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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06. 2022

당신에게 운전을 배운다면
당신 딸이다

이 차 누가 운전하고 다닙니까?

작년 하반기

‘띠디딕~띠디딕~’

경쾌한 소리를 내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남편이 들어왔다.

“당신한테 선물이 도착했어”

“선물?”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남편에게 가면서도 

‘선물이라니? 누가 나에게? 보낸 사람도 없고, 보낼 사람도 없는데’ 주방에서 현관까지 가는 짧은 동안에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뭔가 싸하고 불길한 느낌이 든다. 

‘뭐지? 이 데자뷔 같은 느낌은?’


남편이 종이를 쓱~내미는데 아차~! 싶었다. 속도위반 범칙금 고지서다

"또? 아니, 언제? 어디서?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데"

래퍼처럼 속사포로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쏟아내며

"그러게 제한속도를 그렇게 낮추면 달구지나 마차를 타고 다니지 굳이 비싼 기름 넣어가면서 차를 끌고 다닐 필요가 있나?"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미안함을 감추려고 도리어 내가 언성을 높이다가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간다. 

벌써 몇 번째인가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바뀌고 주요 도로 최고 속도 제한 변경에 따라 제한속도를 낮추고 나서 요 며칠 사이에 벌써 세 번째 날아든 고지서이다. 



코로나로 비대면 강의를 하기 때문에 차를 타고 돌아다닐 일이 거의 없고 마트를 가더라도 남편이 운전하고 다녀서 최근에는 직접 운전대를 잡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일이 있어 몇 번 돌아다녔는데 나갈 때마다 딱지를 떼고 다닌 격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나도 이해는 한다. 제한속도를 낮추면 사고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 법령을 실시했겠지. 

하지만 나처럼 운전대만 잡으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또 스트레스를 드라이브로 풀만큼 스피드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낮아진 제한속도가 체감적으로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같아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다.




나는 운전면허를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도에 취득했다. 햇수로 35년째이지만 그중 10년은 장롱면허로 운전을 하지는 않고 면허증을 지갑 깊숙이 간직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면허증이 빛을 본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워낙 병약해서 아이들 둘은 번갈아 가며 안방 드나들듯이 대형병원을 드나들었다. 아이들이 신생아였을 때는 병원을 갈 때마다 남편이 출근을 미루고 병원과 집을 오가며 데려다줬는데 병원 가는 일이 자꾸 반복이 되자 더 이상 남편에게 의지할 수가 없게 됐다. 

결국 나의 운전면허증은 취득 후 10년 만인 1998년에야 장롱에서 꺼내져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기에 실질적인 운전경력은 25년째이다. 


운전은 절대 남편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다가 이혼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흔히 초보운전자를 Sunday Driver라고 하는데 이는 차량통행이 적은 주말에 한적한 도로에서 초보운전자들이 주행 연습을 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나는 면허를 따자마자 도로주행 연수를 받았으나 아주 잠깐 운전을 하고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운전을 하려니 주행 연습을 새롭게 해야 했다. 

나 역시 일요일에 차랑 통행이 뜸한 왕복 8차선 도로에서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는 sunday driver였다. 


내가 다시 당신에게 운전을 배운다면 당신 딸이다.

물론 운전이라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언성도 높아지고 도를 넘는 나무람을 하게 된다. 남편도 자꾸 내게 잔소리를 했고 나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아니, 당신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운전대를 붙잡고 태어났어? 처음에는 다 실수하고 그러지.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심하게 해. 내가 다시는 당신에게 운전을 배우나 봐라. 그러면 내가 당신 딸이다.”

나는 화가 나서 남편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다다다다 쏘아붙이고 차에서 내려버렸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나 때문에 남편도 속이 터졌을 것이고 옆에서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남편 때문에 내 머리의 뚜껑도 열려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전문가에게 도로연수를 받았다. 

흔히 우리들은 관용적인 표현으로 '역시 돈이 좋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경험을 해보니 그랬다. 

그 사람은 나에게 잔소리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운전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돈이 좋다는 소리를 하나보다.


나는 한 번 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도로연수가 끝난 이후에도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운전을 시작했다. 

아침에 큰 아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아직은 어린 작은 아들을 카시트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도는 것부터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이 붙자 점점 행동반경을 넓혀 가다가 급기야 시외로 진출하기도 하면서 운전 연습을 했다. 



그때 우리 차는 오토가 아닌 수동이었기 때문에 기어 변속을 하면서 운전을 해야 했는데 기어를 변속하는 감각을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기어를 변속하면서 미세한 떨림을 발바닥으로 감지해야 하기에 운전연습용으로 바닥이 얇은 신발을 항상 차에 두고 다녔다.


수동이기 때문에 운전이 미숙한 상태로 자칫 언덕에서 시동이 꺼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뒤로 미끄러지면서 뒤차를 추돌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그런 아찔한 상황에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그 언덕길이 지름길이어서 불가피하게 경사가 높기로 악명을 떨치는 언덕길을 올라가다 기어 변속의 미숙으로 차의 시동이 꺼져버렸다. 

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긴장했지만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를 적절히 조정하면서 다행히 잘 대처할 수 있었고 무사히 언덕을 넘어갈 수 있었다.


우리 일찍 죽기 싫어요. 살살 운전해요

좌충우돌 작은 아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용감하게 운전을 하게 됐지만 혼자 운전을 하다 보니 급가속, 급제동하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비교적 운전을 일찍 시작했기에 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타는 상황이었다. 


탑승자들은 모두 차의 손잡이를 꼭 부여잡고 쓸데없이 과감한 내 운전 습관 때문에 불안에 떨었다. 

제발 살살 운전하라는 원성을 들으면서도 여기저기 무사히 잘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고 웃지 못할 과거이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점점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25년을 운전하면서 나의 운전미숙이나 실수로 사고가 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호를 받고 정차해 있던 내 차를 뒤차가 들이받거나 사고 현장에서 피해차량이 이동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내 차를 보지 못하고 속력을 내고 오던 차가 들이받았던 적은 있었다. 

두 번 모두 나의 잘못이 아니라 100% 상대방의 잘못이었다. 


오히려 사고 현장의 CCTV를 돌려본 경찰이 침착하게 대응을 잘했다는 칭찬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나름 운전 부심이 있던 내가 연달아 딱지를 세 번 떼이고 보니 화가 났다. 

속도 제한도 중요하지만 도로에 따라 달릴 때는 달리게 해줘야 하는데 일괄적인 적용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탁상행정을 했다고 공연히 투덜투덜거렸다.

 

이 차 누가 몰고 다닙니까?     

나이가 먹으면서 급가속, 급제동하는 운전 습관은 많이 좋아졌지만 혼자서 익힌 내 운전 습관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가 보다. 

어느 날 자동차 정비소에 들러 엔진오일을 갈고 오던 남편이

“아~ 나 쪽팔려 죽을 뻔했네.”

한다.

“왜?”

"정비하시는 분이 이 차 누가 몰아요?”

하는 거야.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운전을 참 험하게 하시네요. 차 하부가 엉망진창입니다.”

하더란다. 

“내가 쥐구멍이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라고 얘기하는 남편의 말에 겸연쩍은 웃음이 나고, 나도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남편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시아버님의 권유로 스무 살에 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공군에 입대해서 운전병으로 복무를 했다. 

선임에게 뒤통수를 맞아 가며 운전을 배웠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편안하고 안심이 된다. 


남편은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도 울고 갈 정도로 코너링도 훌륭하고 출중한 운전 실력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도 엄마가 운전하는 차보다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훨씬 편안하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나도 안다. 나도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편안하고 안심이 돼서 저절로 잠이 온다.


남편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난폭하게 운전하는 편이라 남편은 나와 함께 차를 타고 갈 때는 나의 운전 실력이 못 미더워 어지간해서는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름 센스 있는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인정을 받지만 남편에게는 열흘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이다.


나는 예전에 카레이서가 될 걸 그랬다며 우스갯소리도 하고, 스피드에 목숨 걸고 운전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전을 추구하며 운전을 하지만 아직도 나의 스피드 본능은 아직 남아 있다.

햇빛 좋은 날, 기분 꿀꿀한 날, 도로에 차가 별로 없을 때, 고속도로에 올라타면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질주본능이 올라오지만 워워~하며 잘 누르고 있다.



요즘 노령 운전자들의 사고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그에 더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65세가 넘으면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 없고 case by case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운전 실력도 다르고,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다르다. 평소 운전에 대한 나의 지론은 '운전은 센스가 있어야 한다'이다. 그런 이유로 젊다고 다 운전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늙었다고 모두 상황판단과 대처능력이 떨어져 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이 스피드를 추구한다면 나이 든 사람들은 안전을 추구한다. 


누군가에게는 자동차가 과시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밥벌이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또 지역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자동차가 단순히 자동차가 아닌 신발 같은 이동수단이 될 수도 있다.

도시에서야 사통팔달 교통망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자동차가 아니어도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양평만 해도 자동차는 마치 신발 같아서 자가운전이 아니면 당장 발이 묶이게 된다.


버스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사는 곳에 따라서는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마저 1시간에 한 번, 혹은 하루에 몇 번만 운행을 한다. 그만큼 배차 간격이 길고 노선도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도로를 제외하고 여기저기 온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녀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양평은 버스가 다닐 수 없는 좁은 도로나 비탈길이 많다는 게 함정이다. 사람들은 조금 더 높은 곳에, 조금 더 한적한 곳에, 조금 더 전망 좋은 곳에 집을 짓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령운전자라고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집에 꼼짝없이 발이 묶인 채 지낼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연령에 따라 면허증 반납을 하도록 유도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법이라는 것이 백사람이면 백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반화해서 일괄적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노령층에게는 운전을 할 수 있는지 검사를 조금 더 꼼꼼하고 엄격하게 실시를 한다거나 면허를 반납했을 때 그에 따른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등 의견수렴이나 공청회를 거쳐 다양한 대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겠지만 면허증을 반납했을 때 최대 백만 원을 지급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도시 같은 경우야 경로우대를 받아 전철 같은 교통수단은 무료 승차가 가능하고, 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방은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한 번 받는 그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나이가 올 테지만 당장 몇 년 후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한다면 이제 겨우 속도를 내려놓고 안전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라도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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