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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용 Apr 24. 2023

2. 과학, 주체성의 역사(2)

혼란 속을 헤쳐 나가는 법 - 좌표


"주체성이 곧 진리다"
-쇠렌 키르케고르-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파리 한 마리가 천장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낯설 것 하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순간 중 하나가 되었다. 오로지 침대에 누운 그의 생각에 의해서.


심심했던 그는 파리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앞서 우리가 지도에 관해 얘기했던 것을 상기해 보자. 우리는 실제 세상을 보고 거기에 우리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번에는 천장과 파리가 실제 세상이다. 그리고 파리가 날아다니는 궤적은 상상을 통해 그린 것으로,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던 그는 15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랬던 것처럼 파리가 아닌 천장에 위도와 경도처럼 격자를 그림으로써 파리의 움직임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격자를 이용하면 파리의 움직임을 훨씬 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격자를 생각해 낸 배경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은 그 무엇도 기준을 삼을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온통 검은색만 보이듯 데카르트의 시야는 온통 천장의 무늬 하나 없는 밋밋한 색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처럼 주변에 기준을 잡을 수 없을 때, 그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내면의 가장 확실한 기준에 의지했다. 눈을 가린 채 한 걸음씩 걷듯, 천장에 격자를 그려 한 칸씩 헤아리며 파리의 움직임을 쫓았던 것이다. 


여기까지였다면 단순히 프톨레마이오스가 했던 생각을 따라잡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생각해 낸 사상은 이 파리의 일화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게 만들어다. 그의 철학으로 인해 이 파리에 관한 일화는 이제 '천장과 파리가 있었고', 다음 자신의 ‘상상 속 격자를 덧칠’하여 파리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격자가 있었고', 거기에 ‘파리와 천장이 덧칠’된 것이었다.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우리가 여태껏 세상을 거꾸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발상이 역전되어 세상의 손님에 불과하던 인간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바뀌어버렸다.


데카르트 초상화.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 뒤바뀐 세계를 수학이라는 가장 확실한 도구로 지탱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살던 시대엔 확실하게 확립된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철학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젊은 시절의 데카르트는 논쟁의 여지없이 보편성을 가진 수학이야 말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학과 과학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는 갈릴레오가 겪은 지동설에 관한 재판을 전해 듣고는 수학과 과학 연구를 포기했다. 대신 수학의 보편성을 철학에 가져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것,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맸다. 모든 것은 확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누군가 임의로 조작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마치 실제의 세계와 그의 세계가 유리된 것처럼 그가 보고 느끼는 어느 것도 실재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골똘히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철학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선언을 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목 사진: Snow Minister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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