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by 꿈꾸는 임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다랑쉬굴 사건을 본 기억이 있다. 보면서 화도 나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지, 잘못된 이념과 욕심은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저렇게 비극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소름 끼쳤더랬다.

<다랑쉬굴 아이> 제목을 보는 순간 ‘아, 그 이야기인가?’ 싶었다. 이 이야기는 1992년 북제주군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열한 구의 유골이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공포와 두려움만을 안고 엄마, 아빠만을 기다리는 아홉 살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의 시점이니 어른들이 왜 싸우는지, 마을이 왜 불타는지, 수많은 사람이 왜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결국 토벌대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아이를 살리기 위한 어른들의 모습은 마음이 정말 아프다. 아이 못지않게 어른들도 두렵고 무서웠을 텐데. 시간이 지나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해 열한 구가 92년 4월에 발견되었고, 진상 규명 운동을 통해 진실이 드러났다. 책의 부록에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주 4·3 이야기와 다랑쉬굴의 진실이 나와 있다. 이 가슴 아픈 사건이 정식 이름조차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림책으로 만난 비극적인 역사의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않길 바란다.



제주시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2608-6번지 일대에 소재한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 희생당한 곳이다. 이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다랑쉬오름 일대를 수색하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하나둘 죽어갔다.

한때 이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던 채정옥(남, 1923년생)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굴속에 들어가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혔다. 굴 안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 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있었고 코나 귀로 피가 나 있는 시신도 있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출처: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Ⅰ』(2003);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종합정비 및 유해발굴기본계획』(2005)>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는 눈 기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