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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14. 2022

나이? 뭐~ 내 나이가 어때서?

마지막을 향한 화려한 불꽃 축제

갱년기의 시작을 알린 것이 안면홍조였다면 그 전조 증상은 완경 증후군이었다.

나의 완경 증후군은 쉰셋이 되던 2015년부터 시작되어 쉰여덟 인 2020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5년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생리를 했다. 심지어 한 달에 세 번 한 적도 있다. 


여자들은 다 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다는 것을.

그런데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생리를 하다니 그것도 무려 5년 동안. 

'아니 무슨 한 달에 두 번씩 어김없이 차오르는 보름달이냐고.'


처음에는 완경 증후군이려니, 이러다 말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불꽃축제를 보면 항상 마지막에 제일 화려하고 제일 멋진 걸로 물량공세를 퍼붓듯이 아낌없이 쏘아 올린다. 

나의 완경도 마치 화려한 불꽃축제 같았다. 5년 동안이나 했다는 게 커다란 함정이지만.




이러다 말겠지

무심하기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는 않는 편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나 일잘 하는 것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겨우 무심함 따위로 남에게 뒤지지 않노라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무심하게 꽤 긴 시간 동안 이러다 말겠지, 다음 달에는 멈추겠지 하고 미욱하게 참고 견디다 4년째가 되던 해에 혹시 완경 증후군이 아니라 몹쓸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치과와 더불어 산부인과는 내게 매우 문턱이 높은 곳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가지 않고 버티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에 나의 무심함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결국 증상이 시작되고 4년 만에 방문한 산부인과에서는 예상대로 완경 증후군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듣던 중 반가운 말을 들었지만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 후로도 1년 가까이 한 달에 두 번씩 원치 않는 마법에 걸려서 괴롭고 힘들었다.



5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내게도 완경이 찾아왔다. 열 다섯 살인 중학교 2학년 때 초경을 시작해서 43년 만인 쉰여덟에 완경을 했다. 


그때의 감정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당시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나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출산의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섭섭한 마음과 한 달에 두 번씩 나를 괴롭히며 찾아왔던 생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원하고 후련한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시원함과 섭섭함의 비율을 굳이 따지자면 80:20 정도였던 것 같다. 그만큼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왔던 생리는 삶의 질을 떨어뜨렸고 그 기간이 장장 5년이나 이어졌으니 시원함의 비중이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완경과 갱년기 증상은 서로 스쳐 지나가듯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나에게 왔다. 홍조와 식은땀, 질 건조, 감정의 기복 등 갱년기 증상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산부인과 가는 것을 몇 년 동안 버티다가 결국은 두 손 두 발 들고 다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여성 호르몬 대체제 복용을 권했다. 여성호르몬 대체제를 복용하면 유방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서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갱년기 증상은 극심하고 호르몬 대체제를 제외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 봤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행복은 내 편이 아니었어.

호르몬 대체제를 먹으면 갱년기 증상 끝~ 행복 시작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행복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행복은 내 편이 아니었어."


호르몬 대체제를 복용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정말 살 것 같았다. 안면 홍조도 사라지고 진땀도 나지 않았고 질 건조증도 사라졌다. 진즉에 약을 먹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잠시 했었다. 


그렇게 갱년기 증상과는 이별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뚜둥~ 부정출혈의 증상이 나타났다.'

부정 출혈이라 함은 부정기 질 출혈 혹은 자궁출혈이라고 하는데 생리가 아닌 모든 비정상적인 질 출혈을 의미한다. 호르몬 대체제를 먹는 동안 부정출혈이 계속되었다. 


그토록 가기 싫은 산부인과를 결국 또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초음파 검사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자궁이나 난소에 별 이상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성 호르몬 수치가 아직은 높은 것 같은데 거기에 호르몬 대체제까지 복용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일단 약을 끊어보자고 했다. 


아~ 나보고 어쩌라고?

약을 끊고 며칠 후에 신기하게 출혈이 멈췄다. 하지만 출혈만 멈춘 것이 아니라 약을 끊으니 다시 안면 홍조를 비롯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났다. 

"아~ 정말 나보고 어쩌라고???"


다시 시작된 갱년기 증상을 한두 달 버티다가 다시 산부인과를 갔고 다른 제약회사의 호르몬 대체제를 처방받아서 먹었지만 부정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라 서너 차례 약을 바꿔가면서 먹었지만 내내 부정출혈은 나를 괴롭혔다. 


호르몬 대체제를 먹는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정출혈이 이어지다 보니 5년을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생리보다 더 센 놈이 온 것 같았다. 


햄릿처럼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느냐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갱년기 증상을 다시 겪을 것이냐 부정출혈을 겪을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왜 이다지도 갱년기 증상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과 내 몸인데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절반의 성공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부정출혈과의 힘겨운 싸움 끝에 드디어 나에게 맞는 호르몬 대체제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여성 호르몬 용량이 절반인 저용량 호르몬 대체제였다. 저용량 호르몬제를 복용하니 부정출혈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대신 안면홍조를 비롯한 갱년기 증상을 완벽하게 잡지 못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아마도 나이가 더 먹어감에 따라 나에게 남아 있는 여성 호르몬 수치가 더 떨어지면 그때는 정상적인 용량의 호르몬 대체제를 먹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갱년기 증상이 잡힐 날도 올 것이다.

이제는 호르몬 대체제를 처방받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산부인과는 그렇게 문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높다고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갱년기가 찾아온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증상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개인차이가 있을 테니 증상도 제각각이고, 그에 맞는 치료법도 제각각이고, 효과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요란스럽게 완경과 갱년기를 겪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그라들기 전의 불꽃이 가장 화력의 기세가 세고, 지기 전의 태양이 붉고 아름답다.

나의 나이 듦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몸에 남아 있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을 다 쥐어짜 내고 바짝 마른 수건 같은 노화만 남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 나이가 어때서?

화려하게 불꽃을 피워올리고 시간이 지나면 장작은 시나브로 숯이 되고 재만 남아 있을 것 같지만 꺼져가는 불도 뒤적이면 되살아 난다. 거기에 더해 적당한 불쏘시개만 있으면 화려한 불꽃을 다시 피울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불이 사위어 가는 것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릴 불쏘시개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나를 다시 태워 줄 불쏘시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부터 그것을 찾아보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도 늦지 않았다. 

다 타고 남은 재가 되어 살랑이는 바람에도 먼지처럼 날아가버리기엔 아직 우리에게 남은 세월은 길고도 길지 않은가? 

"나이? 뭐~ 내 나이가 어때서?"


나에게 있어 불쏘시개는 브런치가 될 수도, 강의가 될 수도, 출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화수분처럼 없어지지 않는 나의 열정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열정은 나를 나이 60에도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고,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의 열정은 불쏘시개가 되어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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