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수능생의 엄마였던 시간을 추억하다
일주일 후면 수능.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학급 게시판에 붙어 있는 11월 급식 표의 18일에 하트표를 몇 개나 그려 놓았더군요.
“수능 치는 날에 하트가 많네요?”
아이들은 목소리 높여 대답합니다.
“학교 안 오는 날이니까요.”
그리고 한 아이의 말이 뒤따라 옵니다.
“맨날 맨날 학교 안 오면 좋겠어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바로 피드백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금요일 등교 지도할 때마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생각이 나서...
축 처진 어깨로 한걸음 한 걸음을 마지못해 걸으면서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
“어서 오세요. 학교에 와주어 고마워요.”
아이는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음~~’하고는
“네....”
35년 차 과학교사인 나는 수업을 디자인할 때 그 아이에게 학교가 오고 싶은 곳은 아니어도 학교에서의 시간들이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나는 어떤 교사인가?”
“나는 나와 아이들의 삶을 위해 어떤 것을 하는 교사인가?”
교사로서 고민이 많은 샘정입니다.
수능일에 학교에 오지 않아 좋다며 하트표를 해둔 급식 표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고...
점심시간에 모니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써 두었던 글을 수능 관련 글을 검색해 보았고,
14년 전인 2007년 11월에 첫아이의 첫 수능을 맞으면서 수능 치기 전 날 썼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 보았어요.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을 엄마의 첫아이로 살아온 33년이라는 시간.....
그러하기에 늘 고맙고 고마운 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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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예슬이에게
사랑하는 딸 예슬이에게,라고 적어 놓고 한참을 있었단다.
가슴에 따뜻하게 밀려오는 그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게 하더구나.
우리 딸,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아마 올해 엄마가 우리 예슬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고마워’일 거야, 그지?
고마워, 슬아.
이 말 참 많이 하면서 지나 온 시간들이었어.
넌 정말 열심히 잘 해주었지. 엄마는 늘 이제 그만 자자, 너는 조금만 더 하고요, 하며 실랑이도 많이 했었지.
아버지는 은근히 조금 더 시키지 자라고 한다며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찌르던 적도 적지 않았단다. ㅎㅎㅎ
네가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 온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는 집에서 네가 충분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버지는 엄마보다.... 알지? 아버지가 우리 예슬이에게 기대도 크고 그래서 조금 욕심을 낸다는 것을. 그래도 그 기대와 욕심이 너를 힘들게 할까 봐 얼마나 조심하시는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엄마는 아버지도 참 고마워.
언제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아버지거든. 가끔 예슬이를 향한 마음이 조금 지나쳐 슬이에게 부담이 될 때도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 정도는 네가 받아주었으면 해. 슬이가 생각이 깊은 아이라 그런 것 정도는 잘 알아서 하는데도 엄마가 괜한 부탁이다, 그지? 지금까지 그렇게 해주었다는 거 잘 아는 엄마가 말이야.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우리 예슬이를 생각하고 있으니 엄마 마음이 따뜻해지고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생기는구나. 엄마에게 우리 예슬이는 그런 존재거든.
가끔 네가 힘들 때에 엄마와 의논해 주고 엄마에게 기대주어서 고마웠어. 물론 알아. 네가 엄마에게 다 표현하지 못했었다는 거. 너 혼자 견디고 참아내고 이겨내야 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그리고 잘 이겨내 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 고마웠고 지금도 그래.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고 난 뒤에도 너는 늘 잊지 않고 엄마에게 이야기했었지.
‘죄송해요. 학교에서 너무 많이 쌓이다 보니.... 집에서.... 어머니께 풀 수밖에 없어서.... 죄송해요. 그리고 늘 그거 다 받아주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고마워요. 어머니가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죠?’
네가 그랬지.
‘잘 칠 거예요. 그리고 지난 온 시간 후회 없어요.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했기에......’
수능 끝나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면서, 그중에서도 보육원이나 공부방에서 미술과 공부 가르쳐주는 자원봉사하고 싶으니 알아봐 달라는 너를... 도저히 안아주지 못하고는 견딜 수 없었단다.
그리고 어제 신발 하나 사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가 참 많이 미안했었어.
“내일 시험 칠 학교에 가봐야 하는데 신발이 다 떨어져서....”
진즉에 말하지 그랬느냐고 했을 때 네가 그랬지.
학교까지 멀지 않아 그런대로 참을만했다고, 학생화 신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신발 이야기하면 엄마 금방 사러 가자 할 테고 그러면 돈이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이제는 굳이 학생화 아니어도 될 것 같으니 마음에 드는, 대학가서도 신을 수 있는 걸로 하나 사달라고 하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기특하던 지.
공부하는 너를 불러 심부름 시켜도 씽긋이 웃으며 해주던 너,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널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도 알아서 척척 챙겨가면서 도리어 피곤해 하는 엄마 걱정해 주고 괜찮냐고 문자 넣어주던 너였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참 좋은 너라는 거, 아니? 엄마에게 우리 예슬이는 말이야.
사랑해. 언젠가 엄마가 이야기했었지? 넌 엄마의 희망의 증거라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워. 네가 지난 온 시간들은 네 인생의 너무나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 줄 거야.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워.
어제 박세리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했었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울까요?”
“가장 어려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일 거야. 좌절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을 거야. 하지만 결국 그것을 이겨냈으니 지금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엄마는 우리 예슬이도 박세리 선수 못지않다고 생각해. 아니 그 이상일 거라고 엄마는 믿어. 수능이 목표가 아니라는 거 알지? 앞으로 우리 예슬이 앞에 펼쳐질 세상을 생각해 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껏 너의 것으로 만들어 갈 시간들을 말이야. 그 생각을 하니 엄마 마음이 너무 떨리고 설렌단다. 세상을 너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가리라 믿어.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네가 느낀 것이 자신감이었다고 했었지?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노력의 결과이고 그 자신감이 최고라는 결과를 안겨다 준거라고 말이야.
우리 예슬이도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어.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네가 노력하면서 지난 온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내일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마음만 유지해 주길 바라.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달려와 준 우리 딸, 파이팅.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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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소녀들의 과학쌤인 교사 샘정이 엄마로서 쓴 편지를 읽으며 교사로서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이라는 기회는 절대 없기에,
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이므로....
엄마의 딸이 되어 세상에 와 주겠니?
라고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데려왔기에
엄마가 내 엄마여서 좋아요
이 한 마디가 목표라 말했던 초보 엄마 샘정이었는데......
서른셋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 말을 해주는 딸입니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좋아요.
몇 번을 들어도
고맙고
고맙고
고마운 말입니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습니다.
니가 엄마 딸이어서 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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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과의 시간 역시
절대 다시 할 수 없는 시간들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소중하니까요.
빨간색 부츠를 신은 덕분에(?)
중1 소녀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쌤~~~ 예뻐요."
더 기쁜 말
"쌤~~~ 우리 오늘 과학 들었어요. 좋아요. 이따 만나요."
아, 수능 일주일 전이라 수능생들에게 뭔가 응원이 있어야겠죠?
작년에 했던 수능 응원 나눔.
더 이상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대신 수능 치는 아이들이 달라졌으니
그대로 또 합니다.
https://m.blog.naver.com/saemjeong/222154800871
운빨 찐~~~하게 농축하여 담았으니 효과 만점일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