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자꾸 줄어든다
세상이 꽁꽁 언 추운 날,
일평생 나를 괴롭히는 질병인 비염 알레르기가 기승을 부려서 고생을 하다가 비염을 완화시켜 주는 주사를 맞으러 길을 나섰다.
어차피 전철을 타면 서로 남인 듯 무심하게 각자의 핸드폰만 쳐다볼 테지만 남편 출근길에 동행하여 서울로 가는 길이다.
우리의 앞에서 추운 날씨 탓에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모자를 보며 남편은
“당신도 저런 모자를 사서 쓰지 그래. 앞에 챙도 있고 머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는 그런 모자 말이야.”
그 아주머니는 앞에 챙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편의 눈에는 모자 끝에 커다란 방울이 달린 내 털모자가 채신머리없어 보여 영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단박에
“싫어, 저런 모자 쓰면 나이 들어 보여.”
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아니 그럼 당신이 나이를 먹었지. 나이가 젊은 줄 아냐?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30대나 40대인 줄 알아? 이제 당신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누가 봐도, 딱 봐도 나이 먹었다고 할 나이거든. 제발 착각하지 마”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남편은 뼈 때리는 말로 무자비하게 팩폭을 날린다. 물론 농담 삼아 말을 하지만 말 중에 묵직한 뼈를 집어넣고 하는 말인 줄 안다.
남편은 나잇값 못하고 철없는 내게 가끔 나잇값 하라는 말로 나에게 퉁박을 준다. 나는 남편의 말에 그만 무안해서 짐짓 웃음으로 무마를 한다.
“그래, 나도 나이를 먹은 걸 잘 알지. 근데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나이 먹어 보이지 않게 하고 싶어. 나이를 먹었다고 꼭 나이 먹은 티를 내고 그러고 다녀야 하나? 나이를 먹었으니까 한 살이라도 덜 먹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렇다. 나도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나라 나이로 예순이다. 하이고~ 어느새 60해를 살았다.
비록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고, 자고 일어나면 어깨가 쑤시고, 목이 뻣뻣해서 남편의 마사지를 받아야 겨우 운신을 하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삼십 대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나이가 예순이면 마음도 예순 언저리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데 감히 삼십 대라는 착각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예순과 삼십 대는 몹시 괴리가 심하다.
마치 그런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찌르며 상념에 잠기게 한다.
어르신들이 으레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항상 청춘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때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보고도 막상 사기를 주저할 때이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든지 입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망설이다가 결국은 포기를 하게 된다. 이 나이에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고 다닌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섭외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옷장에 있는 무릎 위로 오는 스커트도, 허리 들어간 정장도, 남들과 차별화된 유니크한 디자인의 옷도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됐다. 시크해서 자주 선택하는 검은색 옷들도 이제는 입으면 칙칙하게 보이는 나이가 됐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붉은색 계열의 옷을 즐겨입나 보다.
어르신들은 빨간색, 보라색, 핑크색, 꽃무늬의 옷들을 즐겨 입는다. 예전에는 왜 어르신들은 마치 드레스코드로 정한 것처럼 다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다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피부도 칙칙해지고, 검버섯도 있고, 주름이 점점 늘어나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보면 화사한 색깔의 옷으로 커버하려는 그분들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옷장의 문을 열면 대부분의 옷이 무채색이어서 우중충했다. 아주 가끔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포인트 소품으로 사용했던 것이 붉은색 계열의 가방이나 스카프였는데 이제는 어쩌다 유색 옷이 한두 개씩 눈에 띈다.
그래도 여전히 내 옷장 속에는 무채색의 옷들이 대부분이지만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옷들 사이에서 손은 자꾸만 허공에서 왔다 갔다 헤맨다. 외출 때마다 내가 입고 싶은 옷들을 선뜻 집어내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포결국은 기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나이로 아홉이 되는 해를 아홉수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9,19,29,39,49,59 총 6번의 아홉수를 보냈고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9홉 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올 해가 지나면 나이의 앞 글자가 바뀌기 때문에 예민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굳이 음력까지 들먹이며 음력으로는 아직 일 년, 혹은 생일이 늦은 경우에는 이년이 남았다는 말로 위로를 하며 한 해라도 젊은 나이를 연장하고 싶어 한다.
나는 6번의 아홉수 중에서 첫 번째 아홉 살일 때는 천방지축 친구들과 골목길을 쏘다니며 다니느라 아무것도 몰랐으니 넘어갔고, 열아홉 일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오히려 스무 살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가 스물아홉 일 때 아홉수를 호되게 겪었다. 그 당시 나는 이제 내년이면 더 이상 젊지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아직 미혼이었던 터라 결혼한 친구들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미래가 불안해서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서른아홉 살과 마흔아홉 살에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가 있을 것이 무어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쉰아홉 인 올해를 며칠 앞둔 지금 나는 격렬한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젊음이나 청춘 같은 푸릇푸릇함을 논하기보다는 늙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평소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회색을 연상시키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잿빛 색깔과 걸맞게 멜랑꼴리 한 기분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예순이라는 나이가 왜 이리 낯설고 넘기 힘든 숫자인지 모르겠다.
60이 처음이라서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들을 담담히 적어보고 싶은데 잔잔했던 마음에 파문이 일듯 감정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