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들은 시간관리가 어렵다는 말이 많다. ADHD가 느끼는 시간은 일반인의 시간과 다르다는 말도 있다. 5분이 1시간처럼, 2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계획, 조직 및 실행을 어려워하고 작업 우선순위를 정하고 소요시간을 추정하여 완료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충동성이 높아 일을 하다가도 어떤 것에 흥미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다른 일에 주의가 쏠린다. 그래서 산만해지고 곁길로 가게 된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하루종일 글을 써야 한다고 인지하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초고도 없이 자료도 찾고 경험도 떠올리며 써야 하고 퇴고도 하려면 못해도 2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하는데 밤 10시에 마음 잡고 앉은 거 말이다. ADHD관련 자료를 찾다가도 다른 자료들이 재미있다고 정신이 팔리고 계속 마음이 붕 떠다닌다. 그리고 12시 30분 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가 되면 그전에는 발휘하지 못한 초집중력을 발휘하며 과몰입상태가 되어서 놀라운 타자속도로 10여 분 만에 해치우는 거다. 안 봐도 뻔한 루틴. 연재요일이라도 걸어놓지 않으면 시간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 시간 안에 해내는 게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하긴 싫다.) 그래서 매번 미루다가 늦게서야 후다닥 해내곤 한다. 사실 완벽주의까지 있는 나는 10여분의 작업물이 마음에 들리 없지만 올리지 않으면 어영부영하다가 잊혀버리고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완성도 따위는 내려놓고 완성과 마감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시간관리가 어렵다는 건 시간이 항상 내 생각과 다르게 흐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알람이 필수라, 하루의 기본루틴 알람이 몇십 개가 된다. 핸드폰 충전이 안 되어 있으면 불안하고 항상 충전기를 챙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날이었다. 전날 이런저런 생각에 일찍 잠들지 못했는데 폰이 방전되어 알람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밝은 햇살에 눈을 떠서 급하게 확인했더니 이미 시각은 9시 반. 얼른 충전해서 켠 폰에는 학교에서 온 부재중 전화와 남편의 전화가 번갈아 찍혀 있었다. 급하게 챙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하면서 남편에게 연락했더니 왜 전화를 안 받냐며 화가 나 있었다. 애가 등교를 안 해서 전화를 했는데 나도 연락이 안 되니 남편에게 연락했던 모양이다. 폰이 꺼져 있으니 연락될 리 없지만. 너무 답답해서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길래 미안하다 거듭 이야기하며 겨우 무마했다. 초등 입학날 2교시 등교시키는 엄마로 낙인이 찍히면서 말이다.
나는 아주 일찍 가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고는 자주 지각한다.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게 대부분이다. 늘 약속장소까지 가는 차편과 시간을 확인해 보는데 기다리는 시간, 갈아타는 시간, 교통상황 등은 고려하지 않고 딱 이 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히 맘 한구석에 일찍 도착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 다른 할 일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더 하고 나와야지라는...)
요즘의 아침루틴은 이렇다.
알람. 일어나자마자 폰을 본다. 시간 확인. 아.. 더자고 싶다. 미적대는 시간. 3분, 5분, 10분 간격의 각기 다른 알람이 정신 못 차리는 뇌를 한참 동안 두드리고 나면 불현듯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 벌떡 일어난다. 아이의 물병과 수저를 챙겨놓고 아이를 깨운다. 혼자 일어나기도 하지만 아이도 아침을 힘겨워한다. 아이의 등교알람이 핸드폰과 태블릿에서 여러 개 울려대는 동안 아이의 가방과 옷, 간단한 먹거리를 챙긴다. 계란토스트와 우유 정도. 10여 분 만에 세수하고 먹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등교 알람이 울리고 빠진 것들이 있는지 확인한 뒤 나간다. 그래도 종종 수저나 물병, 과제들을 빼놓고 가긴 하지만.
외출을 준비하는 모습은 ADHD인 다른 사람이 쓴 아침루틴과 너무 비슷해서 소름이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먼저 핸드폰 유튜브 영상을 고른다. 나는 주로 10여분 내외의 영상을 고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노래를 고른다고.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그리고 '이 노래, 혹은 영상이 끝나기 전에 다 씻고 나온다'를 되뇌며 혼자 인셉션을 찍듯이 허겁지겁 움직인다. 알람이라는 효율적인 도구를 놔두고 (이미 늦었는데) 쓸데없이 이런 거나 고르고 있냐면 할 말이 없는데 그래도 시간의 흐름을 재는 나름의 방법이라고 해두자.
지하철, 버스 등의 도착시간을 확인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데 갑자기 빨랫감이나 쓰레기봉투가 눈에 보이면 저걸 치워놓고 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그 마음을 다스린다면 시간에 맞춰 뛰어나갈 것이고 못하는 경우에는 '오늘 또 늦었다'가 된다. 항상 생각은 30분 전에 도착하는 걸로 계획하려는데 현실은 1, 2분 전에 도착하거나 지각하는 걸로 끝난다.
이런 식으로 항상 늦는 것이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업무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매일의 루틴이 안 지켜지는 건 개인의 일상과 발전을 위해서도 걸림이 될 수 있다.
마음이 안 내켜 자꾸 미루느라 시작을 못하는 경우엔 즐거운 일을 루틴에 먼저 끼워 넣으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도파민이 나오는 일로 먼저 시작하게 되면 즐겁기 때문에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설거지를 미루는 나는 요즘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열창하면서 설거지를 하는데 노래 덕분에 즐거워져서 설거지를 덜 미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