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아래에서
“아버지. 불임환자에겐 어떤 처방을 써야 합니까?”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 곁에서, 난 당신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적고 있었다.
아버지는 짐짓 눈을 흘기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조경종옥탕 써 봐. 잘 안되면 귀비탕도 써보고. 오래될수록 세제(劑) 이상은 써야 해.”
“남자는요? 남자는 약을 안써도 돼요?”
“너는 학교 다닐 때 어떻게 배웠냐?”
아버지는 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사육탕에 토사자, 구기자, 골쇄보, 파극 이런 거 넣으라고 배웠는데요”
“그것만으론 부족해, 백강잠이랑 황기도 같이 넣어. 양도 배방(倍方)으로 하고.”
아버지는 처방에 대한 대화를 할 때면,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는 듯 생각나는 관련된 처방과 약재 등을 상세히 말씀하셨다.
“아버지 오늘 당뇨환자가 왔는데요. 황기 맥문동 인삼 이걸 기본으로 쓰면 잘 될까요?”
“낫는다고 그랬냐?”
“그래도 희망은 주어야죠. 양약을 쓰면서 한약을 함께 쓰자고 했습니다.”
“거기에 사삼, 진피도 가해 보아. 그리고 길게 써야 해. 이건 확답하면 안 돼. 당뇨는 어려워.”
콜록. 아버지는 말하기가 힘드신지 잠시 일어나서 가래를 길게 뱉으셨다.
“아버지, 나가서 좀 걸을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부축하고, 함께 나란히 병동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로 서울대병원 7층은 간암 환자 병동이었다. 병원은 열십자 형태의 특이한 건물구조였다. 아버지는 링거줄이 달린 폴대를 잡고선, 열십자 모양의 복도를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하셨다. 어제는 바로 일어나지 못해 화장실 문을 열기 전 바지에 실수를 하셨다. 난 웃으며 닦아내었지만, 당신은 그것이 부끄러웠는지, 다시금 운동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이셨다. 아버지는 이미 10kg 이상 빠져 예전의 풍채 좋던 모습은 어디 간데없었다. 복도를 십여분 정도 걷고, 중간에 있는 휴게실에 함께 앉았다.
“다시 시작하자. 감기환자 처방은 어떻게 하냐?”
“기침 환자는 삼소음원방, 콧물 환자는 소청룡탕 위주로 합니다.”
“삼소음 원방 쓰냐? 원방으론 안된다. 너는 고집이 세서 아버지 말 정말 안 듣는구나.”
약 처방에 대한 관점에선 아버지가 투병 중이라도 나 또한 양보할 순 없었다.
“기본적으로 비위를 보하면서 기침을 다스리므로 원방이 더 좋은 거 같은데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셨다.
“이 녀석아 일단 기침이 멎어야지. 그러려면 백부근 전호 패모 소자를 더 넣어야 해. 내가 수 십 년 해보고 하는 얘긴데. 네가 대학에서 잘 배웠어도 이런 거 알아야 해!”
휴게실 옆 병실의 환자가 화를 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난 아버지와의 대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의사인 나로선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삶이 보이고 있었기에.
평생을 한약방을 하신 아버지도 같은 예감을 하셨으리라.
아버지와 난 병원에 있는 동안 이런 문답을 계속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점점 위중해지는 가운데에서도 부친의 46년 가업 영창당한약방은 그렇게 이어져야만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첫 아이의 백일이었던 지난 11월 28일, 아이의 백일잔치는 집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100이라는 숫자의 초를 꽂은 케이크를 준비했고, 딸아이에게 색동옷을 입혔다.
생명의 기운이 막 피어나는 손주와 달리, 암 수술 이후 아버지는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있었다. 백일이 된 손녀를 안고선 어구구구 까꿍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셨다. 당신은 이내 곧 힘에 부치셨는지, 아이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갑작스런 복통에 배를 움켜잡았다. 방으로 들어가신 아버지는 신음을 하며 끙끙 앓으셨다.
마지막 여정의 시작이었다.
그 날 당신은 고열이 나며 배를 쥐어짜는 고통에 힘들어했다. 좋지 않은 예감에 아버지를 등에 업고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하루 이틀이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한과 고열을 반복하며, 당최 퇴원 날짜를 잡지 못하였다. 보름이 지나서야 열이 잡히며 퇴원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퇴원을 앞둔 전날, 갑작스런 급성황달이 와서 수술을 했다. 며칠 뒤 또다시 퇴원을 앞두고는, 구급차로 이동하다가 부주의로 담즙을 빼기 위한 호스가 옆구리에서 빠지며 다시 응급시술을 해야만 했다.
결국은 병원에서 한 달을 넘기고, 성탄절과 새해 첫날을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난 한의원 진료를 끝낸 후,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으로 퇴근했다. 이제 백일이 넘은 딸아이를 집에 두고서. 얼마 전 뒤집기를 하던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병실 한켠에서 쪽잠을 자며 아버지를 간병하고, 아침이 되면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주말에도 내내 아버지 곁에 있었다. 어느덧 병원에 입원한 지 두달이 넘었다.
두 달여의 입원기간, 환자에겐 힘겨웠지만 부자지간에는 오랜만에 함께 많은 대화를 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만 더.
그저 이 밤을 넘기길 기도하였다.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낼 수 없다.
아버지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부터 호흡기를 다셨다. 산소포화도가 내려갈 때면 숨쉬기가 힘드신지,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곤 하셨다.
당신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조용한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진통제를 투여할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때론 호흡이 오랫동안 멈추었고, 터져 나오듯 힘겨운 숨을 내뱉곤 했다.
아버지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럴 때마다 난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혈관과 힘줄이 드러난 앙상한 손, 이 손을 놓으면 절벽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손수건을 꺼내 당신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드렸다.
지난주만 해도 아버지는 힘들어하긴 했지만, 지난 일들을 추억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한마디의 말씀조차 힘겨워했다. 그럴 때면 차라리 정정하던 시절 당신의 호통과 잔소리가 그리웠다.
병마와 한창 싸울 때는 완치를 소망했다.
입원이 길어지며 어느 순간부터 기적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힘겨워하는 당신을 보며 난 기도했다.
하루만 더 허락해 달라고, 고향땅을 한번만 밟게 해 달라고,
고향에서 당신의 긴 여행을 마치게 해 달라고.
2010년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산소포화도가 다시 내려가며, 기계에서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놀란 간호사는 다시 와서 바이탈 사인을 체크했다. 혈압이 내려가자 다시 승압제를 투여했다. 담당의사는 동공반사 등 환자상태를 확인하고는 분주히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바삐 움직였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감사해요"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자, 깍지 못한 하얀 턱수염으로 나의 볼을 비벼주셨다.
이제 고통 없이 편히 가셨으면 좋겠어요.
난 아버지의 푹 파인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당신은 내 얼굴을 힘겹게 어루만졌다.
그렇게 아버지와 작별하기 이틀 전날 밤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