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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미르 Oct 27. 2017

내려놓음을 마주하다

<16번째 커버곡>

Cheating On Me - Kwabs


Kwabs - Cheating On Me (Official Video)


축 처진 어깨, 쾡한 눈, 모래 속에 푹 빠진 듯 걸음걸음이 무거운 두 발.

짜증 섞인 알람 소리가 나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먼지 가득한 버스가 나를 데려간다.

더 이상 그다지 반갑지 않은 햇살이 여전히 내 발 끝자락을 비추지만, 딱 그까지인 듯하다.

더는 나에게 생기 가득한 그 빛을 나눠주지 않는 느낌이다.

거리에 가득한 소음들은 나의 하루를 비웃는 듯 소리치지만, 아무것도 틀어놓지 않은 이어폰의 틈 사이로 속삭일 뿐이다.

마치 막 하나를 거쳐 들리는 듯한 그 소리들은 나를 어디에서 속하지 않은 이질적 존재로 만들어준다.


오늘도 수화기 넘어 어머니에게 잘 지낸다는 헛소리를 지껄인다.

부모님의 또 다른 걱정거리이기를 처절하게 거부하듯이 말이다.

몇 달에 걸친 결과물을 바라보는 것도 이제는 행복하지 않다.

작품 속 비친 해진 내 모습이 보여서일까.

아니면, 내가 선택한 지금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는 안쓰러움이 보여서일까.



'남들도 다 힘들다.' 혹은, '이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속여오진 않았을까.

내가 직전 선택할 길이기에 차마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힘들진 않았을까.

어느새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지쳐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곡이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재즈를 전공한 크왑스(Kwabs)의 2015년 발매된 데뷔 앨범 [Love + War]의 수록곡 'Cheating On Me'.

지금은 그의 음악성과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그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꿈꾸진 않았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커버곡이 많은 뷰수를 기록하며 그는 레코딩 계약을 따내게 된다.

그렇게 녹음한 두장의 *EP앨범과 한 장의 정규 앨범은 그를 다음 앨범이 기대되는 아티스트로 만들어준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울림이 있는 그의 바리톤과 같은 음색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귀가 아닌 가슴속의 무엇인가를 울리게 만든다.

물론, 그가 차분하고 우울한 노래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앨범에는 'Walk'와 같은 *미디엄 템포의 밝고 경쾌한 곡들도 상당수 수록되어있다.

그럼에도 그의 울림이 큰 목소리는 이 곡처럼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영국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 : 1822년 설립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교육 기관이며 미국의 줄리어드, 독일의 베를린 음악대학 등과 함께 세계 5대 음대로 평가받는 명문학교

*커버(Cover) : 기존에 있는 원곡을 편곡하여 부른 곡, 흔히 리메이크 곡이라고도 불린다.

*EP : '싱글판'이라고 불리는 한 면에 한곡만이 녹음 가능한 레코드,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음반을 가리킨다.


*M/V속 크왑스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참회를 하듯 말을 건넨다.

포기를 고민하는 자신이 미운 것일까 아니면, 점점 지키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한탄을 하는 것일까.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갈 모습도, 고통 속에서 꿈을 붙잡고 살아갈 모습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며 수없이 되뇐다.

마치, 어떤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인지 모를 정도로.

어쩌면 어떤 삶을 선택하든 거울 속 다른 하나의 나의 모습은 안타까움 섞인 표정으로 날 바라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M/V(Music Video) : 뮤직비디오의 준말


이 곡은 전체적으로 마치 악기들을 보컬의 등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연주되듯이 배치하면서 보컬의 영향력을 오롯이 전달해준다.

발걸음 소리와 같은 비트와 함께 시작하는 *인트로부터 쓸쓸한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려준다.

*훅에서는 일부분에서만 백업 코러스를 사용하면서 그 짧은 순간 강약 조절을 하고 있다.

백업 코러스로 채울 수 있는 부분들을 비워둠으로써 공허한 마음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한 점이 특히나 매력적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가기 전 피아노 *코드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은 또 어떠한가.

감정이 고조되기 마련인 하이라이트 보다도 더 큰 울림을 가지고 있다.


*인트로(Intro) : 곡의 시작을 이르는 말

*훅(Hook) : 노래의 끝이나 중간 부분에 같은 멜로디를 반복해서 부르는 부분

*코드(Chord) : 화음


참 슬프게 아름다운 곡이다.

어떤 선택도 후회가 남기 마련이라 말해주는 씁쓸한 곡이다.

어쩌면 이제는 내 고집으로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줄 때를 알려주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위로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

이제는 정말 내려놓아야 할 때라는 것을 싫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날 속여 비참해지는 모습을 보이진 말자.




P.S.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바람 부는 새벽과 어울리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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