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버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살구나무 아래에서

by 전재규


나는 철부지였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2부제 수업을 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동네 아이들은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 12시가 되면 집으로 왔다.

문경군 점촌읍 모전리,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우리 집이 있었다. 철없는 아들을 달래다 지친 부모님은 학교로 가는 꼬맹이들을 붙잡고 부탁을 했다. 나는 엉엉 울면서 버텼고, 동네 친구들은 나의 팔을 잡고 학교까지 질질 끌듯이 데려가곤 했다.

거짓말을 하고 학교 대신 냇가에서 놀던 날,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게다가 학용품 사라고 준 돈으로 평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샀다.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는 장난감을 본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날 아버지는 처음으로 매를 들었다. 그동안 허허 웃으며 어린 아들을 관대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아버지는 더는 안 되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듯했다. 아버지의 회초리는 어린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몇 대를 맞자 종아리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버지는 잘못했다고 눈물 흘리는 나에게 가차 없이 20여 대를 때렸다.

그것도 부족하다 생각하셨는지, 한약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했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한마디씩 꾸중을 했고, 친구들은 약을 올리며 놀려댔다. 주눅이 들고 부끄러워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아버지는 약방 안으로 나를 불렀다. 종아리는 매 자국으로 선명했고, 눈물을 흘려 눈도 부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잘못했다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이 녀석아. 이제 학교에 제대로 다닐 테냐?”

나는 훌쩍거리느라 냉큼 대답도 못한 채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서주우유와 삼립빵 하나를 건네셨다.

“네가 어릴 적 이야기 하나 해주랴?”

아버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스케키 먹고 많이 아팠던 거 알아?”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살이었으니 기억이 날 리 없었다.

“그때 네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다. 난 할아버지 댁에 펌프가 고장 나서 함창에 가 있을 때였지.”

처음 듣는 얘기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가서 보니 펌프의 부품을 교체하는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고칠 사람 찾느라 밖으로 나갔지.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그날따라 경로당에 나가 있었고...... 그때 일이 벌어졌다. 한약방 앞에 아이스케키 장수가 왔었는데, 네가 먹고 싶다고 엄마한테 그렇게 졸랐다는구나. 그 아이스케키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부터 네가 많이 아팠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은 거예요?”

“주사로는 어림없었다. 점촌에선 고칠 사람이 없어 대구까지 가야만 했어. 요즘처럼 전화가 잘 될 때가 아니었지. 엄마는 교환원 통해서 할아버지 댁에 급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난 밖에 있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네 엄마는 할아버지 댁이랑 주변 집이랑 다 전화를 걸었지만, 그날따라 다 전화가 안 된 거야. 엄마가 그때 얼마나 걱정이 많았겠니? 애는 열나지, 설사하고, 고열에 축 늘어져 있지, 나한테는 연락 안 되지.”

아버지는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다. 집에 편지를 남겨놓고 차를 타고 대구로 갔어. 난 늦은 밤 집에 와서야 대문에 붙여놓은 네 엄마의 편지를 보게 되었다. 아들이 고열에 쓰러졌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그때만 해도 밤에 택시도 없었다. 오래 기다렸다가 잡으면 대구는 멀다고, 돌아올 때 그냥 돌아와야 한다고 안 가겠다고 하는 거야. 택시기사를 잡고 사정사정을 했다. 나중에는 무작정 타고 버텼다. 아들이 죽어간다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난 숨죽여 들었다.

“새벽 무렵, 대구 큰 병원에서 도착해서 엄마와 널 보았다. 넌 여전히 몸이 펄펄 끓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토하고 설사를 하더라. 얼마나 설사를 했던지 나중엔 나오는게 없더라. 노란 물을 토하고, 변엔 피가 묻어 나오더라. 엄마는 이미 반은 정신이 나가 있었고......”

아버지는 이야기를 잠깐 멈추었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고통스러운지 눈을 감으셨다. 나는 종아리의 통증도 잊은 채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약방 벽에 걸려 있는 태엽시계의 추가 똑딱거리며 정적을 깨고 있었다.

아버지는 길게 숨을 토하고는 다시 말씀을 이어 나갔다.

“당시에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를 만났지. 나중엔 장관도 한 양반이야. 그 사람이 뭐랬는지 아니?”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입원할 필요도 없고, 아들을 새로 낳으라 하더라.”

내가 죽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곧 무서움이 밀려와 어깨를 떨었다. 내 속을 훤히 꿰뚫기라도 한 듯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축 처져있는 조그마한 널 보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겠다고 결심했다. 큰 병원에서는 포기했지만, 애비는 아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이지. 난 의서를 뒤지며 여러 가지 처방을 했다.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붙여서 밤새 약을 달이고 또 달여서 너에게 먹였어.”

나는 입안에 넣은 삼립빵을 씹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몇 가지 처방을 했지만 듣지 않았다. 마지막에 ‘청상보하탕(淸上補下湯)’이라는 처방을 복용한 후, 새벽부터 거짓말처럼 열이 떨어지더라. 점심으로 죽을 조금 먹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말도 못하던 네가 엄마 아빠를 부르더구나.”

아버지는 다시 말씀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들아, 종아리 많이 아프냐?”

아들의 종아리가 붉게 부어오른 걸 본 아버지는 책상 서랍에서 자운고(紫雲膏) 연고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연고의 화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손끝에 연고를 듬뿍 담아 종아리 구석구석 발라주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참기 힘든 쓰라림에 나는 끙끙거렸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약장에서 몇가지 약재를 담아 첩약을 짓고는 탕약을 달였다.

학교를 가기 싫어했던 철없는 아이였지만, 그때 그 순간만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졌다. 그리고 작은 결심을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걸로, 다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다음날부터 가방을 메고 제일 먼저 학교에 가는 학생이 되었다.




********

“이제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담당의가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던 나를 밖으로 불러 전해준 말이었다.

2월 1일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힘겨운 밤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웠지만, 아버지는 1월의 마지막 날을 버티어냈다.

당신과 함께 맞이하는 새벽. 내일도 함께 여명을 바라볼 수 있을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영하의 기온에 유리창 가장자리엔 서리가 끼어 있었다. 마음은 더욱 춥기만 했다.

이제 어쩌지......

한의원의 부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 진료를 부탁하였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아버지는 몰핀주사를 맞고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당신의 고통을 나눠 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고개를 젓고 있다. 지금이라도 기적은 있을까? 난 아버지의 아들로, 한의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난 생사를 헤맸던 어린 시절의 여름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 선 아버지.

더 평안한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려는 하느님.


그 분의 품에서 안식하길 바라면서도, 난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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