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돈 벌었다
자리끼를 아세요?
자리끼라는 말을 안다면 일단은 어느 정도의 연륜이 있거나 만약 젊은 층이라면 사극에서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자리끼가 요즘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리끼의 뜻은 밤에 자다 깨서 마시기 위해 머리맡에 놓아두는 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나는 자리끼를 사극에서 어르신들의 머리맡 조그만 쟁반 위에 주전자와 컵이 놓여 있는 장면으로 많이 봤다.
내가 좀 더 나이가 어렸을 때 그 장면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옛날 한옥 구조상 잠자리 머리맡에 자리끼를 두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옥은 현대의 집처럼 방과 부엌이 한 공간에 있는 형태가 아니라 안방과 부엌이 떨어져 있거나 아궁이를 통해 방을 덥히는 온돌식 난방이라서 방과 부엌의 단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면 부엌까지 가야 하고 단차가 있어 계단을 내려가 어둠 속에서 신발을 찾아 신어야 한다. 그러자니 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달아나버릴 노릇이다.
그래서 그런저런 이유로 머리맡에 자리끼를 놓아두나 보다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보니 꼭 그것만이 아니라 자리끼가 노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다시피 사람의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0%가 넘는데 나이를 먹어 노화가 진행될수록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어 50%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예전에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할머니의 피부는 수분이나 지방이 없어 버석거리고 매우 얇았었는데 몸에 수분이 빠져나가 생긴 영향이었나 보다.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은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겠지만 우리 할머니처럼 몸에 수분이 부족해서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이를 먹어 수분의 비율이 떨어지니 몸에서는 물을 원하는 것이고 자다가도 목이 말라 물을 찾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평소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가 몇 번을 깨는 편이다.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고 한다는데 한번 잠이 들면 물리적인 소음이 없는 한 중간에 깨는 법이 없는 나로서는 자다가 깨는 것도,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자다가 물을 마시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두어 달 전부터 꼬박꼬박 자리끼를 챙기기 시작했다.
처음 자리끼를 챙길 때에는 어차피 자다가 몇 번을 깨고 몇 발자국만 가면 냉장고가 있는데 그동안 안 하던 행동을 하니 참 별스럽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자리끼를 챙기는 것은 그만큼 자다 깨는 횟수보다 목이 마른 횟수가 증가했다는 방증이다.
남편의 수면 패턴을 이해 못 했던 내가 요즘 들어서야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
웬일인지 최근에 자다가 목구멍이 간질간질거려서 잠결에 마른기침을 하는 날이 늘었다.
어슴푸레 잠결에도 이럴 때 옆에 물이 있어 목을 축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목을 축이자고 아래층에 있는 주방까지 내려가는 것은 내게는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 잠이 깬 뒤에는 다시 잠들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마른기침 몇 번에 침을 삼켜 목을 적시고는 애써 다시 잠을 청하고는 했다.
그래, 다 이유가 있었네
남편이나 나의 그런 현상들이 노화와 관련이 있고, 몸에 물이 필요해서 그렇다니 나이 먹으니 별일이 다 있지 싶고 드라마에서 보던 자리끼를 떠올렸다.
옛 선조들이 자리끼를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리끼가 장식도 아니고 넓은 방이 허전할까 봐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유 있는 차림이었던 것이다.
또 TV에서 보던 자리끼는 집안 구조상 귀찮아서만이 아니라 노화 현상과도 관련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는 어느새 나도 자리끼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서글픔이라는 감정이 별것도 아닌 일에 불쑥불쑥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이 드니 이것도 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영 맘에 안 든다.
그런데 서글픔이나 서운함, 괘씸함 같은 주로 고약한 감정들이 예전처럼 이성적으로 잘 조절이 되질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어린애처럼 된다고들 하나보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처럼 순간순간 내 감정들이 걸러지지 않고 훅~하고 올라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아직까지는 애써 티를 안 내고 삭히려고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내 이마에 "나 서운해", "나 속상해", "너 괘씸해", "나 화났어"하고 쓰여 있어서 남들에게 들켜버릴까 봐 걱정이 된다.
남편과 나의 자리끼의 필요함은 같은 듯 조금은 다르다.
남편은 몸에서 수분을 원해 찾는 것이라면 나는 목구멍이 간질간질거려서 물을 마시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도긴개긴, 오십 보 백보로 나이 먹어서 물이 필요해 나타나는 증상은 매한가지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우리는 다를 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나는 내 몸에 물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충분한 양의 물을 섭취하고 있지만 사실 불과 2년 전까지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쉰일곱 살까지는 아파서 약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물을 한 컵도 마시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아왔을까 싶지만 평소에 물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물을 찾아서 마실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물이 몸에 좋다.' '물을 마셔라.' '하루에 8잔 정도의 물을 마셔야 한다.'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각종 TV 건강프로에서 의사 선생님들은 한 목소리로 물 마시기를 권유했다.
물이 우리 몸에 좋은 이유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해주고, 혈액순환에 좋고, 다이어트에 좋고, 변비에 좋고, 피부 노화에 좋고, 두통에 좋고, 피로 회복에 좋고, 신장에 결석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어디에 좋고, 어디에 좋고……. 얼핏 들으면 물은 만병통치약 같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지만 꿈쩍도 않던 내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은 의외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일정기간 물을 꾸준히 마신 여자의 Before & After 사진은 나도 당장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단지 물을 마셨을 뿐인데 그녀는 훨씬 젊어 보이고, 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탄력이 있어 보였다.
아마 나도 모르게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나 보다.
너~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그래? 물이 피부에 그렇게 좋단 말이지?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그런데 기세 좋게 시작했던 물 마시기가 처음에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평생을 먹지 않았던 물을 몸에 좋다고 갑자기 챙겨 마신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습관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적어도 100번 정도는 꾸준히 반복해야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 마시던 물을 마시려니 자꾸 까먹는다. 그래서 나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기로 했고 스마트폰에 물 마시기 어플을 깔았다.
내 몸무게에 맞는 양의 물을 계산하니 하루에 약 1500ml의 물을 마셔야 한단다. 200ml의 컵으로 약 8컵이었다. 나는 총량에 압도되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쪼르륵~' 물을 따르는 소리의 알람이 울렸고 나는 기계적으로 물을 한잔씩 마셨다. 처음에는 안 마시던 물을 마시려니 고역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8컵의 물을 마신다는 것이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2시간에 한 번씩 물을 마셔야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그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300ml의 컵으로 사이즈를 바꿨고 횟수를 하루에 5번으로 줄일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물을 한 잔 마셨고 나머지는 하루에 4번 적당히 시간을 나눠서 알람이 울릴 때 마시면 된다.
단, 될 수 있으면 물은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상온에 두고 마시거나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해서 마셨다.
그렇게 몇 달을 하루에 1500ml의 물을 마셨더니 내 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물을 마시면 좋다는 다른 증상들은 잘 모르겠지만 순전히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앗싸~ 돈 벌었다
첫 번째로 피부가 가렵지가 않았다. 나는 피부가 악건성에 속하는 편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물을 멀리하고 살았으니 악건성이 아닌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자주 가려웠는데 물을 꾸준히 마시고 난 뒤에는 그런 현상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어떨 때는 내 몸에 수분이 차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두 번째로는 변비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화장실에 가는 것이 예전보다 조금은 수월해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얼굴에 보톡스 맞았어요?"
"얼굴에 필러 넣었어요?"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데 얼굴에 뭐 했죠?"
"전보다 젊어진 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얼굴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단지 물을 마신 것뿐인데 그런 말을 듣는 횟수가 늘었다.
“앗싸~ 돈 벌었다 “
물을 마심으로 인해서 내 몸에 생긴 변화,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이렇게 57년 동안 마시지 않던 물을 마신 지 이제 햇수로 고작 2년 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지금도 알람이 울리지 않으면 때때로 잊어버리지만 나름 꽤 괜찮은 변화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물을 마시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분들에게 물을 마시게 되면 분명히 좋은 변화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물을 꼭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 한 바가지 하실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