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 =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여행
나의 천직은 무엇일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가져볼 법한 질문일 겁니다. 천직이란 생계를 위해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는 직업 정도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으로, 자신이 부름받은 분야을 찾은 사람은 일 그 자체에 모든 정열을 쏟아붓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동요를 장난감 피아노로 따라치는 재능을 일찍 알아봐주신 부모님 덕에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때부터 장래희망 란에 항상 ‘피아니스트’를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직에 대한 개념조차 서 있지 않던때였을 텐데도 말이죠.
도에서 옥타브 미까지 닿을만큼 손가락이 길어 피아노를 치기 유리한 신체 조건이었고, 절대음감이 있어 처음 듣는 음악도 듣고 바로 똑같이 연주할 수 있는 건 유일하게 타고난 재능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인의 길을 가는 것을 스스로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학교 음악시간이나 합창반 등에서 늘 반주를 도맡아했고, 콩쿨에서 시 교육감상 전체 대상을 받게 된 이후로 주변에서도 제가 음악을 전공할 거라고 당연하게 여겼고, 친구들은 제 이름을 본따 농담삼아 백토벤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선율로 하루를 시작하고,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며 시공을 초월해 그들과 대화하는 듯한 황홀한 상상을 하며 연주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 시절은 콩쿨을 준비하면서 매일 밤 10, 11시까지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하던 때였는데, 같은 곡을 똑같이 연주하기 위해 레슨받고 연습하는 과정이 기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틈날 때마다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OST, 크리스마스 캐롤 등을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 앞에서 들려주다가 원장 선생님께 불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고, 피아니스트의 꿈은 결국 접게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나 저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반 아이들과 우리반 주제가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들이 직접 지은 동시를 낭송할 때 BGM을 깔아주고, 캐롤이나 만화 주제가 메들리를 연주하며 같이 노래부를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 선망하던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천직’에 가까워지고 있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 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더 잘 맞는 옷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쓴 동화책을 모티프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북콘서트를 진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아빠랑 스위스’라는 곡을 만들고 대한민국 대표 작곡가인 김형석 님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최종 인정받았고 음원으로도 발매하였습니다. 제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도 무척이나 좋아해주었던 곡입니다. 실제 그 곡을 계기로 부모님과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 아빠랑 스위스 (백다은 작곡, 작사)
따끈한 치즈에 풍덩
빵과 고기를 찍어
스위스 퐁듄 요렇게 먹는 거라며
한입 쏙 넣어드릴게요.
동화 속 하이디처럼
물감푼 하늘 달려
스트레슨 솜사탕처럼 녹는
호수마을 보러 가요
꿈 속에 언제나
그린 그 곳에 가면
랄랄랄 라라라 요를레이
스위스 아빠랑 하나 둘셋, 찰칵!
융프라우 정상에 가면
컵라면 만원이나 해
세상에 제일 비싼 금라면을
후후 불어 먹어요.
그 무렵, 어릴 때부터 함께 피아니스트의 길을 준비하던 친구가 독일 유학을 다녀와 독주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죠.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을 걸었다면,
과연 자신있게 천직이라고
만족할 수 있었을까?
만약 제가 음대입시를 거쳐 음악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해 유학을 다녀왔다면, 피아니스트 백다은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친구처럼 유학파 피아니스트는 되지 못했고, 프로뮤지션이라 이름붙일 수도 없지만 오히려 지금을 더 천직에 가까워져가고 있다고 느낀 건 왜였을까요?
비록 어릴 때 선망하던 피아니스트라는 하나의 정해진 모습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동요 작곡가, 스토리텔링 피아노 연주가, 태교음악 연주가, 융합 음악교육가, 북콘서트 기획자, 피아노 유튜버 등을 또다시 꿈꿔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온리원(ONLY 1) 천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그동안은 일직선으로 쭉 뻗은 사다리형 커리어가 성공의 방정식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천직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피아노를 친다고 모두가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 책에서는 단순히 많은 직업 개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N잡러가 되기 위한 모험은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소중한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즐겁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나다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셈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일 새롭게 한뼘씩 자라고 있을 '나만의 천직’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운명이라기보다는, 잘 가꾸고 키워 나가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지은이_백다은
초등학교 교사, EBS 공채강사로 초등 수학, 사회, 영어 과목 방송을 진행했어요. 『내 꿈은 달라』, 『꿈씨앗 파노라마』, 『백다은의 교육상상』, 『인공지능수학 연구소(출간예정)』 등의 책을 썼고, ‘아기 키우는 만화’ 육아툰을 연재하고 있어요. KBS 〈명견만리〉, EBS 생방송 〈부모〉, YTN 〈수다학〉, EBS 〈다큐 프라임〉 ‘글로벌 인재 전쟁’, tvN 창조클럽 199(1회 아이디어 위너) 등 방송과 전국 학교, 도서관, 기업체, 교육부 주최 토크 콘서트, 피아노 북콘서트 등을 통해 미래교육의 나아갈 방향과 아이들의 진로와 교육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어요.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꽃피는 속도와 방법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꿔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분야를 넘나들며 '두근두근 N잡 대모험'에 끊임없이 도전할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