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가락 차차차
제목에 차차차가 붙은 노래는 여러 곡 있다.
그중에 내가 아는 차차차가 붙은 노래는 세 곡이다.
그 첫째는 산타 에스머랄다(Santa Esmeralda)가 부른 '어나더 차차(Another Cha Cha)'이고, 또 하나는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정자의 '노랫가락 차차차'이다.
One Two Cha Cha Cha!
Three Four Cha Cha Cha!
하며 시작되는 어나더 차차는 노래보다는 연주시간이 훨씬 길어 러닝타임만 무려 14분이 넘는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건 1980년이었는데 그 당시 음악방송 DJ들은 이 LP를 걸어놓고 화장실도 가고, 담배도 피우고, 잠시 쉬기도 하고 그랬었다.
어쨌거나 차차차가 붙으면 무조건 신난다.
어나더 차차도, 다 함께 차차차도, 노랫가락 차차차도 모두 흥겨워 어깨를 둠칫 거리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내가 아는 그 세곡 중 '노랫가락 차차차'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이 노래가 1963년에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였으니 나와 나이가 동갑이다.
노랫가락 차차차는 리드미컬하고 흥겨워 노래를 들으면 어깨춤이 절로 나고, 나도 모르게 후렴 부문을 흥얼거리게 된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가수는 황정자이지만 구전요처럼 시대를 이어 당대의 탑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그만큼 끊임없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훈아도 불렀고 주현미, 장윤정도 불렀고 요즘 대세 장민호도 불렀다.
노래의 가사를 보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이다.
가사는 꽤나 철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신파적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 십일홍(花無十日紅)의 구절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달의 공전에 따라 달은 한 모습으로 멈춰 있지 않고 둥근달로 차오르다가 다시 눈썹달로 기울어 간다.
보름달에서 눈썹달이 되었다가 다시 쟁반 같은 보름달이 반복되는 과정을 한 마디로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는데 이는 과학적이며 철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거나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하는 후렴구는 다분히 신파적인 면이 강하다.
가사 중에 화란춘성 만화방창 (花爛春盛 萬化方暢) 이란 말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니라 조금 어렵다.
그 뜻을 풀이하면 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날, 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를 말하니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봄이 한창 절정일 때를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이 노래의 가사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맞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는 이 노래가 어렸을 적에는 당최 이해가 안 됐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라고 해야지 왜 놀라고 부추기지?'
라는 생각을 굳세게 했더랬다.
'젊었을 때 일하지 말고 실컷 놀라고 하니 앗싸~ 놀자' 하며 신이 나서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 일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다.
옛날 노래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때 그 시절에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이 노래를 더 목청껏 불렀던 것 같다.
아마도 젊은 시절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다 어느새 나이 들어 버린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닐까?
정작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부를 이유가 없다.
왜냐면 그들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젊었을 때 좀 더 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도 이 노래는 상춘객이 봄나들이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 같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버스가 흔들리고 뒤뚱거리다 못해 뒤집힐 것 같은 비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어김없이 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췄다.
이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20대 후반 어느 해 4월 초,
흐드러지게 만개한 진해 벚꽃이 보고 싶었다.
나는 늦은 저녁에 출발해 버스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진해에 도착해서 벚꽃구경과 인근 관광지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무박 2일의 상품을 구매했다.
당시 그 버스의 승객 중 90% 이상이 한 상인회 회원들이었다.
악몽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은 버스에 타서 출발하기 전부터 술잔을 돌리고 준비한 음식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급하게 먹은 술은 금방 취했고 버스가 출발해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기사 아저씨가 트로트 음악을 트는 것이 신호였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일제히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오더니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둠칫~ 둠칫~ 음주와 가무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몇 안 되는 다른 승객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빼고는 잠시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애초에 벚꽃 구경은 핑계였고 그들의 목적은 음주가무였다.
밤새도록 한잠을 자지 못한 나는 다크서클이 발바닥까지 내려왔고, 눈은 퀭한 상태로 유령처럼 진해의 화사한 벚꽃 사이를 떠돌아다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지던 음주가무는 출발한 시간에 출발한 장소에 돌아오자 거짓말처럼, 배터리가 방전된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제야 나도 악몽에서 깬 듯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관광버스에서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시선이 많고, 대형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현재는 강력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암암리에 하고 적당한 선에서는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
그때는 나도 피해자였지만 그 시절에는 위험성이나 꼴불견과는 별개로 그런 행동이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여행이라는 것을 맘만 먹으면 배낭 하나 메고 세계일주도 혼자 갈 수 있고, 가족끼리 캠핑이나 차박도 할 수 있고, 각종 모임이나 친목계, 상인회에서도 돈 모아 해외여행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 허리가 굽도록 죽어라 일만 하던 시절이라 여행은 사치였고 사전에나 있는 낱말이었다.
그래서 여행한 번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 하고 모임이나 친목계, 상인회에서는 일 년 동안 꼬박꼬박 곗돈 부어 관광버스 대절해서 꽃놀이, 단풍놀이 가던 시절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내년까지 일 년을 기다려야 다시 관광을 갈 수 있으니 아줌마 아저씨들은 내일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뽕을 뽑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 순간을 즐겼을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면서 이미 늙어버린 아줌마 아저씨들은 둠칫~ 둠칫~ 춤을 추며 한풀이하듯 노래를 했다.
우리 엄마는 봄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한 손으로는 양산을 받쳐 쓰고 한 손으로는 행여 나들이객 틈에 나를 잊어버릴세라 내 손을 꼭 잡고 꽃구경을 다녔다.
그때 여기저기서 이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이 노래는 왜 젊은 사람들에게 놀라고 부추겼을까 하고 궁금증을 가졌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때는 국가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마을 스피커를 통해 골목 구석구석 새마을 운동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나는 날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새마을 운동 노래에 잠이 깨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홀린 듯 세뇌되었던 것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근면, 자조, 협동을 강조하는 새마을 운동을 국민들에게 강조하던 시기이니 늙으면 못 노니 젊었을 때 실컷 놀라는 노래가 어린 마음에 이해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왜 어른들이 그 노래를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불렀는지,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어쩜 그리도 구구절절 옳은 소리를 했을까 싶은 게 저절로 이해가 간다.
놀러 다니는 것도 젊었을 때 열심히 다녀야지 나이를 먹으니 만사가 귀찮고 움직이는 게 귀찮다.
이제는 다리가 아파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버겁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그 노래를 부르며 늙으면 놀고 싶어도 못 노니 젊어서 열심히 놀라고 했나 보다.
며칠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셋이서 뭉쳤다.
그중에는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있어서 더 반가운 모임이었다.
여자 셋이서 모였으니 접시가 깨지고도 남을 만한 수다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옛 이야기 하면서 수다를 떨다 보니 세시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늦게 잠이 들었으니 느지막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자는 시간과 상관없이 깨어나는 시간은 똑같이 이른 아침이다.
이역시 나이를 먹으니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습관 때문이리라.
세 시간을 겨우 잤을까.
예전 같았으면 하루쯤 눈에 고춧가루 뿌린 것처럼 뻑뻑하고 몸이 묵지근하고 말 텐데 밤을 새운 것도 아닌데 3일 동안 비실비실 비몽사몽 헤매다가 겨우 컨디션을 회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나이 먹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그래, 밤을 새우며 노는 것도 젊었을 때나 할 노릇이지.
나이 먹으면 시간 맞춰 자고,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한다. 밤새워 놀라고 멍석 깔아줘도 못한다.
언제부턴가 몸과 맘이 따로 노는 것이 영 별로다.
그래서 이래저래 나이 먹으면 서럽다고들 하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클럽에도 열심히 가고,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좋은 사람 만나 연애도 많이 해보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춤추는 것도 몸이 유연해야 가능하고 보기에도 춤 선이 이쁘다.
나이 먹으면 뼈가 굳어 막대기 같이 뻣뻣하고 숨이 차서 몸과 맘이 따로 논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 본 눈 삽니다.' 할 판이다.
여행을 통해서 견문을 넓히고,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연애도 많이 해봐야 좋은 사람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어떤 사람이 나와 맞는지 알 수 있다.
시중에 흘러 다니는 우스갯소리 중에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본 친구가 시집을 잘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생전 연애한 번 안 해 본 사람들은 사람 보는 눈이 제한적이어서 나쁜 사랑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험을 다할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경험을 통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적용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정말 기가 막히게 맞는 말이다.
젊었을 때 실컷 놀아보자. 내일이 없을 것처럼 치열하게 놀고 경험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