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4. 나의 무지와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행함에 있어 경험적 한계를 가지고 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한계로 인하여 내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선택한 노선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다른 이들과 차이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위의 내용을 언급한 이유는 나와는 다른 노선을 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의 그 경험적 차이는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함’이라는 것은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되는 편견과 차별, 무시, 피해와 같은 것들의 당사자가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당사자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이며 그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가며 나의 경험적 무지를 채워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적 차이 또는 무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조차 이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가지는 특권임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렬하게 일렁이고 있는 이 순간에 누군가는 그 물결에 몸을 맡길 수도, 누군가는 격렬한 저항의 헤엄을 칠 수 도 있다.
이러한 시류에서 필자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배워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개인주의적 성향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다른 노선을 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그 근원적인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일 수도 있다.
나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정신적 피해를 주고, 범죄자가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본적인 동기에 뒤따라오는 것이 ‘누군가가 나로 인해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누군가가 나로 인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이다.
아무리 타인을 중요하게 여기고 배려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자기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던 ‘경험적 차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동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와 같이 ‘경험적 차이’ 혹은 ‘경험적 무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차이점과 무지 때문에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망설여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