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행성 수업 이야기
다니엘 핑크 『새로운 미래가 온다』
<미래 인재의 6가지 조건 (2) 디자인>
디자인은 양쪽 뇌를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의 가장 대표적인 지능
아웃소싱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려운 하이컨셉의 핵심능력
기본적인 비즈니스 필수교양으로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읽고 쓸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
“이 교실 안에는 예술가가 얼마나 있니?
손 좀 들어볼래?”
이 때 반응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는 경쟁적으로 높이 손을 드는 반면, 고학년 교실에서는 서로 눈치만 살피며 어쩌다 손을 드는 친구가 있어도 오히려 “오~~”하며 사춘기 특유의 반응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질문은 고든 맥켄지(Gordon MacKenzie)라는 디자이너가 학교 현장에서 우리 시대에 새롭고도 중요한 가치로 각인되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고, 저 역시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질문해본 것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디자인’이라는 말을 소수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삶에서 디자인은 결코 요원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잠시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알 수 있죠. 하루 종일 주인의 곁에 머무는 스마트폰도, 입고 있는 티셔츠도, 아이들의 필통부터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연필, 지우개, 샤프까지도.. 원래는 누군가의 머릿 속에 이런 기능과 모양을 가진 무언가를 상상한 뒤 만들어낸 것이고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든 것이니까요.
평범한 토스터기를 우리는 기껏해야 하루 15분 정도 사용하지만, 나머지 하루 1,425분 동안은 사용하지 않고 진열만 해 놓습니다. 토스터기의 하루 시간 중 1퍼센트만이 기능상의 효용을 위해 사용되고 나머지 99퍼센트는 의미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죠.
원시인이 돌을 쪼아 화살촉을 만들던 석기 시대부터 인간은 디자이너였다?
다니엘 핑크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는 원시인이 돌을 쪼아 화살촉을 만들던 석기 시대 이래 인간은 디자이너였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초원을 헤매고 다니던 무렵부터 인류는 선천적으로 진기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종족이었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디자인은 시간과 돈이 충분해서 이를 즐길 수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때를 지나 지금은 디자인이 민주화되어 대중들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죠.
그런 디자인이 이제는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찾고 이를 토대로 문제 해결방법을 생각해내는 가장 중요한 미래 능력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미래의 연금술사다.” 디자인아트센터 컬리지 총장 리처드 코살렉(Richard Koshalek)의 말처럼 말이죠.
피츠버그 몬테피오르 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충분한 천연 조명이 들어오는 병실에 있던 수술환자들의 경우 그렇지 못한 기존 병실에 있던 환자들보다 진통제가 덜 필요하고 약품 비용도 21퍼센트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비교했습니다. 한 그룹은 황량한 풍경의 기존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고 다른 그룹은 현대적이고, 햇볕이 잘 들며,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디자인이 좀 더 나은 병동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은 다른 그룹보다 진통제 사용량이 적었고 평균 이틀정도 퇴원 일자가 빨랐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은 병원들이 좀 더 많은 자연광선이 병실로 들어오게 하고, 안락하면서도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도록 대기실을 꾸미는 한편 명상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정원이나 온실을 만드는 등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환자들의 정서를 안정시킬 뿐 아니라, 치유 속도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깨달았기 때문이죠.
교육사례 1 _ 물백묵 시화전, 일상을 예술로 만들다.
한 주 뒤에 있을 시화전 수업을 준비하던 어느 오후였습니다.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시화전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이번엔 유리창을 스케치북으로 삼아보기로 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 어렵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간도 잠시,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골라 친구와 함께 물백묵으로 유리창을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나갔습니다. 우리의 일상 공간이 아름다운 예술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쓰며 자신에게 주어진 유리창이라는 화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시와 그림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을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았습니다.
수업의 고안자로서도, 디자인이라는것이 양쪽 뇌를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의 가장 대표적인 재능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활동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과 자신을 표현하는 힘을 깨워주기 위함이지 예술가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심미안을 갖추어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사례 2_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비파형 동검 만들기 역사체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엔트리)』에 일본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한 가정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습니다. 아이는 일본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항상 100점을 맞는 우등생이었고, 프랑스어도 유창했는데, 프랑스 학교에서 본 시험에서 0점 시험지를 받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엄마가 학교를 찾았는데, 교사는 뜻밖에도 이렇게 답했다고 하죠.
“역사 시험에서 자신의 해석은 하나도 없이 사실만을 적은 답안은 0점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접하며 그간의 역사 수업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반 아이들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제목의 역사 공책을 함께 만들고, 수업을 꾸려가면서 중점을 둔 것은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평범한 공책 안에도 다양한 디자인 수업이 숨어있습니다. 더 이상 디자인이라는 이름이 특정한 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테니까요.
특히 ‘청동기 시대’에 대한 역사 수업을 할 때, 미술과와 연계하여 *비파형 동검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기억에 남는데요. 최대한 청동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푸른 빛깔의 비누 베이스를 미리 준비하여 그것을 녹여 아이들이 점토로 만든 거푸집에 그것을 부은 후, 거푸집을 제거하고 비누 청동검을 떼어내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비파형 동검 : 비파라는 악기를 닮은 청동으로 만든 청동기 시대의 칼
역사 시간에 아이들은 ‘기원전 2000년 경부터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구리에 주석 등을 섞어 불에 녹여 만든 청동기가 등장하였고, 주로 거울, 방울, 검 등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도구나 지배자의 무기, 장신구 등으로 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배우던 때였습니다.
마음에 흡족할만큼 완벽한 모양으로 완성한 아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업 설계시 예상되었던 바이고, 오히려 그것이 교육적으로는 더욱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청동기 시대의 유물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통해 저는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품고, 이에 스스로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청동기는 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도구나
지배자의 무기, 장신구로 주로 쓰였을까?
석기 시대 이후, 청동기를 활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왜 청동기 시대에도 농사를 지을 땐
석기시대처럼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든 도구를 사용했을까?
비록 간접 체험이기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청동기는 만들기가 어렵고 귀해 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지배자의 무기나 장신구로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역사적 상상력과 사고력을 키워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설계한 수업이었습니다.
디자인이 녹아있지 않은 수업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다 하고 있는 활동임에도 좀 더 의미를 부여해보고싶습니다. 비쥬얼 씽킹을 통해 그 날 배운 내용을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해보고, 삼국 시대의 문화재들을 나라별로 분류하여 북아트나 역사 신문의 형태로 꾸며보고, 나만의 고려청자를 디자인할 뿐 아니라 그에 맞는 시도 한 수 지어보고요.
디자인은 양쪽 뇌를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의 가장 대표적 지능
이런 시간들을 통해 어릴 때부터 자기 나름의 디자인 감각을 키우고,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잇고,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디자인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기본적인 비즈니스 필수교양으로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읽고 쓸 수 있어야 함
아웃소싱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려운 하이컨셉의 핵심능력
이 피리를 불면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모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하늘이 개며, 바람이 불고 파도고 거칠면 그 또한 잠잠히 재워줄 문무왕의 만파식적.
만약 내가 문무왕이었다면, 아들인 신문왕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바로, 디자인이 있었습니다.
동학년 선생님과의 협력으로 역사 RPG 게임으로 뗀석기와 간석기를 비스킷으로 열심히 만들어보며 우리 조상들이 대초원을 헤매고 다니던 무렵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였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년 간 코딩, 3D 프린터, 드론, 로봇, 인공지능, VR 교육과 같은 단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옵니다. 미래교육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겠죠. 어느새 교육 현장에서는 미래 인재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명목 하에 ‘코딩 O주 완성' ’로봇영재’ ‘월 200만원 코딩 유치원’ ‘8백만 원 짜리 코딩 캠프’, ‘시간당 4만 원짜리 코딩 과외’ 등 과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그리 낯설지 않은 구호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들은 어디까지나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많은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단기간에 3D 프린터, VR, 드론의 기능을 실습 형태로 체험을 진행한다고 해서 이것을 미래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또 새롭게 우리 삶에 들어온 도구가 아닌, 기존의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현해나가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요?
제품과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닌, 오히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기를 주문하는 요즘, 사회의 관심이 온통 최신의 도구에 대한 논의에만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VR 역사체험만이 미래 교육인가요?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을 만들어보며 그 당시 생활상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은 도자기를 빚기 위해 물레 앞에서 기다려보기도 하고, 다양한 소재의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멋진 예술품으로 재탄생시켜보는 것 등.. 각자가 택한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미래교육 아닐까요?
인간이 상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합니다. 그 중 누군가는 위에서 언급된 ‘지금으로선 최신’인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로 구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제각각 다른 선택을 할 권리가 있고, 이것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며, 그 예술적 감수성으로 서로의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차별화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모두가 ‘디자인’ 일 것이며, 우리 아이들 모두는 미래의 언어를 다루는 연금술사, 디자이너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지도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