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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Dec 06. 2024

핸들을 놓쳐버린

중독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ADHD와 관련된 여러 증상이 있지만 실제 내가 느끼는 불편은 많지 않다. 양상은 다양하지만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부분인데 바로 중독이다.



중학생 시절 처음 음란물 영상 소위 야동을 접하게 됐다. 처음 본 음란물 영상은 꽤나 역겹고 거북한 느낌이었다. 왜 이런 걸 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영상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학적이고 퇴폐적인 영상들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너무 강렬해서 다시 보게 되었고 점점 빠져버렸다. 언터넷을 뒤지며 음란물 영상을 받아 보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왜 가능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는 남동생들과도 서로 돌려보곤 했다. 각종 외설적이고 난잡한 음란영상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보곤 했다. 컴퓨터가 있는 방이 조금 외진 곳이라 가능했다. 항상 귀를 세우고 있다가 인기척이 있으면 얼른 창을 바꾸고 모르는 척 다른 일을 하곤 했다. 그렇게 음란물에 빠져 지낸 게 두어 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체로 그려지고 머릿속에서 갖가지 음란영상이 알아서 재생됐다. 가족들을 볼 때 마저 그런 영상과 상상이 지나가는 데 대해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차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음란영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자료를 없애고도 한동안은 다시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해서 힘들었다. 딱히 다른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참고 지나왔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음란물의 자극에 취약한 편이라 TV성인채널들을 전부 지워두고 인터넷에 뜨는 각종 음란광고물들을 피하려 애쓴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이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처음 보는 물건들 뒤지는 걸 좋아하다 보니 신기한 것들은 사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스스로는 아무것이나 덜컥 사지 않고 오랫동안 고민한다고 생각하지만 값싼 물건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사들이곤 했다. 그런데 막상 사고 보면 이것들을 어디다 쓸지 막막한 것들이 많았다. 목베개를 샀는데 깁스처럼 목에 고정하는 거라든가, 삭아 부러지는 솔이라던가 하는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스스로의 지출이 부당하다고 느껴 한동안 인터넷쇼핑을 멈췄는데 아이를 낳고서 인스타의 인플루언서들이 소개하는 공동구매 교구와 도서들에 꽂혀 작은 방에 택배상자 몇 개를 쌓을 만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필수 부식(쌀, 고기 등)과 생필품 외엔 사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데 언제 고삐가 풀릴지 모를 일이긴 하다.



그리고 게임이다. 뭔가를 시작하게 되면 끝을 볼 때까지 하는 편이다. 간단히 마칠 수 있는 게임이면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두 달 잠을 거의 안 잘 만큼 빠져 있다가 할 만큼 면 그만둔다. 익숙해지면 도파민이 나오는 게 줄어들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만두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다. 다만 빠져 있는 동안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스스로 게임을 깔지 않으려 애쓰고 깔더라도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한 것들로 언제나 빠져나올 수 있을만한 것들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지뢰 찾기와 카드게임에 빠져 지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런 내 생활패턴에 변수가 된 건 아이다. 아이는 매주 월요일마다 패드에 새로운 게임을 깔 수 있도록 허락받았는데 아이가 깔아놓은 게임을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알려주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글을 쓰고 육아하는데 집중하려고 하던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때 아이가 깐 게임에 빠져버렸다. 아이는 그새 흥미가 떨어져서 지워도 된다는데 내가 빠져서 모든 게임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하며 커뮤니티에 들어가 게임 속 일정에 생활을 맞추며 지냈다. 스스로 얼마나 빠져 지내는지 알기 때문에 게임에 돈을 쓰지 않는 게 철칙인데도 슬금슬금 써가며 1년여를 지냈다. 게임 속 세상에서 만난 다양한 군상들과의 교류가 즐거워 쉽게 그만두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글 하나 쓰지 못하며 한참 동안 피폐한 생활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중독에 취약하다. 고교시절 음주에 대해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술을 마시지 않은 걸 지금도 최고의 선택으로 칠 정도다.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면 치료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ADHD환자들과 중독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겹친다고 한다. 중독증상이 없으면 ADHD가 아니라고 할 만큼 주된 증상으로 보기도 한다. 충동 및 행동 억제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낮은 도파민 수치 때문에 이러한 알코올중독, 게임중독, 인터넷중독, 스마트폰중독, 쇼핑중독, 도박중독, 운동중독, 행위중독 등 다양한 중독에 취약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 중독증상은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서 개인의 삶에 치명적이다.


뇌신경학적인 몸의 반응일지 모른다. 자신의 만족하지 못한 욕구를 다른 것으로 풀려는 보상심리라고도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실수 많고 부족한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자기 조절이라는 핸들이 뻑뻑한 삶에 조금 더 나은 길이 있는 걸까.



이미지 출처: UnsplashLudovic Toi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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