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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으로는 꽃길만 걸어요.

by 허니리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엄마가 울적한 목소리로 부모 된 도리로서 너희들이 결혼할 때 남들만큼의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본인을 걱정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아직도 잘 못 사는 자신의 걱정을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를 이해 못 했던 못난 나는 그 얘기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희 어머니는 성격이 좀 괴팍하시니까'


내 친구들이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우리 엄마를 '괴팍하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보통 남의 어머니에 대해서 다정하시다던가, 젊으시다던가 긍정적 표현을 하기 마련인데 엄마는 친구들이 보기에 좋은 말로도 '부드러운'류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대체 손님 대접을 어떻게 했길래 저런 말을 듣지? 문전 박대라도 했나? 싶은 평가에

문전 박대는커녕 올 때마다 배가 터질 만큼 음식을 차려주고 이것저것 근황도 물어가며 친근하게 굴었던 엄마 입장으로써는 다소 억울한 일이겠으나, 저런 성격으로 정의 내려진 이유는 그녀의 감출 수 없는 '화' 때문이라는 것을 엄마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일상 얘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가족이 떠오른다거나 (보통 그 대상이 내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집안이 정리되지 않았다거나, 혹은 갑자기 급한 일이 떠올랐을 때 '네가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냐 살 좀 빼!'라던가, ' 사람을 불러놓고 집안 꼴이 이게 뭐야!'라는 둥 욱하여 소리를 지르고야 마는 엄마. 즐거운 대화를 하던 사람에겐 그야말로 날벼락이 따로 없는 종잡을 수 없는 화법이 친구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너희 어머니는 좀 괴팍하신 부분이 있지라는 평을 듣고야 마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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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에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엄마는 그 시절 여느 집이 그랬듯 아들만 지원해 주는 집에서 '희생'과 '성실'을 미덕으로 자라났다. 고등과정 이상의 교육은 여자라고 꿈도 꾸지 못했고 사과의 알맹이조차도 남동생에게 양보해 껍질에 붙은 속살을 갉아먹어야 했던 젊은 날이었지만 그때의 상식으로는 특별할게 없는 일이었기에 가족은 화목했고, 직장에 다니며 가족에 보탬이 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던 평범한 소녀.


큰 야망이나 사회적 불만 없이, 평범하게 좋은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 속에 엄마는 아빠를 만났다. '내가 먼저 보고 왔는데 여자 눈에 눈물 나면 본인은 피눈물이 날 사람이더라'라는 외할아버지의 말과, 한강 유람선을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큰 이모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구두를 벗는 순박함을 보고는 이 남자와 함께라면 한평생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결혼한 뒤 두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장사를 하고 싶다며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낸게 아닌가? 그동안 모아놨던 저금과 친할아버지의 유산까지 모두 투자하여 상가를 운영하게 된 아빠 덕분에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졸지에 청과 가게 사모님이 되어 과일과 쌀을 파는 치열한 맞벌이의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새벽에 출근해 밤이 다 되어서야 집에 오는 생활, 피곤함을 풀 겨를도 없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 신경써야 했으니 엄마의 불만은 극에 달했으리라.


설상가상 장사까지 잘되지 않아 결국 모든 저금을 까먹은 채 상가를 정리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어떻게든 성공해보겠다며 납품과 건설업체 급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사업에 도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순박함과 약간의 허세까지 겸비하여 주변 사람의 말에 잘 휘둘렸던 아버지, 앞으로는 큰돈을 벌 거라며 떵떵거렸지만 묵묵히 함께 어려움을 감내하는 어머니에게 감사함이나 미안함을 표시하지 못했던 아버지, 엄마는 그때부터 마음속의 독을 키워왔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지 않은 날이 없으나 손에 남은 것은 없다. 남들은 자식 다 키워놓고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도 다니며 편하게 산다는데 자신은 아직도 일을 해야 하고 앞으로의 노후생활, 자식의 결혼 등 산더미 같은 걱정들을 당장 해결할 수 없으니 앞으로도 성실하게 사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생활. 누워서도 일어나서도 생각나는 걱정거리들을 어떻게든 갈무리하여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불시에 입으로 내뱉어 결국은 괴팍하다는 소리를 듣고 마는 것이다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엄마가 울적한 목소리로 부모 된 도리로서 너희들이 결혼할 때 남들만큼의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본인을 걱정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아직도 잘 못 사는 자신의 걱정을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를 이해 못 했던 못난 나는 그 얘기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작 35년 산 나의 인생도 힘들다고 이리저리 상처받았노라며 엄마에게 대들었었는데, 그보다 더 긴 인생을 겪어온 엄마가 왜 힘들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모두 걱정과 서운함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것을, 엄마의 삶을 정리하며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 후 엄마와 나의 사이가 조금은 바뀐 것 같다. 하루 한 끼는 꼭 같이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서운한 것이 있으면 쌓아놓지 않고 바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엄마와 내가 100만 원씩 함께 모으는 적금통장도 만들었다. 우스갯 소리로 얼른 돈 모아서 엄마 호강시켜줄게라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에게 진심으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게 되었다.






포기 안 하려 포기해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여길 봐 예쁘게 피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꽃길만 걷게 해줄게요.


-김세정 꽃길-


엄마가 요즘 들어 몸이 쑤신다고 흘리듯 말하는 걸 듣고는 안마기를 주문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안마기를 사용해보니 좋다고 웃는다. 웬일로 생일도 아닌데 이런 걸 사 왔느냐며 핀잔을 주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엄마를 보며 다시금 생각한다. 돈길은 못하더라도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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