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용 Apr 21. 2023

1. 과학, 주체성의 역사(1)

낯선 세상 속에서 -지도-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과 지도, 그리고 운명을 딛고 설 용기다”
-엘 나이팅게일-


낯선 상황에 떨어졌을 때 또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을 때 우리는 큰 혼란을 겪는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이 사건이 생겼을 때 말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 낯선 상황 앞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역사 속 실재했던 인물들이나 문학 속 인물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는 인간이 존재한 이후로 계속해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낯선 상황 속에서 인간이 선택해 온 방법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서 대응하는 것이었다.


아주 먼 옛날 인류에게 매일매일이란 온통 알 수 없는 것들과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실행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글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신 주변의 길이나 중요한 위치, 위험 등을 땅에 새겨 기억하고 공유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좀 더 발달한 후에는 나무껍질이나 동물의 가죽에 새겼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처럼 지도는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지도를 단순히 지리를 넘어 여러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에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지 재구성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인지 재구성은 자신이 가진 생각들로 지도를 그려내고 구체화한다. 이렇게 지도를 그리고 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지도에 지리를 그려낸 다음 잘 아는 지역과 모르는 지역을 표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작성한 심리적 지도를 통해 생각을 더 분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왼쪽 사진은 23000년 전에 산과 강 등이 그려진 매머드 상아. 오른쪽 사진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그려진 도시를 그린 지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도의 기원은 거의 인류의 시작과 함께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어떤 지도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인지는 명확하게 합의된 바가 없다. 그러나 어떤 주장에 따르면 기원전 23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 상아 위의 지형 그림이 발굴된 최초의 지도라고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서는 기원전 2300년 즈음에 만들어진 지도임이 확실한 그림들이 발견되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이 지도들은 확실히 측량법을 이용한 오늘날 지도의 의미에 해당하는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지도들은 대부분 토지 측량이나 재산 기록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에 사용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좀 더 야심 찬 지도들이 만들어졌다.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 철학적인 목적이 담긴 지도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중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도가 두드러진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자료를 활용해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세계지도를 만드는 시도는 물론 야망찬 것이었지만 그의 지도는 그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지도에는 오늘날 위도와 경도에 해당하는 좌표가 그려져 있었다. 이전의 지도들은 필요에 따라 개별적인 장소에만 집중했었다.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 개별의 장소에만 자신의 지식을 투영한 것이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는 지구라는 세계 위에 자신의 기준을 그렸다. 단순히 주어진 상황을 대하는 것을 넘어 지구 전체를 이해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 지도에 위도와 경도를 그린 가느다란 선들을 확인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위도와 경도라는 개념은 수학적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나는 이 시도가 정말 인간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려진 지리의 모양 위에 자신이 알고 있는 친숙한 것들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세계는 너무 넓고 복잡했기 때문에 바깥의 지리에 의존하는 대신 오직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마치 우리가 눈을 감고 걷게 되면 걸음을 기준 삼아 한걸음 한걸음 세며 걸어 나가듯 그는 단 한 번도 눈으로 본 적 없는 곳을 한 줄 한 줄 그으며 그려갔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자연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세계의 본질에 더 깊게 닿고자 하는 보다 능동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개개의 위협을 넘어 우리 주변에 도사리는 모든 위협에서 본질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이 깔려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도는 세계 전체에 자신의 주관성을 투영한 것이었다.


우리의 방식은 프톨레마이오스나 더 과거의 사람들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지도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땅에 대한 지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행위를 묶어 매핑 혹은 표상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시로, 개념과 경험에 대한 매핑은 스키마(schema), 공간에 대한 매핑은 멘탈 매핑(mental mapping)라고 불린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동시에 외부의 세계에 우리의 주관을 투영하여 세계를 헤쳐나가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세계 위에 '자신의 세계'를 투영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상에 관철하는 능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1500년 정도가 흐른 뒤, 한 사람이 세상 위에 그려진 지도를 다시 한번 완전히 뒤집는다. 그의 이름은 바로 데카르트였다.







참고문헌

1) Charles, F. F. (2023). map. https://www.britannica.com/science/map.

2) Wolodtschenko, A, & Forner, T. (2007).  Prehistoric and Early Historic Maps in Europe:

Conception of Cd-Atlas. e-Perimetron.



매거진의 이전글 과학이 용기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