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육 대신 역량교육? 제대로된 지식의 이해와 활용, 기본기의 중요성
역량에 대한 논의 중 또 하나의 불편함은 '평가절하된 지식’의 가치입니다. 지식과 역량을 분리하여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다보니, “이제 지식교육 대신 역량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와 같은 주장이 아직까지도 버젓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식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의 바탕에는 학창시절 주입식 암기교육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영어단어 쪽지시험을 볼 때마다 어른이 되면 단순 외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며 암기를 거부하며 철부지 농성을 부리고는 했으니까요.
어쩌면 학교가 지식을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쳐서 문제가 된 것이라기보다는, '제대로된 지식의 습득과 그 활용'에 대한 교육을 충실히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동안 천덕꾸러기마냥 오해받아왔던 '지식에 대해 재발견'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제시할 주장도 선행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저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전달하는 것이기에, '지식의 습득과 생각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첫째, 역량교육을 주창한 미국의 CCR(교육과정 재설계센터, Center for Curriculum Redesign)의 21세기 교육목표 프레임을 살펴보면, 교육목표를 구성하는 3가지 요소로 지식(knowledge), 능력(skills), 인성(character)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중 능력(skills)은 지식(knowledge)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법을 뜻합니다. 이 셋은 동등한 차원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교집합을 이루어 서로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한 눈에 보여줍니다.
둘째, 얕은 학습(surface learning)은 깊은 학습(deep learning)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해 줍니다. 벤저민 블룸의 인지적 학습 단계는 지식 - 이해 - 적용 - 분석 - 종합 - 평가 6단계로, 전자에서 후자로 갈수록 고등정신능력을 뜻하나, 그렇다고 하여 학습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편적 지식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바탕으로 고등정신능력에 해당하는 학습단계를 가능하게 하여 깊은 학습(deep learning)으로 나아가게 하죠.
1. 지식 : 지식을 얻는 단계
2. 이해 : 근본적인 사실과 개념을 이해하는 단계
3. 적용 : 지식을 문제푸는 데 적용할 수 있는 단계
4. 분석 : 추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념과 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단계
5. 종합 : 지식과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종합할 수 있는 단계
6. 평가 : 의견과 개념을 평가하고 증거와 객관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단계
(출처 :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2014),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 저, 와이즈베리)
셋째,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비판적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교육의 목표를 ‘지식의 습득과 활용'이 아닌 ‘역량의 함양’으로 보는 시각은 학생을 삶과 배움의 주체(subject)가 아닌 사회가 의도한 역량을 갖춘 지도와 개입의 대상(object)으로 삼는다는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비판적 학자들에 의하면 역량 중심으로의 전환은 학습자가 배움(배우고, 습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의 주체(subject)가 되느냐, 아니면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도한 역량’(예: 창의·융합형 인재)을 잘 갖춘 대상(object)이 되느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의 목표를 ‘지식의 습득과 활용’으로 보느냐 ‘역량의 함양’으로 보느냐는 학생을 비판적, 민주적 자기 결정권을 갖는 행동과 책임의 주체로 볼 것인가 지도와 개입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후자는 전형적인 행동주의 및 도구주의 교육관이다.
역량기반교육은 밖으로 드러나는 수행과 행동(performance and behavior)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사고, 이해, 성찰, 가치 판단 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너무 구체적인 행동(behavior)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다른 상황에서 역량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즉 그 역량이 다른 영역에서 발휘되고 전이되기가 어렵다.
『Reinventing the Curriculum』 (2013)
- Mark Priestley and Gert Biesta
넷째, 역량중심교육이 '밖으로 드러나는 수행과 행동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사고, 이해, 성찰, 가치 판단 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실제로 국내외 현장교육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늬만 PBL, 역량교육?
CASE 1
공교육을 재발명하여 대안이 되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시작되었던 알트스쿨(ALT SCHOOL). 학생의 관심사에 맞춘 수업 커리큘럼 제공이라는 혁신적인 시도가 초창기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 공립학교의 커리큘럼과 매우 동떨어져 실제 그 나이대에 습득해야 할 내용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 학교의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과학 수업에서 교사가 '허리케인에 대해 조사해보자.'고 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베껴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었고, 책 읽기를 하지 않고 태블릿 PC로 오디오북만 듣다가 글을 읽지 못하는 자녀에 대해 몇 번이나 학교측에 상담했음에도 대안이 없어 다른 학교로 전학시킨 학부모는 '아이가 그 학년에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며 학습장애 진단을 받아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공립학교와 알트스쿨에서 모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교사 폴 프랑스는 "처음 알트스쿨에 왔을 당시 개인 맞춤형 학습 방식에 흥미를 느꼈지만, 지금은 해당 교육법에 의문이 든다"며 "알트스쿨에서 진행되던 기술 기반의 동영상 및 기타 콘텐츠 수업이 교육자들의 좋은 교육방식을 훼손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 교육자들도 "영리를 추구하는 알트스쿨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알트스쿨의 교육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죠.
CASE 2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알트스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학교 커리큘럼과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북유럽의 한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지에서 10년 이상 자녀교육을 했던 한 학부모는 이 학교의 교육철학에 공감하여 자녀를 입학시켰던 부모들도 고학년이 되면 기초학력이 미진한 것에 불만을 느껴 인근의 공립학교로 다시 전학시키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직접 경험, 목격하였다는 것입니다.
CASE 3
대기업에 다니다 국내 최고대학의 공과대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미국 유학 출신자에게도 유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프로젝트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연구실에 찾아가면 교수가 적절한 힌트를 주어 학기 수업 중 배웠던 것을 복기하여 지식을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고, 그로 인해 또다른 지적 호기심이 생겨 심화학습으로까지 연결되었던 경험과는 달리, 한국에 와서는 그저 과제만 주어졌을 뿐, 궁금한 부분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것을 주문'받아 질문에 대한 힌트조차 구할 수 없었고, 한 학기동안 교수님의 개입이 거의 없어 학생들은 자신이 그 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것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채로 학기를 마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이 3가지 케이스 모두, 학년초 수업 계획서나 교수학습 설계상에서는 '학습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활동중심의 교육이라 명시되어 있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특정 주제에 관한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것 자체를 역량교육이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인 지식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습득하지 못했음데도 시간에 쫓겨 활동을 위한 활동, 무늬만 역량중심 교육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0년 전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학교의 외국어교육과 커리큘럼 개발 총괄 및 코디네이터(coordinator) 역할을 맡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원어민 교사가 6학년 남자 아이들이 번역기를 대충 돌려 그대로 베껴적으려했던 걸 바로 알아차리고, 저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교사협의회 때 이 사안에 대해 공유하여 후속대처로 팀티칭을 하고 있었던 한국인 선생님과의 협조 하에 다시 지도하여 완벽하진 않더라도, 수업시간에 배웠던 구문과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자기 힘으로 과제를 완수하도록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최고의 교수법』의 저자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무위의 교수법 중 '호모루덴스 교수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생활의 달인 프로에 소개되는 사람들은 모두 일을 놀이로 승화시킨 사람들로, 학생들 역시 공부를 놀이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제대로된 지식의 이해와 활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위는 인위(작위)를 통하여 끝없이 자신을 연마한 학습의 결과로 도달하는 경지라는 표현에 깊은 울림을 느낍니다.
놀이인 테니스 하나를 즐기려고 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무위는 인위(작위)를 통해
끝없이 자신을 연마한
학습의 결과로 도달하는 경지이기도 함을
학생들이 깨닫게 할 필요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있는 학습과 학생의 성장
현직교사를 포함한 교육전문가, 시민기자단이 모여 '역량'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친 좌담회 현장을 소개합니다.
변춘희 (시민기자단)
제가 아는 중학교 교사는 역량이라는 개념으로 학교장이나 동료 교사,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좋다고 했어요. 국어교사가 마을교과서로 과정평가를 하려고 하는데 왜 쓸데없는 걸 하냐는 지적을 피하고, 수학여행 가는 장소에 대해 모둠별 여행탐방 계획서 작성을 수행평가로 할 때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때 무엇이 진짜 도움이 되겠냐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요. 중학교는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역량을 도입하고, 2,3학년에도 이런 시도를 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교사가 많아졌다는 거죠.
현광일 ((사) 마을공동체 연구협동조합 이사장)
역량은 기업에서 특정한 업무를 수행할 때 탁월하게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개념이에요. 이게 교육으로 들어올 때 능력주의를 역량으로 재포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쓸데없는 지식 암기교육에 지친 사람들이 역량이라는 것에 혹했는데, 내용은 없고 결국은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는 거밖에 안 되는 거죠. 역량교육을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활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교과교육 목표도 다 그래요. 학교에서 물총놀이를 했으면 물총놀이를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뭘 배우려고 물총놀이를 했냐는 거예요. 가정환경이 좋은 아이들은 집에 가서 내가 뭘 했는지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후체험을 거치며 내면화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체험이 망각의 쓰레기 더미로 흘러가버리는 거죠. 모든 체험과 경험이 버려지는 거예요. 그 과정까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거죠.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중요한 걸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통합사회, 통합과학의 각 단원에서 핵심 질문과 핵심개념으로 시작하라는 역순서이론이 들어왔잖아요. 여기서 교사가 범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죄악이 있는데 활동을 위한 활동을 하는 거죠. 활동을 했는데 교육목표와 연계가 드러나지 않고 활동을 통해서 새로 만들어진 지식이 과거의 지식과 통합하는 과정이 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거죠. 저는 활동 중심 수업의 위험성을 많이 얘기해요. 아이들이 얼마나 고르게 성장했는지는 고민을 안 해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학습이 일어났는지 확인을 안 하는 거죠.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서울시교육청의 안성맞춤 교육과정에서 놀이학습은 레크리에이션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희하는 인간이므로 그것을 수업에 접목하는 것이 놀이학습이죠. 아이들을 놀게 하고 레크리에이션하는 건 그냥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놀게 할 뿐이고 자기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게 없어요. 이렇게 하신 선생님들이 ‘1학년 때 놀게만 놔뒀던 아이들을 그대로 2학년에 올려보내서 어떡하냐’며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미안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학부모 설문결과도 편안해서 좋기는 했는데 걱정이 된다고 해요. 교육적인 설계와 놀이의 특성을 결합해서 학습하는 것이 본질이에요.
변춘희 (시민기자단)
놀이를 교육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는데 목적이 돼버려서 문제라는 거군요. 저의 경우 아이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수업 전, 중간 휴식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있었어요. 학교에 일찍 가고, 수업 후 한 시간씩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뛰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이라고 하면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성을 가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실에서 수업을 대신하는 놀이는 개념이 다르군요.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체험하고 체험 후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거기에서 무엇을 학습했는지 이런 과정을 자기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지식으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교육이죠.
현광일 ((사) 마을공동체 연구협동조합 이사장)
놀이는 규칙을 잘 지킬수록 더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놀이를 하는 이유가 아이들이 지식에 억눌렸기 때문이라고 하면 학습은 학원에서 받고, 학교에서는 쉬라는 개념이 돼버려요. 역량이라는 개념을 현장의 교사들이 얼마나 현실에 맞게 재맥락화해서 쓰느냐가 중요해요. 이 개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알면 교사가 재맥락화할 때 과잉하지 않고 적절히 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개념을 현장에서 판단할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예요. 듀이가 역량과 교과의 상호작용, 생활 속에서의 활동들을 얘기했던 거와 같아요. 자유학기제의 주제통합 같은 것으로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다 흩어져버리는데 체험이 내면화되는 과정으로 가려면 일정한 집단성이 유지되어야 가능하잖아요.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경우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 없어요. 교사가 아이를 계속 지켜봐야 하고 체험이 교과과정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보고 안내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게 맹점이죠.
시험 같은 걸로 평가할 수 없어요. 학생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는 교사의 언어적 능력이 있어야 해요. 교과의 전문성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묘사하는 능력도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봐요. 학부모도 성적으로 아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파악하는 능력, 소통하고 묘사할 수 있는 언어적 자원을 가지는 게 필요해요. 역량을 공동체가 가지는 문화적 자원으로 보면 보모에게도 소통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거죠.
변춘희 (시민기자단)
교사에게 요구되는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학부모에게도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한희정 (서울 정릉초 교사)
학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거예요. 학교에서 숙제를 내지 말라고 하지만 숙제가 필요한 학생도 있거든요. 학교만 보내면 학교에서 다 해결하라고 왜 가정에까지 부담을 주느냐고 따지는데 아이가 어떤 학습을 하고 있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교사는 누구와 얘기해야 하죠? 학교는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보육까지 요구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말을 부모님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학교에 와서는 친절한 선생님을 원해요. 부모님과 정상적으로 소통해본 아이들은 선생님과도 정상적으로 소통을 해요. 부모가 자기의 말을 안 들어주는 아이는 학교에 와서도 똑같이 해요.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학부모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역량이 교육과정으로 들어올 때 누구한테 유리하고 누구한테 불리하냐를 따져보면,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집의 아이는 부모가 책을 읽어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지식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요. 전환학년을 통해서 한번 놀아버리면 책 읽는 것과 완전히 멀어질 수 있어요.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는 거예요. 저는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지식의 철저한 습득을 강조해요. 한국은 지식교육을 폄하하고 배척하면서 역량이 들어 왔어요. 이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변춘희 (시민기자단)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만이 아니라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각자 해석하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육현장에서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와 교육연구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귀한 시간을 내주신 세 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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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owseouledu.com/2018/03/02.php
개인에게만 오롯이 맡겨져있던 역량의 무게감 덜어내기
『학교교육 제4의 길』의 저자 Andy Hargreeves는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였습니다. 21세기 역량이라 불리는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으며, ‘21세기 역량’ 교육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정치가들이 임기 내 업적을 내고자 학교를 닥달하고 끊임없이 개입하여 교육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우려한다구요.
저 또한 앞서 한 예술가의 예를 들어 의문을 제기한 내용인데, 역량 부족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지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Andy Hargreeves는 역량교육이 사회정의와 불평등 완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도덕성, 윤리성, 격차 완화,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 구축, 환경 문제, 빈곤, 삶의 질 등이 직업세계에서 요구하는 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출처 : Andy Hargreeves『21st Century Skills』)
미국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역시 『역량의 창조』에서 말하는 ‘역량(capability)’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인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글에서 단지 어떤 성별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역량에 큰 차이가 발생함을 이야기하며, 어떤 사회냐에 따라 사람이 내적역량에 맞게 기능할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경제수치만으로 삶의 질을 측정해오던 기존의 경제 접근법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의 발전과 사회정의라고 말이죠. 개인에게만 오롯이 맡겨져있던 역량의 무게감을 이제라도 조금 덜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역량'이라는 단어는 저에게 여전히 무겁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뾰족하게 생각하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량에 대한 저의 불편함이 불편하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바라며..
▶ 더 자세한 내용은 출간될 책(백다은의 교육상상 Reimagine Education)과
원격연수 티쳐빌 www.teacherville.co.kr 에서 추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볼 수 있는 활동자료도 함께 제공됩니다.
참고자료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 함양’에 대한 긴급 문제제기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특별기획 역량, 세상을 살아가는 힘 '역량이란 무엇인가?' (서울지금교육)
T Times '우리 아이들이 기니피그 취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