장박동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어떻게 보면 예민하고 어쩌면 너무 단순할 정도다. 변덕스럽다고도 했다. 순간순간 반응했을 뿐인데 변덕이라고 말할 정도인가 싶지만 감정의 끝과 끝의 차이가 겉으로 선명히 드러나보였기 때문일 거다. 작은 것 하나에 기분이 좋아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해서 금방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춤을 추고 과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신봉선 짤이 돌기 20년도 전에 길거리에서 그 자세를 하곤 했다. 한 팔은 하늘로 다른 팔은 옆으로 한 발은 직각으로 든 채 벽에 착 붙어서 '놀람'자세를 했달까? 친구들은 종종 그런 나를 부끄러워하기도 했지만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나를 보며 만화캐릭터 같다고 했다. 놀라는 것도, 신나는 것도 대개 그 표현이 과하다 보니 엉뚱하고 특이해 보였던 것 같다.
한편 마음이 침잠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무기력해져서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 내내 이 우울함이 따라다녔는데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스스로 우울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마음이 답답해서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어서 늘 자학으로 가득한 일기들을 써댔고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버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무수히 들었고 죽음이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끝없이 상상했고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이 괴로우면서 또 행복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이 '편해지고 싶다'이듯이 매일을 살아가는 게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이런 마음이 일상적이었기에 대학 입학초기 집중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데 뭔가 고장 났다는 듯한 말에 마음이 상해 상담은 가지 않았지만 곧잘 잊어버리는 ADHD의 특성 덕분인지, 밝은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인지, 그 우울함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지나고야 하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무기력해진다면, 잠을 못자고 스스로의 생각이 도를 넘어 위험해 보인다면 누군가에게라도 빨리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이렇듯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는 스스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 TV에서 조울증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 '이게 나다'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 들었다. 일반적인 조울증처럼 주기적인 업, 다운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범주에 들지 않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범주화하고 정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 조울증이야."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화를 내기도 했는데 요즘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 상황이 논리적으로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것과는 무관하게 그냥 내 속에서 참지 못하고 올라오는 화였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가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화르르 타올라서 폭발하는 상황이었다. 대개는 나조차도 그 분노가 무엇 때문인지 몰랐고 나의 폭발을 마주한 사람도 그저 피해자였다. 말대꾸만 해줬을 뿐인데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발광을 하니 당혹스러웠을 거다. 나 역시 상대에 대한 미안함은 있다. 당시 제정신이 아니고 주체되지 않았을 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쿵쿵 뛰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격양되면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꺽꺽대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그 폭발의 경중이 다르긴 해도 4년여에 한 번씩 터졌다. 한 번씩 그러고 나면 뒷수습이 안 돼서 괴로운데도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납득이 안 가니 주변사람들에게 마냥 미안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다행히도 요즘은 이런 폭발이 잘 없다. 예전보다 감정적인 표현이 유연해져서 마음에 담아만 두지 않으려고 한다.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혼자 글로 정리해 보고 감정을 빼고 전달하려고 한다. 마음속에 불편, 불만과 같은 분노의 감정을 덜 담아둬서인지 폭발물같던 마음이 가뿐하다.
인터넷에서 성인이 되는 건 행복과 맞바꾸는 것이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어른이 되면 행복하지 않은 게 일상이라는 말 같았다. 어른이 되면 그저 무난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인가?
ADHD인 성인들이 약을 먹기 시작하면 머릿속의 여러 가지 소리가 잠잠해지고 집중이 쉬워지는 반면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40여 년 동안 사회화된 덕분인지 감정적인 기복이 매우 줄어든 요즘의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 뾰족뾰족 고슴도치 가시 같던 마음들이 보송보송 솜털마냥 따뜻함의 영역에서 높고 가볍게 춤춘다. 우울했던 순간들을 압축적으로 보내고 남은 행복을 만끽하는 중인지 순간순간 작은 일에 즐겁고 웃음이 터진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쉬는 것에도 부채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다. 맘 같지 않은 순간들도 있지만 하루의 대부분이 고유한 색으로 빛나고 조화롭게 혹은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우울한 주의력과 행복한 산만함 중에 고르라면 난 순간순간 행복한 산만함을 선택할 것 같다. 반듯하게 정돈된 회색빛 일상은 무척이나 무료하고 견디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