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잠시 이별과 영구 이별이
설날 아침이지만 나는 할 일이 없다.
거실 공기가 조금 차갑다.
커피를 내렸다.
잡곡식빵에 계란 프라이를 얹었다.
'하루한곡밴드'를 열었다.
오늘 곡은 첼로 협주곡이다.
우아한 아침이다.
11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12시쯤에 양산 외할머니댁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나는 12시에 배낭을 메고 김해시외버스터미널로 걸음을 옮겼다.
공기가 어제보다 차갑다.
작년 12월에 끔찍한 정치행위가 있었고, 또 예기치 못한 항공기 참사가 있었다.
어젯밤에 김해국제공항에서 참혹한 항공기 사고가 있을 뻔하였다.
항공기는 홀랑 탔지만 죽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이 없어, 긴 한숨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12시 40분, 대합실로 아들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다.
늦었지만 이번 설에 아들에게 양복을 맞춰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양복을 사주셨다.
나는 6년이 지난 뒤에 아들에게 그리하였다.
아버지가 내게 양복을 사준 것처럼 나도 아들에게 그리하고 싶었다.
아들이 사양을 하여 늦어진 것이다.
아들은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로 서울에 간다.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놓는 아들에게 말했다. 늙은 아버지의 노파심이다.
착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악한 사람이 되지 마라.
일이 우선이고 취미는 다음이다.
절망과 상실감이 들 때는 술을 마시지 마라.
술은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나쁜 친구다.
그럴 땐 책을 읽거나 여행을 떠나라.
아님 취미로 하는 야구로 우울한 기분을 날려라.
아들은 단답이다.
"알았어요"
이제 사회에 발은 딛는 아들을 응원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지금까지 그렇게 하였듯이 믿고 응원할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딸이 주차하고 대합실로 들어온다.
아들과 딸, 모두를 안고서 축원하였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라"
서른 살인 딸은 남자친구 만나로 간다고 신이 나서 내 눈에서 멀어졌다.
아들이 탄 고속버스도 서서히 눈에서 멀어졌다.
집으로 가는 내 걸음이 따듯하다.
부고 문자가 왔다. 계좌로 부의금을 보낼까?
명절인데... 문상하러 오는 이도 없을 텐데... 나라도 가서 인사할까?
아직 젊은 나이인데 왜 급하게 가셨을까?
못 본 지 10년쯤 되었겠다.
지병이 있었을까?
차에 앉았다.
10분만 가면 병원 장례식장이다.
선배는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대하여 주었다.
지금은 규모가 있는 제조업체 대표이지만 예전엔 전세로 100평 남짓한 공장서 부부가 함께 고생하였다.
이 선배도 나처럼 부인과 나이 차이가 열셋이다.
장례식장, 선배 얼굴을 보니 울컥 슬픔이 오른다.
오늘 같은 날 내가 조문 온 것이 뜻밖인 모양이다.
이제 쉰일곱, 무엇이 급해서 가셨는지 모르겠다.
림프암인데 늦게 발견, 발견했을 때 벌써 4기로 접어든 상태, 병치레를 얼마간 하였는지 모르겠다.
효과가 1%도 안 된다는 항암제를 그저께 오후에 맞고 밤에 운명하였다고 한다.
서울서 김해로 내려오는 길도 폭설로 고생이었다고 한다.
곱고 선하며 수줍음이 많았던 분인데 매우 안타깝다.
다시 집, 오후 3시 40분, 아들은 경북 상주를 지나고 있다고 가족톡방에 글을 올렸다.
바람은 거칠게 호흡을 하지만 닫힌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은 따뜻하다.
왔으면 가야 한다.
가는 게 두려움이다.
보내는 게 슬픔이다.
무엇으로 가는 두려움을 이기고
보내는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2017년 영월 단종문화제 단종국장 행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