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갔다가 2

조그마한 카페에 또 가서 글을 책을 읽고 글을 쓰다

by 꺼벙이


조용한 주택가, 모퉁이에 있는 카페.
달카페, 이번이 두 번째다.
따뜻한 아메리카 한 잔에 덤으로 냉수.
달카페 벽에 이런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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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도

향이 있다면
오늘은
너의 향으로
가득 차리라.

달빛에도 향이 있다면 어떤 향일까?
지금 내가 마시는 구수한 커피 향일까?
달빛 없는 대낮에 찬바람 피해서 들어온 카페가 아니다.

<내외의집작은도서관>에 책을 돌려주러 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인 줄 몰랐다.

다른 책을 빌려 이곳에 앉아 조금 읽을까 생각하였다.


일인용 의자에 편히 앉아 제목은 모르지만 재즈를 듣는다. 재즈는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재즈는 현란한 춤을 바라지 않고 가벼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

내겐 익숙하진 않아도 평온하며 즐거운 음악이다. 아마 혼자였다면 가볍게 춤을 추었을 것이다.

재즈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건 재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마흔세 살 때에 한눈에 반한 열일곱 살 소녀에게 포도를 건넸다.

소녀는 받은 포도를 쇼펜하우어 모르게 버리며 혼잣말을 하였다.

"늙은 남자가 혐오스럽다"


괴테는 일흔네 살에 영혼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소녀를 만났다.

열아홉 살인 소녀에게 결혼하자고 하였다. 소녀는 거절하였다.

나는 그 소녀가 거절한 뒤에 어떤 혼잣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건 작가가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교>가 떠올랐다. 박범신의 소설 제목이며,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제목이다.

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TV에서 은교를 방영했을 때도 관심이 없었다.

소설도 읽은 적이 없다. 다만 내용을 조금 알 뿐이다.

70대 늙은 시인이 여고생인 은교를 사랑한다는 것, 잊힌 남자의 욕정, 늙은 남자의 욕정,

관능적이지만 풋풋한 소녀 등 이런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것이 전부다.


늙은, 아니 나이가 든 남자가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도 십 대 소녀와 하고 싶은 연애, 그 심리가 무엇일까? 이제 육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내가 십 대 소녀와 연애를 꿈꾼다면 내 안에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욕정일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나간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젊은 시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후회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동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내 영혼을 빼앗길 만큼 풋풋하고 청순한 소녀들을 본다.

그 소녀들을 보는 내 등 위엔 이 세상하고 곧 이별하여야 할 두려움이 있다.


어제 몇 시간, 오늘 오전 한 시간을 들여서 알랭 드 보통이 쓴 <철학의 위안>을 일독하였다.

생존해 있는 철학가이며 소설가이다. 처음 접하는 인물이다.

오늘 돌려준 칼럼집 <당신은 보석입니다>에 이 사람 이름이 자주 나와 관심을 가졌다.

며칠 전에 중고서적을 파는 알라딘에서 주저 없이 샀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한 사람이다. 다음엔 이 사람이 쓴 소설도 읽어야겠다.

<철학의 위안>을 읽으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황하게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은 제목 하나마다 옛 철학가 한 사람을 불러 그의 생각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자신이 부른 철학가, 그 철학가가 쓴 글을 몽땅 읽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학다식만으로 쓸 수 있는 글은 아니다.


쇼펜하우어와 괴테, 그들이 십 대 소녀에게 품은 사랑도 이 책을 읽어서 알았다.

쇼펜하우어도 괴테도 궁금하다. 간접적으로 나는 그들을 알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조만간 이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일어서야겠다.

2,0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오래 앉아 있는 건 뻔뻔함일 수 있다.

지금 홀에 손님이 없다. 혼자 일하는 주인이 눈치 주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군것질할 빵이라도 있으면 같이 주문했을 것인데 여긴 없다.

글을 마치고 남은 커피를 홀짝하고 나가야겠다.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다.

오늘은 어느 십 대 소녀가 내 영혼을 빼앗아갈까?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하에서 태어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배움.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세이 <여행의 기술>, <불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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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존재들을~ 소크라테스

가난한 존재들을~ 에피쿠로스
좌절한 존재들을~ 세네카
부적절한 존재들을~ 몽테뉴
상심한 존재들을~ 쇼펜하우어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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