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다은 May 21. 2018

교육은 미래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현재의 삶 그 자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vs 이미 도착한 미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vs 이미 도착한 미래


래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시간 여행'이라는 특별한 치트키가 생긴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까요? 그 상상을 담은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은 숱한 시간 여행 끝에 그 덧없음을 깨닫고, '오늘을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후회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삶이 허락한 최고의 기적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이라면서요.


현실 세계에서 ‘다음은 뭘까?’라는 질문은 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받았고, 좀 더 큰 다음엔 대학을 졸업하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직장에 취업해야 할지 늘 그 다음, 또 다음..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태도로 인해 우리는 어쩌면 이 순간에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교사가 되어 지금 아이들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그 압박감의 강도도, 빈도도 더 세진 모습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살아갈 준비를 할 뿐, 정작 삶을 살지 않는다.

                          랄프 월도 에머슨


영화 <어바웃 타임> 중에서


연일 미디어에서 쏟아져나오는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 불안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오늘날 학생들의 65%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다.(케시 데이비스 듀크대  교수)” "현재 직업의 47%가 2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칼프레이 옥스퍼드대교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도서 산간지역에 근무하는 선생님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을 들은 아이들이 지금 갖고 있는 자신의 꿈을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담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해 교육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교육계에서도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이며,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라는 거대 담론의 기세에 눌려 정작 교육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도 이미 산적해있는 교육계의 여러 문제들은 외면한 채, 아직 실체도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현재 우리의 삶마저 뒤덮어버린 건 아닌가 말이죠.


교육을 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이미 도착한 미래’로 표현합니다. (교육의 티핑포인트, 허핑턴포스트)


우리의 사회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인공지능로봇, 사물인터넷, 모바일, 3D프린터, 나노·바이오 기술 등은 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활용되고 있는 ‘이미 도착한 미래’임에도 도착하지 않은 미래로 착각하거나 변화지체 현상으로 인해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과 동시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해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양극화의 심화와 이로 인한 지속 가능성의 위기,민주주의의 위기, 교실 내 학생들의 다양성 급증, 환경문제 같은 ‘이미 도착한 미래’의 문제들이 사회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함에도 학교 교육은 여전히 상위권 위주로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교육비 감소’,‘선행학습 금지’와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이 교육문제담론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현실에 대해 꼬집었습니다. 미래교육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교육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전망 팩트체크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같은 미래 핵심 기술이 비약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과장된 것일 수 있임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AI 전문가 장 크리스토프 베일리 박사는 ‘알파고가 인공지능이 아닌 이유(Why AlphaGo is not AI)’라는 글을 발표했으며, 미국 워싱턴대학의 컴퓨터공학자이자 앨런인공지능연구소(AIAI) 소장인 오렌 에치오니 박사는 ‘알파고는 자율성이 없다. 나는 두렵지 않다’는 글을 포스팅하기도 했습니다.


미래 융합 전문가인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정지훈 교수는 직접 운영하는 하이컨셉 & 하이터치라는 블로그에서 '변화는 단순히 기술만 담보된다고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가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하고,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제도적, 경제적 보완책이 있어야 하기에 여간 복잡한 게 아니죠.'라며 미래의 변화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나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했던 기술 진보가 적어도 미래의 행복을 향해 있던 것과 달리,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최근의 경고는 기술 유토피아의 협박에 가깝다는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의 인터뷰 기사(경향신문, '4차 산업혁명, 기술 유토피아의 협박…미래의 행복이 등장하지 않는 진보')에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식의 다소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워딩 대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이렇게 점차 힘을 얻고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주최 학부모 토크콘서트 (경기도 교육청, EBS 주관)


그럼에도 대중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무성하지만, 담론 자체에 대한 비판은 드물기 때문일텐데요.


교육부 주최, 경기도 교육청과 EBS가 주관하는 전국 학부모 토크 콘서트에 교사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미래 사회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를 접하며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연일 미디어에서 아이들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뉴스보고는 앞으로 수학공부는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상황이 변한다 해도, 기왕이면 좋은 대학 가는 게 유리한 건 변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입시 따로, 진로 따로, 둘 다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와 '이미 도착한 미래'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만 한 우리 모두를 위해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동 문학에 있어 최고의 명예를 상징하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작가 ‘레오 리오니’는 20세기의 이솝이라 불립니다. 『프레드릭』이라는 그의 그림책에는 예술가 들쥐 프레드릭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개미와 베짱이’와 구조는 언뜻 비슷해보이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전혀 다릅니다.


이야기 속에서 들쥐들은 추운 겨울을 대비해 옥수수, 나무 열매, 밀, 짚을 모으느라 밤낮없이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다른 것들을 준비해둡니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온통 잿빛인 겨울을 나기 위해 ‘색깔’을 모으고 기나긴 겨울을 보낼 얘깃거리를 준비하느라 ‘이야기’를 모으죠.  

                      

여기서 참 재미있는 대목은 ‘개미와 베짱이’에서와는 달리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태도에 대해 나무라거나 면박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뭘 하는지 묻고는 자기 일을 할 뿐입니다. 처음엔 넉넉했던 열매와 곡식도 겨울이 되자 다 동이 나고야 맙니다. 돌담 사이론 찬바람이 스며들고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들쥐들은 프레드릭이 모아놓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기억해내죠. 프레드릭은 들쥐들의 눈을 감기고 찬란한 금빛 햇살과 아름다운 색깔을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죠.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시인'이라고 박수를 치며 감탄합니다. 친구들의 찬사를 받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귀여운 프레드릭의 마지막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프레드릭』이라는 짧은 이 그림책을 읽으며 다른 들쥐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부지런히 ‘대비’하는 모습에서 인간들의 세상을 엿보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항상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언제나 살아갈 준비를 할 뿐, 정작 삶을 살지 않는다는 말처럼요.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고 위대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들쥐들의 눈을 감기고 찬란한 금빛 햇살과 아름다운 색깔을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하던 프레드릭처럼, 마음의 허기와 갈증을 채워주는 영혼의 양식을 마련하며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자라날 아이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00년 전 그려진 미래

'100년 전 사람들이 상상한 21세기의 모습'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면, 1910년에 그려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 중 현실에서도 비슷하게 구현된 기술들도 간혹 눈에 띄기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다가온 것인지, 혹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지 그 경계도 불분명한 미래라는 것에 두려워하기보다는, 한 번쯤 숨을 고르고 오늘 충만하게 행복하고, 내일도 함께 행복하자라고 이야기해주었으면 합니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현재의 생활 그 자체를 의미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 정의한 존 듀이의 말이 더욱 와닿는 요즘입니다.


 "Education is not preparation for life ; education is life itself."
교육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현재의 삶 그 자체다.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있는 미래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목소리


미래, 미래교육에 대한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져가고 있지만 실은 그것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교육이기도 합니다. 미래를 현재처럼, 현재를 미래처럼 살아가고 있는 멋진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들어보시죠. (출처 : 인디스쿨 X 진저티 프로젝트)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을 공부를 하면 할수록세상에 의심을 품지 않게 되는 교육이라는 취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저도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살아왔는데, 아이들은 세상을 향한 주 체적인 관점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질문만들기> 수업을 시작했어요.    

-3년차 초등교사 송ㅇㅇ
저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웠으면 자기만의 언어로 재창조해서 다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각자의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는 걸 수행평가로 하고 있어요.

-5년차 초등교사 김ㅇㅇ
정치 프로그램을 만들어봤어요. 학급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해결할 정당과 대표를 뽑는 거에요. 아이들의 삶에 정말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이자 정치활동이었어요. 그 어떤 정치교육보다 아이들이 정치에 흥미를 갖게 되어 정말 뿌듯한 수업이었어요.   

– 10년차 초등교사 지ㅇㅇ
학생들 스스로가 정보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닌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 프로슈머가 되면 좋겠습니다.  

- 11년차 초등교사 허 ㅇㅇ  

                                                        

먼 미래사회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미래교사, 미래 교육, 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것 아닐까요?


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현재의 생활 그 자체를 의미있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0대의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당장의 과업보다 빛나는 햇빛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마음껏 꿈꿔보는 것이 일생에 걸쳐 더욱 특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게 응원해주는 인생학교가 되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꽃피는 방법과 속도는 다르니까요.

                   - 10년차 초등교사 백다은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지도 함께 제공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술은 교육을 구원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