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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다은 Jun 19. 2018

프로불편러, 역량에 의문을 품다. 2

자기역량, 그 너머의 것들

‘나대로’ 살아가기


'사람은 안 변한다'?


아직 많이 살아보지 않아서일지는 몰라도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혼자 내려본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200여명의 신입생이 모인 자리에서 MBTI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공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유일하게 ENTJ (대담한 통솔자형)가 나와 전세계 3% 비율의, 여성으로서는 더욱 드문 유형이라며 그 시간을 진행한 강사에게 호명되어 강단 앞에 불려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일은 기숙사에서 4년간 같이 살면서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된 아직까지도 추억의 이야기로 회자되곤 합니다. 남들 다 임용 공부하던 여름방학에 타대학 친구들과 글로벌 프론티어라는 해외 공모전 준비한답시고 온라인 미팅을 하고, 밤새 PPT를 만들고 있었는데, 먼저 잠든 룸메이트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제가 부동의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계속 그걸 하고 있는 집념을 보고 '너는 남들하고 다른 방식으로 뭘해도 해낼 거다.'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대장부, 유한 듯 보여도 은근 자기 똥고집있는 기질이 있었다는 어릴 때부터의 증언들을 여러 루트로 수집했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적인 시대의 아이콘에 대한 선망으로 제가 그리던 이상향인 ENTJ (대담한 통솔자형)에 가깝게끔 선택지를 골랐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타 분야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메디치 효과'를 기대한다며 온갖 엉뚱한 일들을 하고 다닐 때에는 ENFP(스파크형)이, EBS 초등공채강사를 할 때와 강연에 한참 관심을 많이 가졌던 때에는 ENFJ (언변능숙형), 요즘처럼 변화없이 가족과의 조용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거나, 동화작가 조앤롤링을 선망하고, '빨간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 빠져있는 요즘엔 INFP(철학자형)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사람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비판을 받고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은 될 수 있겠지만요.


스무살 이후 '이름 앞에 다양한 타이틀이 붙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향점을 목표로 가졌고, 그런 성향을 실제로 갖고 있기도 하기에 일반적이진 않지만 많은 변화를 만났고,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다중이의 삶을 살고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NF 이상주의자형임에는 아직까지는 크게 변화가 없는 듯하나, 사실 내향성(I)과 외향성(E)의 경계는 수시로 오가는 듯하고, 판단형(J)과 인식형(P)조차 그 때 그 때 관심사나 삶의 목표, 관점,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봐도 잘 변하지 않는 어떤 어려움을 토로하는 면에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라 말하는 것과, 남을 대상으로 "거봐, 사람 절대 안 변한다니까."라는 말은 활자는 같아도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쓰입니다. 적어도 남에게 혀끝을 차면서 냉소적으로, 그것도 확정적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140년 현대심리학의 역사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 자신’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각종 심리학적 상담, 심리치료는 ‘결함모형’에 기초하고 있으며, 무의식에까지 접근하여 ‘컴플렉스’, ‘우울’, ‘불안’, ‘성격장애’ 등 심리학적 개념의 전제도 사실 ‘부정적 인간관’에 기인하는데요.


최근에 들어서야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너를 바꾸라’ '약점을 고쳐야 한다.'는 말 대신,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키워나가는 것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점을 끌어올리면 약점은 저절로 개선된다는 논조에는 이론적 약점이 아직 많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럼에도 나로 살고 싶지, 자기계발서의 지침대로만 살아가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게 '자뻑하며 그냥 지금의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자기역량, 그 너머의 것들


역량에 대한 접근도 이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육과정에 명시된 역량을 갖춘 유형의 인간이 되지 못했다하여 스스로 괴로워할 필요도, 그 잣대에 도달해야 한다고 타인에게 채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소통형 인간이 살아가기에 유리한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이에 의사소통능력

(Communication Skill)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되기에 어릴 때부터 배움의 기회를 열어줄 필요는 있습니다. 제대로된 역량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의 힘이니까요. 

의사소통능력 (Communication)
능동적으로 듣고, 명확하게 사고하며,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협상, 지시, 설명, 조언, 관계 형성, 갈등 해소 등 여러 상황에 다양한 형태로 상시 적용됨

-21C 학습자에게 필요한 역량체계(지식, 능력, 인성, 메타러닝) 중 능력에 해당-

하지만 이는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맞게 적용되어질 것입니다. 더 많은 사례가 있겠으나, 저는 여기서 3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삶의 시기에 따라 내향성(I)과 외향성(E)의 경계를 오가며, 의사소통능력(Communication Skill)에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거나, 심지어 그것을 스스로 알고 조절하거나 선택하는 사람.


둘째,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널리 교류하며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조금은 어눌하더라도, 춤, 그림, 음악, 공학 등 자신만의 소통 언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아이덴티티가 되는 사람.


완전한 의미의 소통은 아닐 수도 있으나, 요즘같이 정보를 지천에서 구할 수 있는 때 자신의 연구실, 스튜디오, 화실, 교실 등에서 책, 논문, 미디어, SNS 등을 섭렵하며 자신만의 배움의 방식을 체득해가며 유의미한 결과를 세상에 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소통방식 또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노력 여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의사소통능력이 부족하여 이것이 본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있는 사람.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고, 뛰어난 예술적 재능까지 지녀 세계 무대에서 크게 인정받았음에도 전 소속사의 감금폭행 사건, 출연료 미지급(담배 한갑의 개런티였다는 당사자의 주장)으로 조울증을 얻어 몇 년간 활동을 하지 못했던 한 예술가의 안타까운 사연을 기억하실 겁니다. 평소 돈 관리나 자기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고백한 그에게 만약 어릴 때 가정에서부터 자기역량 교육이 뒷받침되었다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까 상상실험을 해 봅니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것은 가족이나 조력자의 도움이나, 최소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술가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 장치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간과된 채 오롯이 개인의 역량부족 문제, 사적인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교육과정상에 명시한 '자주적이고, 창의적이며, 교양 있으면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인간상'은 현실적으로 쉽사리 넘어서기 어려운, 거의 성인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자기 분야 하나만 잘하기에도 벅찬 것이 사실인데, 앞서 예시로 제시한 예술가의 경우,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갖추고 자기관리능력과 의사소통능력까지 완벽하게 갖추라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고 결혼식에 축가 연주까지 해 주셨던 김형석 작곡가 겸 프로듀서처럼 탁월한 예술가이면서 비즈니스, 국제적인 대외교류에까지 능한 통찰력있는 협상가(Communicator)는 결코 흔치 않은, 아니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궁극적으로 예술만 할 수 있는 노년의 삶이 목표라는 그가 역량중심교육으로 역량을 키워왔을리 만무합니다. 그저 삶의 흐름 속에서 마치 유연한 서퍼가 넘실대는 파도를 즐기며 타듯, 자연스럽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맥락을 잘 읽어내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잘 헤쳐왔던 것일 테니까요.  


 FAIL 대신 NOT YET, 성장 마인드셋

 

앞선 글의 말미에서 다소 장난스럽게 맺음하였지만, 역량체계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던 부분은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입니다.


학생들에게 “지능과 재능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도전 동기와 학업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1년 뒤 성적을 예측하는 인자로도 밝혀지고,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인데요. 바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스탠포드대 캐롤 드웩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믿음과 태도를 말하며,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 현대 사회에서도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를 접목하여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는 학생이 졸업을 하려면 일정 수의 과목을 통과해야 하는데, 통과를 하지 못한 과목에는 'Fail' 대신 'Not yet' 이라는 학점을 줍니다. 낙제(Fail)’이 아닌‘ ‘아직(Not yet)’이란 학점을 받으면 그것이 배움의 끝이 아니라, 자신이 계속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캐나다 토론토의 프랑스어 교사인 Sylvia Duckwoth(@sylviaduckworth)가 트위터에 올린 10 Growth Mindset Statements는 학생, 교사, 또는 그 누구나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자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성장의 믿음, ‘성장 마인드셋’은 핵심역량체계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캐나다 토론토의 프랑스어 교사 Sylvia Duckwoth의 트위터 (@sylviaduckworth)



무위(無爲)의 교수학습법


'역량'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무거운 숙제를 받아들고, 뒤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당위'와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의 경계 어디쯤엔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 몇 개의 수업이나 프로젝트로 특정 역량을 키워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방법론은 될지언정, 목표로 하는 역량에 단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더 이상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역량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게 과정을 설계하되,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의 입장에서 그것이 좋은 계기가 되어 또다른 성장의 기회로 연결되어 삶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것이며, 삶에서 체득된 역량은 점진적으로 평생에 걸쳐 향상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생애 전반에 걸쳐 끊임없는 배움을 필요로 하는 평생학습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육=학교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마당에 인위적 교수법에만 갇힌다면 오히려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고, 새로운 관점을 갖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존의 인위적 교수법을 넘어서는 무위의 교수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히려 가정과 학교, 일상 생활 속의 재발견이 자연스럽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새끼나 무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르고, 어미의 사냥을 지켜보고 사냥감을 가지고 놀면서 사냥술도 익힌다. 어미가 새끼를 가르칠 때 오늘은 사냥술을 가르치겠다고 밝히면서 사냥술의 의미, 목적, 활용되는 기술의 유형 등을 가르치는 식의 인위적 학습을 시키지는 않는다. 일상의 삶과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기술을 익히도록 살아있는 먹잇감을 던져주는 식의 무위의 교수법을 활용한다. 우리 인간도 학교라는 것이 생기기 전까지는 가족 및 주위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배우는 무위의 교수학습법을 활용하였다.

죽음에 관한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거나 주위사람을 통해 체험하면 이해심과 자비심이 커진다고 한다. 대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살며 자주 왕래하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치매에 걸린 채 죽음을 눈앞에 둔 할아버지나 이웃 친척들과 매일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인위적인 ‘공부’를 하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일부러 죽음 간접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체험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인위적 교육은 무위의 교육보다 효과가 낮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이를 자연스럽게 배울 여건이 되지 않은 탓인지 요즈음에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들마저 영원히 살 것처럼, 그리고 산 채로 생이별해야 하는 치매가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필요한 것이 무위의 교수학습법이다. (무위(無爲)의 교수학습법, 박남기)


학부모들이 방학에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경험의 소회를 듣게 됩니다. "답만 맞으면 됐지"하며 수학 연산 문제집 푸는 시간을 지루해만하던 4학년 남자아이와 동네 문구점에 가서 모노폴리 보드게임을 사와서 가족들이 시간날 때마다 같이 게임으로 돈계산을 통해 연산 공부법에 자연스럽게 재미를 붙이게 하였답니다. 또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빠가 '문명 civilization'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게임에 참여하게끔 유도했더니, 그 시간 자체를 즐기며 이전보다 공부에도 부쩍 신경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학기 중에도 편식이 심했던 2학년 한 여자아이의 학부모에게는 여름방학 때 시간이 많으니 맛, 향, 냄새, 질감, 형태 중 어떤 것에 민감한지 알아보게 권유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버섯, 굴과 같은 물컹한 질감과 해산물의 생김새에 특히 민감해하는 것을 발견하여 엄마는 다지거나 볶거나 튀기는 등 다른 방식으로 요리법을 바꾸었습니다. 먹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여 식사시간이 거의 전쟁에 가까웠던 과거는 뒤로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요리에 참여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한 덕에 아이는 요리놀이 도중 평소에 잘 먹지 않던 피망, 버섯, 당근 등 다양한 식재료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학연산과 공부를, 요리놀이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식습관 교육을, 이를 무위의 교수법 중 하나인 헤드페이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헤드 페이크(Head Fake)'는 미식축구 경기에서 머리를 어느 한쪽으로 움직여 상대방을 그 쪽으로 유인하고 정작 본인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속임수를 뜻하는데요. 교육에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 외의 우회적인 가르침을 말합니다. 헤드 페이크 교육 전문가가 되려면 숨겨진 목표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가르쳐야 하니, 어른들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합닌다.


여기에 지혜와 위트를 더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온 방송인 남매가 자신들이 어렸을 때 엄마가 숟가락을 아이들 이 앞에 두고는 "Knock, Knock, Knock, Open the door!"하던 장면을 따라하여 아이를 웃게 해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아이가 관심을 갖고 먹기 시작했을 때 천천히 칭찬과 격려를 강화해주고, 식사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었더니 단기간에 편식을 고치기는 쉽지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식습관이 굉장히 좋아졌던 경험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처럼, 이는 어떤 정형화된 단기간의 수업이나 프로그램 안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당장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장 먹기 좋은 즉석 통조림처럼, 시중에 널린 자기계발서와 같은 프로그램을 급조하여 뚝딱 내놓을 수야 있겠죠. 하지만 가정과 학교,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멀고도 험한 시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을 간파하여 그걸로 교육하였더니 거기에 푹 빠져들어 일어를 원어민 수준만큼 잘할수 있게 된 경험을 한 학습자 / 학습과제를 완수하여 학습량에 도달하게 하는 경험의 이면에는 땀과 노력의 가치, 본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 / 운동에서도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 이면에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 끈기, 지구력, 팀워크 등 이 모든 것들이 '헤드 페이크'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출처] www.alice.org


1990년대 초반 처음 앨리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것이 헤드페이크를 통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열광해왔다. 헤드페이크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배우는 사람이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학생들은 영화를 만들거나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 위해
앨리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헤드 페이크는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법을
지금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곧 나올 프로그램에서는 사람들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게 된다.

                    랜디 포시 『마지막 강의』




프로불편러, 핵심역량에 의문을 품다 3 에서 이어집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추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자료도 함께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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