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Nov 02. 2022

강박적 행동에서 벗어나기

1시간만 참아보세요.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건물 4층을 4층이라고  표기하는 대신 F라 표기한 경우가 더 많았다.

숫자 4와 한자 죽을 死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꺼려했다.


대신 4를 의미하는 영어 Four, Forth 혹은 층수를 의미하는 Floor의 앞 글자를 따서 F라 표기했던 것이다.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건물에 13을 표기하지 않는다. 숫자 13이 불행과 죽음을 부르는 불길한 숫자라 여기기 때문이니 숫자 4를 싫어하는 동양 문화권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4는 정말 싫어~

이와 같이 사람은 나라별로 개인별로 특별히 좋아하는 숫자가 있을 수 있고 꺼리는 숫자가 있을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비교적 홀수를 선호하고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4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싫어한다.      

극도라는 표현 그대로 좀 심하게 강박적으로 4를 싫어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만둣국을 먹을 때 3개를 먹으면 약간 모자란 것 같고, 5개를 먹으면 배부를 것 같아 4개를 먹으면 딱 적당할 것 같지만 단지 4가 싫어서 3개만 먹고 만다.     


고추를 썰때도 4등분이 싫어서 3등분이나 5등분을 한다.

귤껍질을 벗길 때도 5등분 해서 예쁜 꽃 모양으로 벗긴다.

전기레인지인 하이라이트를 켜고 음식을 조리할 때도 4단계로는 절대 조리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면에서 나는 숫자 4가 들어가는 것을 피한다.

어떨 때는 매사에 강박적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고추를 4등분 한들, 만두를 4개 먹은들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유난스레 4를 피하고 있는 내 행동이 한 편으로는 어이없기도 하다.     

이런 행동을 하며 강박적인 삶을 살아온 지도 어언 수십 년은 된 싶다.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강박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 누구보다 익히 잘 알고 있고, 강박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심하면 생활에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의 강박적인 행동에 대해 얘기가 나온 김에 심리학 전공자답게 강박장애에 대해 아주 조금만 더 알아보기로 하자.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 : OCD)는 내가 원하지 않는 강박적인 생각과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 장애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한다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거나 가고 싶은 여행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 새로운 곳을 갈 생각에 기대감으로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원하는 생각이라면 아무리 많이 해도 불편하거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원치 않는 생각이, 나는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계속 떠오른다면?

그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 생각을 없애기 위해 중화시키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강박적인 행동인 것이다.


가스 불은 껐나? 문은 잠갔나?

예를 들어 외출할 때 가스 불은 껐는지, 문은 잘 잠갔는지, 전기 기구는 전원을 껐는지 몇 번씩 확인하느라 외출 한번 하려면 수십 번을 들락날락거리는 사람이 있다.

끊임없이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이들을 Checker라고 한다


손에 오염물질이 묻었을 것 같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씻고, 몇 시간씩 샤워를 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의 오염물질이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는 사람도 있다.

닦고 또 닦는 이들을 Washer라고 한다.


또 물건들이 어지럽혀져 있거나 대칭이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 줄 맞춰 정리하고, 라벨 모양까지 일정하게 맞춰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리정돈의 끝판왕인 이들을 Arranger이라고 한다.


사소한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둬서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봤다.

그들은 본인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한다.

모으고 또 모으는 이런 사람을 Hoarder라고 한다.


이런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우리는 강박장애에 걸렸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사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 역시 숫자 4로 인해 재수 없는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들어서 가급적 숫자 4를 피하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강박 장애인 것이 맞다.


단, 나의 숫자 4를 기피하는 행동은 남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거니와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 가족들도 전혀 알지 못한다. 

또한 그로 인해 내가 엄청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기에 두어 달 전부터 나의 행동을 바꿔 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강박장애 치료 방법 중 하나인 노출 및 반응 중단 기법(Exposure & Response Prevention : ERP)을 적용해 봤다.

ERP는 의도적으로 강박사고에 노출하게 한 뒤 강박행동을 하지 않고 참고 견디어 내게 함으로써 결국은 강박행동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ERP의 효과는 강박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강박적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극도로 불안감이 고조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불편한 감정이 자발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사실로 확인되었다.

대개 1시간 이내에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니 쉽지는 않겠지만 1시간만 불편한 마음을 참으면 된다.  

   

나 역시 이런저런 행동을 할 때 일부러 4에 포커스를 맞추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러 고추도 4등분을 하고, 만두도 4개를 먹고, 찌개에 들어갈 호박을 썰때도 4등분을 했다.

조리할 때는 일부러 하이라이트를 4단에 맞추기도 하며 의식적으로 숫자 4가 들어가는 행동을 골라서 하고 있다.



그렇게 했지만 역시 걱정했던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재수 없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즉에 이렇게 하면 됐을 텐데 전공을 하고 배웠음에도 배운 사람이 왜 그동안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을 했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앎이 삶이 될 때까지!

아는 것과 삶에서 적용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입증하고 살아왔던 셈이다.

앞으로는 앎이 삶이 될 때까지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나물을 무칠 때 깨를 다섯 번 비벼서 넣고, 쌀을 씻을 때 컵에 담긴 양을 조절해서라도 세 컵이나 다섯 컵을 씻으려고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오래된 습관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찬다.

별 수없다. 숫자 4를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그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아자아자! 앎이 삶이 될 때까지!!!



이전 08화 세상은 정말 공평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