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에 왜 용기가 필요한가요?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인사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선배들에게 인사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잘 노는 아이들만 들어가는 곳 같아서 동경했던 댄스 동아리나 밴드부에 들지 못하고 만화 동아리에 들었던 여고생. 자라서는 어쩌다 간 나이트에서 춤 대신 박수만 실컷 치다 돌아오고 축제 때 수만 채우면 되는 체육 종목에 참가하는 그런 여대생. 사람들에게 친한 척 먼저 말을 걸고 싶어도, 노래를 하고 싶어도, 하다못해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할 때조차도 '난 이쁘지 않으니까' '잘하지 못하니까' 따위에 이유로 참아야 했던 나. 혹여나 눈에 띌까, 제 못남이 드러날까 걱정하던 시절들.
자신 있는 것, 잘하는 것만 하려다 보니 매일 같은 것만 하는 일상이 이어졌고, 그 평온함을 깨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란 백화점 쇼윈도에 걸린 명품 백만큼이나 부담스럽고 어쩌다 일생에 한번 큰 맘먹고 저질러야 할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으며, 결국엔 자기소개서에나 쓸법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스스로가 규정한 '평범한 것'에 맞춰 나를 규제하려 했고 언제나 보통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욱 심해질 무렵 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때는 27살 시절로,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한창 마감 준비를 하던 중 후배가 혹시 00 포차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창 유행하는 헌팅 술집으로 여자들끼리 가서 놀다 보면 남자들이 와서 말을 걸고 운이 좋으면 술값도 내주더라고, 자신은 주말에 가서 너무 재밌게 놀고 왔다며 언니도 한번 가보라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동네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 한잔하다가 친구의 지인을 불러 노는 게 최대 일탈이었기에 '에이 그런데는 이쁜 애가 가야 재밌지, 나는 입구에서 돌려보내는 거 아냐?'라고 흘렸지만 내심 생기는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친구를 꼬셔 큰 맘먹고 헌팅 술집에 가보니 과연 소문으로 듣던 만큼 유명해 1시간 내내 줄을 서야 했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같이 줄을 서있는 여자들이 너무 이쁜 것 같고 나만 뒤떨어지는 것 같았으며, 게다가 나이도 우리만 많아 보였다. 내 불안이 친구에게도 전해졌는지 서로 우리 이제라도 다른 데 갈까 라며 얘기도 해보고, 만약 운이 좋아 들어가게 되면 나이를 속이자느니, 아무도 오지 않아도 경험 삼아 구경하며 우리끼리 재밌게 놀다 가자느니 한껏 기가 죽어 있었더랬는데, 막상 입장하니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일반 술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헌팅도 맹렬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나를 모른다는 것, 앞으로 볼지 안 볼지 알 수 없으니 평판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할 수 있었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다 같이 춤을 출 때도 처음으로 남 시선에 상관없이 흥껏 흔들 수 있었다. 헌팅이란 좋게 말해 잘 나가는 여자, 혹은 문란한 여자들만 하는 거라는 편견이 깨지며,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었구나!라는 생각과 그동안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것, 춤추는 것은 잘 못한다고 생각해 꺼려왔는데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구나를 느꼈다. 아무도 내가 못하는지 잘하는지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 시간, 소위 말하는 깨우침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남들과 같이 인생에 큰일이 생겼다거나, 혹은 대단한 발견을 했다거나 하는 일 없이, 단지 헌팅 술집을 가봤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생각이 변했고 행동이 바뀌었으며 더 이상 정해진대로 사는 내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언제든지 환영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 동호회에 들어 어설프게나마 그림도 그려보고 혼자 노래방에 가서 내 취향의 노래들로만 한 시간 내내 노래도 불러보고 무턱대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난생처음 10km를 달려보기도 했다.
그동안 미처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분야들을 직접 해보니 너무 즐거웠고 항상 새로웠다. 조용하고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라는 사람이 나서는 일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20대 후반에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나를 보며 자유로운 영혼이라느니 욜로 인생이라느니 평 하는 것을 20대 초반의 내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단단한 자기 방어를 깨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 없이, 내가 즐겁다고 느끼는 것을 맘껏 할 수 있었다는 걸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더 많은 도전을 즐길 수 있었을까?
" 취미 생활은 어떻게 되세요?"
"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해요."
"그럼 노래 잘하시겠네요?"
" 하하.. 곧잘 많이 부르는 걸 잘하죠"
이런저런 일에 흥미가 있다거나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잘하느냐고, 혹은 나중에 도움이 되겠냐고 묻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필요하거나 잘하는 것만 하기엔 일생동안 할 일이 너무 적지 않을까? 일단 어떤 일이든 하고 나면 대단한 성과를 남기거나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어제보다는 더 나아진 오늘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런 일 할 시간에 미래를 대비하라거나 그런 실력으로 열심히 하시네요 등 가끔 쓴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오지랖 넓은 사람들에 휩쓸려 또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 내 내면에 집중하고 즐거울만한 일을 찾는 것이 더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젊다면 젊은, 느리다면 느린 35살의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행을 가면 예전만큼 신선하지 않고 체력이 부족한걸 느끼기도 하고, 당장 동호회를 들려고 해도 나이 제한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니까. 앞으로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되면 현실적인 제한이 더 생기겠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안 지금, 더 늦기 전에 주저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함에 부끄러움이 없이 도전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