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수용
그날 오후, 국어 수행평가 시간 대신 연극 준비를 하는 날이었다. 반마다 교실이 부족해서 성준의 조는 기술·가정실을 쓰기로 되어 있었다. 가사실 안은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와 반짝였고, 조리대 위에는 나무 도마와 식기들이 정돈돼 있었다.
민수가 먼저 와서 조리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도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여기 좋다. 이 도마 위를 무대처럼 쓰면 되겠다. 동선 정하기 딱이야.”
재훈이 문을 닫으며 웃었다.
“우리가 요리하는 거야, 아니면 연극 만드는 거야?”
“둘 다지. 연극은 요리 같은 거잖아.” 민수가 도마를 툭 쳤다.
도마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예림은 분리수거함 옆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이거 봐. 병뚜껑 색깔 다 다르다. 초록, 파랑, 빨강, 은색.”
“그거 좋네.” 민수가 눈을 반짝였다.
“이걸 사람 위치 표시하는 데 쓰자. 토끼는 빨강, 자라는 초록, 왕은 은색, 내레이션은 파랑.”
“그럼 우리 병뚜껑 조합으로 동선 정하자.” 재훈이 도마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 여기 중앙이 무대고, 왼쪽이 바다, 오른쪽이 육지. 토끼는 이쪽에서 뛰어오고 자라는 여기서 나와.”
예림이 병뚜껑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병뚜껑이 도마 위에서 딸깍 소리를 냈다.
“이 초록색이 자라고, 빨간색이 토끼.”
“좋아, 그럼 시작점이 이쯤이지.” 민수가 병뚜껑을 손가락으로 톡 밀었다.
성준은 조용히 앉아 그걸 보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동선 짜는 거지.”
“근데 굳이 도마를 무대처럼 쓸 필요 있어?”
“그게 보기 편하잖아.” 민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게 도마면 여기서 자라가 잡히는 장면, 이쪽 끝에서 토끼가 도망치는 장면.”
성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도마를 자세히 봤다. 나뭇결 사이로 칼자국이 얇게 파여 있었다.
“근데 이건 요리할 때 쓰는 거잖아.”
“그래서 더 좋잖아. 자라가 바다에서 산 거니까, 여기서 토끼 간을 요리하려는 느낌으로 가면 웃기지 않겠냐.”
성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게 재밌다고?”
“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냥 그림처럼 생각해 봐. 병뚜껑이 인물이야.”
재훈이 끼어들었다.
“봐봐, 이렇게 토끼가 자라한테 간을 뺏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자라가 당하는 거야.”
그는 빨간 병뚜껑을 잡아 초록 병뚜껑을 툭 쳤다. 병뚜껑이 굴러가 조리대 밑으로 떨어졌다.
“자라 아웃!”
민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진짜 좋다. 이걸 그대로 무대에 쓰면 재밌겠다.”
“이걸 무대에서 어떻게 하냐.” 성준이 말했다.
“그냥 상징이잖아. 자라가 쓰러지는 거지.”
“그건 그냥 장난이지.”
“야, 장난이 나쁠 게 뭐 있어. 연극은 원래 재밌어야 한다니까.”
예림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무 단순하면 점수 깎일지도 몰라.”
민수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선생님은 협동이랑 아이디어 보신다잖아.”
성준은 도마 위 병뚜껑들을 내려다봤다.
빨강, 초록, 파랑, 은색. 각자의 역할처럼 색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 색깔이 도마 위에서 서로 닿지도, 섞이지도 않았다. 서로 다른 면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병뚜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초록색이었다.
“이게 자라지?”
“응.”
“그럼 이게 토끼를 향해 움직이면 되는 거야?”
“그렇지.”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어디로 가는 거야?”
“거기까지는 안 정했어.”
“그러니까 결국 방향도 모르잖아.”
그 말에 재훈이 살짝 짜증 섞인 웃음을 지었다.
“야, 그런 건 나중에 맞추면 되지. 지금은 흐름만 보는 거야.”
“흐름이라…” 성준은 병뚜껑을 손끝에서 굴렸다.
“이게 흐름을 보는 거야? 그냥 병뚜껑 옮기기지.”
민수는 피식 웃었다.
“야, 니 말투 진짜 교과서 같다.”
“그럼 그냥 교과서대로 하든가.”
짧은 침묵이 흘렀다.
예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준아, 그냥 한 번 해보자. 어차피 수정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그 말에 성준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그는 도마 위의 병뚜껑을 원래 자리로 올려놨다.
빨강이 중앙으로 가고, 초록이 왼쪽으로 옮겨졌다.
민수가 말했다.
“좋아. 그럼 이걸 기준으로 대사 맞춰보자.”
대본이 다시 펼쳐졌다. 민수가 읽었다.
“토끼: ‘나를 속인 벌로 너는 껍질이 벗겨질 것이다!’”
재훈이 자라 역할로 말했다.
“‘용서해 줘.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좋아.” 민수가 박수를 쳤다. “이제 예림이가 내레이션으로 분위기 넣으면 된다.”
성준은 대사를 따라 읽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병뚜껑이 도마 위에서 굴러갈 때마다 부딪히는 소리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그건 꼭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야, 성준아. 네 표정 왜 그래.” 재훈이 웃으며 물었다.
“그냥.”
“또 맘에 안 드는 거야?”
“아니. 그냥 하자.”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완성부터 하자.”
성준은 펜을 들어 대본의 빈칸에 메모를 했다.
‘대사 후 움직임 애매함.’
‘자라, 무대 중심 이동 필요.’
그는 적다가 멈췄다.
‘이걸 내가 왜 이렇게 신경 써야 하지.’
그는 펜을 내려놓고 도마를 바라봤다. 병뚜껑들은 그대로였다. 색이 다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위에 빛이 들이쳤다. 병뚜껑의 금속 표면이 반짝였다.
그 순간, 문득 어제 병따개가 떠올랐다.
병뚜껑이 ‘딱’ 하고 열리던 소리.
그때는 병뚜껑이 열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꽉 닫혀 있는 느낌이었다.
민수가 말했다.
“좋아,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
재훈이 병뚜껑을 모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뚜껑들이 서로 부딪히며 ‘짤랑’ 소리를 냈다.
성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로 잘하려면, 위치보다 방향이 먼저 정해져야 하는데.”
“뭐라고?” 민수가 되물었다.
“아니야.”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마 위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다가 손바닥으로 그 자리를 닦았다.
도마의 나뭇결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조금은 들었다.
그건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감정이었다.
(1) Receive - 수용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특정한 역할 속에 놓인다. 가족의 일원, 학생, 구성원 같은 위치는 선택이 아니라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 속에서 자리를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개인은 스스로를 정립하기 전에, 먼저 주어진 질서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 직원처럼 이미 정해진 위치는 개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따라야 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우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는 최소한의 자격을 얻는다. 역할 수용은 강요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공동체에서 살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존재를 인정받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받아들임은 곧 책임과 제약을 동반하므로, 우리는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에 직면하게 된다.
(2) Embrace - 제약의 인정
주어진 역할은 언제나 책임과 제약을 수반한다. 개인은 그 무게를 피하지 못한 채 수용해야 한다.
책임은 개인을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압박을 준다. 교사의 규율, 학생의 성취 압박, 직장인의 성과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런 제약을 견디는 과정에서 사람은 사회가 기대하는 행동 방식을 내면화하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기술과 습관을 익히게 된다. 그러나 제약을 감당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개인은 자기 욕구와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며, 때로는 스스로의 선택권을 억누르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규율을 배우는 계기가 되지만, 동시에 심리적 긴장을 쌓아 두며 불안과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견디는 경험은 학습과 성장의 기회이면서도, 내적 갈등과 의기소침을 동반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사람들은 저항을 줄이고 점차 순응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3) Lessen - 순응
처음 역할을 받아들일 때는 반발이나 저항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대다수는 저항을 줄이고 순응을 선택한다.
순응은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려는 전략이다. 저항을 지속하면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개인은 스스로의 저항을 줄이고 적응을 택한다. 순응의 과정에서 사람은 역할의 규칙과 기대를 점차 내면화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힌다. 그러나 순응은 자기표현을 줄이는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는 습관은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역할과 자아 사이의 불협화음을 심화시킬 수 있다.
순응은 질서 유지를 돕지만, 동시에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과정을 내포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누그러뜨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다.
(4) Ease - 자기 타협
역할을 수용하는 과정은 갈등을 낳는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기대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조정하거나, 사회적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한다. 때로는 역할 수행을 최소화하거나, 책임의 일부만 충실히 이행하는 방식으로 긴장을 줄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순응하되 내면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통해 갈등을 줄인다. 이런 조정은 완벽한 해소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절충안이다. 갈등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자기 욕구를 일부 포기하는 동시에, 사회의 요구에 지나치게 맞추는 위험을 안게 된다.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은 역할 수용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내적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남겨둔다. 이런 긴장이 지속되면, 결국 감각을 둔화시켜 적응하려는 단계로 나아간다.
(5) Numb - 둔화
오랜 갈등 속에서 계속 민감하게 반응하면 지치게 된다. 그래서 개인은 점차 감각을 둔화시켜 적응을 시도한다.
둔화는 방어적 전략이다. 불만과 긴장을 무디게 하여 일상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역할로 인한 긴장과 압박이 심할수록, 개인은 감정을 차단하거나 무관심을 선택해 안정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고통을 줄이고 공동체 속에서 자리를 지키게 하지만, 동시에 자기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역할의 의미를 되묻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변화 가능성에 둔감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따라서 둔화는 생존을 가능케 하지만, 자칫하면 역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잃게 되는 위험한 적응 방식이 된다. 이 상태는 결국 불만을 억누른 채 버텨내는 태도로 이어진다.
(6) Tolerate - 용인
수용 과정에서 불만은 끝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불만을 억누른 채 역할을 지속한다.
용인하며 버틴다는 것은, 역할 수행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의무임을 보여준다. 개인은 불만을 마음속에 남겨 둔 채, 겉으로는 역할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는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는 안정되지만, 개인은 점차 자기 목소리를 억압하게 된다. 억눌린 불만은 일상적으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누적되면 무력감이나 냉소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버틴다는 선택은 잠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적 균열을 심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용인하며 버티는 경험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시키지만, 동시에 개인의 내면에는 불협화음을 쌓아 두는 결과를 남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순한 수용을 넘어, 주어진 책임을 따르는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도마는 음식 재료를 올려놓고 칼질을 받아내는 도구다.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재료가 손질될 수 있도록 충격을 묵묵히 감내한다.
역할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이와 같다. 개인은 주어진 요구와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움직이지 못한 채 충격을 받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행동은 제한되지만, 동시에 사회적 역할에 적응하는 훈련의 장이 된다.
따라서 역할을 도마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필요한 준비 단계라는 관점이 가능하다. 그러나 도마 위에 머무르는 재료가 결국 잘려 나가듯, 이 단계에만 머물면 위험하다. 수동성은 피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능동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