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Nov 14. 2024

정리는 못하지만

정리는 어렵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어렸을 때는 나만의 장소, 나만의 물건이라는 게 몇 없었기에 그저 모아두고 쌓아두어도 되는 정도여서 잘 몰랐다. 아마 내가 쌓아두면 엄마가 정리를 했겠지.



그러다 이사를 하면서 내 방이 생겼는데 침대와 옷장, 책상 하나씩이 들어가면 다닐 수 있는 공간만 남는 크기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내 책상에는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종이뭉치와 책, 잡동사니들이 마구 뒤엉켜있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엄마가 책상을 치워주곤 했는데 그러면 내가 기겁하고 싫어했다. 엄마가 정리하면 뭔가가 자꾸 사라지기 때문이다. 엄마기준에선 필요 없는 것들인데 내겐 따로 모아놓은 자료 같은 거라 하나라도 없어지면 속상한 마음에 마구 짜증을 낸 것이다. (이제야 느끼는 거지만 얼마나 꼴값이었을까?) 그래서 책상 위에는 접근금지 딱지를 붙여두고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뒤엉켜있는 물건들 중에 필요한 물건들을 찾게 될 때가 문제인데 대개의 경우 내가 안 버린 물건은 다 이 위에 있는 거기 때문에 헤집으며 찾으면 됐다. 내가 안 버렸는데 안 보이는 경우는 엄마가 버렸거나, 엄마마저 손대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 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오겠지 마음 놓고 지냈다. 그러다 책상 위 빈자리가 좁다거나 삘이 꽂히는 날이면 모든 서랍까지 뒤집어서 하루 온종일 정리를 하는데 막상 그래도 버리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이 함정. 그저 대충 비슷하게 줄 세워놨을 뿐이랄까. 정리하고 딱 2~3일 정도만 봐줄만하고 다시금 어지르기를 반복했다.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도 내 책상은 물리적인 짐은 많지 않은데도 가장 산만하고 어질러진 채였다. 이건 내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봐도 마찬가지다. 모든 하던 작업에 대한 자료들이 노트북 바탕화면에 널브러져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분명 버리고 정리를 하는데도 어느 정도 이하로 줄어들지 않는다. 핸드폰 화면은 그나마 폴더 작업을 해둬서 비슷한 기능끼리 같이 들어있지만 인터넷 창이 최소 20개에서 50여 개 정도가 항상 열려 있다. 언젠가 관심 있어서 찾아봤던 자료들이 정리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이건 추후 미루기에서도 다시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머릿속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정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쓰게 될 거라는 생각에. 그래서 더욱 정리와 비우기를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내 머릿속 의식의 흐름들



가끔 뒤엎어 치우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절이 있는데 함께한 세월보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긴 사람과 같이 살게 됐다. 처음이야 짐이 몇 없고 남편에게 잘 보이려 나름대로 열심히 치웠다. 물론 그렇다고 정리 안 되고 쌓아놓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안 보이진 않았을거다. 신혼 초 집들이를 하고 받은 롤휴지가 세 묶음 정도 있었는데 이걸 어디에 어떻게 치워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위치를 정해주면 치울 텐데 넣을만한 자리가 내게는 떠오르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작은방 문 옆에 층층이 쌓아뒀는데 1년 여가 지나 휴지를 다 쓸 때까지 그건 거기가 고정위치가 되어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며 집구석구석을 차지하는 물건이 생겼다. 물건이 증식하며 집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물건을 쓰고 바로 원래 있던 자리에 치우면 될 텐데 바로 안될 경우는 문제다. 사실 기억력 문제가 있어서 눈에 안 보이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완료하지 않은 일들은 눈앞에 남겨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게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 몇 달을 쌓여있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물건들이 자꾸 눈에 밟히면 치우면 되지 않냐 싶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건 익숙해진 물건이고 익숙한 자극이기 때문에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피해 다니는데 그 물건이 불편하다거나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잘 안 드는 거다.



소파 위에 빨래가 항상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조가 된 빨래를 바로바로 치우지 않고 소파 위에 러 놓다가 다음 주기(?)의 빨래 건조가 끝나서 보태지려 하면 부랴부랴 그전 세탁물들을 개어서 옷장에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분명 집안일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집이 항상 어수선한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애매하게 환경을 신경 쓰는 마음이 있어서 쓰레기도 마구 버리지 못한다. 미국처럼 그냥 한 봉지에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담아 버렸으면 이렇게 어지럽지 않을 텐데 재활용을 할라치면 우유팩이나 플라스틱 등이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씻고 건조하느라 널브러놓고, 붙어있는 스티커등을 자국 없이 떼서 버리는 것에도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렇게 신경 쓸 것이 늘다 보면 금세 지쳐서 몰아놓고 미루기 일쑤다. 당근 같은 중고거래도 쉽지 않다.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어 올리고 구매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단계를 이어 가는 게 미리 지쳐 버린다.



이것은 내가 가진 문제의 한 단면일 뿐이지만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로 비쳐 게으르다거나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자연히 나온다. 게으름만은 아닌 거 같은데 나로선 말로 설명할 재주가 없고, 핑계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다. 산만한 내 머릿속 같은 집이라 나야 불편함이 없지만 당신의 머릿속은 아닐 테니... 자꾸 내 머릿속과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



구조화, 조직화가 안 돼서 못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정리책들을 수없이 봐왔고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ADHD는 해야 할 일들을 아주 세세하게 나눠서 10분 이내로 할만한 일들로 나눠보라고도 한다. 의식적으로 뭔가를 하기 힘든 ADHD는 생산적인 습관을 만들고 체득하라고도 한다. 오랜만에 맘 잡고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일단 뭐라도 하라는 말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가 제일 어렵지만 핑계 댈 동안에 그냥 하는 걸로. 안 되면 또다시 시작하는 걸로.



언젠가 머릿속도 삶도 정리되긴 하는 걸까?


혹시 치료를 받으면 모르던 정리법을 알아지고 그런건 아니겠지?


이미지 출처: UnsplashSamantha Gades


이전 01화 사람이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