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갔다가 1

조그마한 카페에서 글을 쓰다

by 꺼벙이

오후 3시 3분 전이다.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조그마한 카페, 왕이나 앉을 것 같은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게 한 잔에 2,000원이면 싸다.

이 카페는 오늘 처음이지만 이 집 커피는 마신 적이 있다.


카페 오기 전에 카페 옆에 있는 도넛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개 샀다.

이 집은 유산균 발효로 도넛을 만든다고 한다. 내가 들어선 카페와 비슷한 규모다.

사장은 1961년생으로 부산사람이다.

스무 살 전부터 범냇골 어느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끔 들러서 빵을 사고, 예전 부산에서 일어났던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오랜 단골이다.


첫 인연은 딸이다. 집에서 내동중학교까지 1km가 조금 넘는다.

딸은 3년을 같은 길을 걸었고, 이 빵집 앞을 지났다. 어느 날 딸이 이곳 빵을 사 왔다.

딸은 조금 과장하는 말투를 쓴다. 어쩌면 표현력이 좋다고 해야겠다.

유명한 도넛보다 달지 않아서 나는 좋다.

가끔 집에 오는 딸에게 이 빵을 주면 딸은 중학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딸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듣는다. 이 빵집의 빵은 딸에겐 좋은 추억이다.


봄날 같은 따듯한 오후, 빵을 사고 커피를 마시러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이 주위에 정형외과가 주인 사랑병원이 있다.

이 병원이 개원하기 전부터 원장과 인연을 맺고 20년 넘게 다니고 있다.

5층 건물인 병원을 개원하기 전엔 자기 이름을 걸고 셋방에서 병원을 하였다.


처음엔 축구를 하다가 눈 주위가 찢어져 꿰매러 왔다. 마흔다섯쯤이었다.

마흔여덟쯤엔 축구하다가 오른팔 탈골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골절은 없어 접골만 했다.

심하진 않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두 번을 입원했다.

백두대간 산행하다가 왼쪽 무릎인대가 끊어져 3주를 입원했다.

집에서 넘어져 뇌출혈이 생겼는데 이걸 무시하고 보름을 보냈다.

어느 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사랑병원 신경외과에 가니 당장 입원하자고 했다.

보름 동안 죽지 않고 산 것은 도움이 하늘에서 내렸다고 했다.

천우신조가 내게 일어난 것이었다. 3주 입원하여 뇌에 고인 피를 조금씩 빼냈다.


재작년 여름부터 오른쪽 무릎 관절염 때문에 자주 온다.

원장은 살을 빼라고 하지만 나는 뺄 살이 없다. 아, 나도 살을 빼고 싶다.

살을 빼서 관절염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몸무게로 35년을 살았으면 이건 내 체질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굶을까?


관절염에 좋다는 기능성 식품인 콘드***이나 호** 등 광고에 눈길이 간다.

원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팔기 위한 선전이고, 그 식품이 연골을 재생시키면 의약품이지 식품이겠느냐고 한다.

차라리 염증을 완화시키는 녹색잎과 홍합 추출물을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내 상식하고 맞는 이야기이다. 100짜리와 1,000짜리가 있다.

우린 1,000짜리가 효과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몸에서 흡수되는 건 10이라고 한다.

백을 먹나 천을 먹나 효과는 같다는 것이므로 괜히 비싸게 천짜리를 먹을 까닭이 없다.

관절에 좋다는 식품도 괜히 그렇게 선전하는 건 아니겠다.

먹어서 몸에 흡수되고 그 흡수된 것이 정말 관절에 효과를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커피가 식었다. 글을 쓴다고 반도 마시지 않았다.

주택가인데 마시러 오는 이도 사 가는 이도 제법 있다.

혼자 일하는 이는 바쁘다. 바쁘게 일하는 이를 보면서 커피(상념)에 빠져야겠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알 수 없는 우연이다.

이 우연이 내게 고통을 주거나 기쁨을 준다. 삶에서 기쁨만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다.

삶이란 기쁨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받아들임을 통하여 고통을 이겨낼 수 있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좌절과 비탄에 빠져 원망하는 건 삶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은 견뎌 내야 할 가치가 있다.

카페서 바쁘게 일하는 이는 아마 이것을 알고 오늘 고단함을 견디고 있을 테다.

고단함 뒤에 오는 기쁨이 있기에.


4시 4분이다.

커피도 잔에 남지 않았다.

만 보에 7,000보가 모자란다.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돌아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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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민의 종 /김해시 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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