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치타델레에서 달달함을 조제하는 시간

[내 삶에 '달달' 한 스푼] 내 인생이니까 내맘대로

by 백다은

"라떼요. 시럽 추가 부탁드려요."

"고객님, 뒤쪽 바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 아, 그렇죠?"


뒤돌아 'SELF'라 적힌 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불편함을 감추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뚜껑을 열어 시럽을 넣고 두둑 소리를 내며 덮어야 하는 그 사소한 번거로움을 덜고 싶어 요청했던 건데.. 약간의 귀찮음이 밀려온다.


덤덤하게 둥근 뚜껑을 다시 열어 한 펌프 꾸욱 누른다.


가끔씩 내 의도를 알아채는 센스있는 점원들이 있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었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지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실 커피의 당도를 직접 조절하는 것처럼,

삶의 달달함 정도를 정하는 일도 결국 내 몫 이라고.


커피에 달달함을 한스푼 넣을지, 두 스푼 넣을지,

늘상 넣던 설탕이나 시럽이 아닌

연유나 카라멜, 시나몬 같은 다른 향을 맛볼지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이듯이 말이다.

나에게 '달달 한 스푼'은

새로운 일을 작당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에서 형태로,

무언가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그것은 원고, 동화책, 육아툰, 수업자료, 기획안, 강연 PPT, 음악일 때도 있다.


요즘 뒤집기도 모자라

벌떡 일어나 장난치기에 바쁜

개구쟁이 13개월 아기를 재우고나면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는데..

그 때를 나는 이렇게 부른다.


치타델레(Zitadelle, 독일어로 '요새 안의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달달함을 조제하는 시간


오늘은 <아기 키우는 만화> 육아툰 그림과 글을 구성하고, 곧 출간될 <두근두근 N잡 대모험>, 첫 에세이 성격의 원고를 설레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야심차게 기획, 집필한 동화책 <인공지능수학 연구소> 원고를 읽고 또 읽어보았다.


뒤집기-기기-서기-걷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남기려 아기 성장일기를 쓰고,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기도 한다.

[스포주의] 시크하고 도도한 무표정 초코양을 웃게 하려고 이발사 브레드와 동료 윌크가 애쓰지만, 초코를 웃게 한 이는 다름아닌 택배 아저씨였다. (브레드 이발소 인스타그램)


나를 웃게 하고, 삶에 달달함을 주는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이불 속에서 벗어나오기 가장 힘든

월요일에 택배를 받을 수 있게 설정하는 일일수도, -점심 먹으면서 저녁메뉴 정하는 즐거운 고민일수도,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가 동영상을

보고 또 보는 일일수도,

-출퇴근길 호흡이 짧은 시트콤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일일 수도 있다.

- 또는, 새로운 내 삶을 위한 기획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어도 좋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는 SNS 속 달콤한 말 한 마디나 위로만으로 대체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일상에 달달함을 몇 스푼 넣을지, 무엇을 더 넣어볼지 정하는 일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치타델레에서 나만의 달달함을 조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백다은

<고독한 미식가> 뺨치는 글로컬 동네맛집 탐방가에, <천사들의 합창> 시릴로의 순애보를 응원하고, <순풍 산부인과> 정배의 순수함이 늘 보고싶고 그리워 태교까지 순풍으로 했다. <브레드 이발소> 빵 한 조각과 우유에 담은 상상력을 사랑하며, <찰리브라운> 별볼일 없는 찌질한 캐릭터가 언젠가 빛을 보는 뻔해보이는 클리셰도 좋아하고, <노다메 칸타빌레> 엉뚱한 노다메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타인의 지층들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조조영화, 돌체라떼 한 잔, 아삭한 사과 한 입에 아침이 기다려지는 소시민.

무의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달달’ ‘낭만’ ‘상상’ ‘열정’ ‘감동’ ‘엉뚱’
한 스푼을 더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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