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인공지능은 배움에 열정을 갖거나, 삶을 사랑할 순 없다.
미국에서 로보틱스 전공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기업에 다니다 다시 인공지능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한 신랑은 공부가 취미이고 생활인 사람이다.
“우와, 이게 뭐야?”
책상 위에 올려둔 폰 화면에 그래프와 수식이 자동으로 착착 정리되어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울프람 알파(Wolfram-Alpha), ‘공대생들의 든든한 친구’라는 별명을 가진 이 수학용 앱을 활용하면 다차연립방정식부터 미분, 적분, 극한, 수열, 그래프 그리기 등 웬만한 공대수학을 풀 수 있다고 했다.
학교다닐 때 의미도 모른 채 수학의 정석 예제 문제를 반복해 풀기 바빴는데, 그 문제들을 기계가 해결해주고 있다니.. ‘기계와 인간, 기계와 기계,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시기가 얼마나 더 앞당겨질지가 관건이겠지만.
호기심이 생긴 나는 정말로 제대로 작동하는가 알고 싶어 수식을 입력해보았다. d/dx(x^2sin(x)을 넣고 클릭하는 순간 연산 과정이 step-by-step으로
뚝딱하고 나왔다. 흡사 똑똑한 공돌이의 뇌구조 속 사고과정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울프람 알파의 이사 콘래드 울프람(Conrad Wolfram)은 ‘Teaching kids real math with computers’
제목의 TED 강연에서 ‘컴퓨팅 사고력을 수학교육에
적용하는 4단계’에 대해 소개했다.
1) Posing the right questions 질문만들기
2) Real world math formulation
실제 상황에서 수학문제로 바꾸기 (모델링)
3) Computation 계산하기
4) Math formulation real world, verification
수학적 모델에서 실제 상황으로 전환하고,
원래 문제에 대한 답인지 검증하기
현재의 수학교육은 3단계인 Computation(계산)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의 상황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TV에서 보았던 초등학생 암산의 달인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학교에서도 구구단 19단까지 외웠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복도에서 노래하듯 줄줄 외고 다니던 한 2학년 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를 따로 불러 문제를 내준 적이 있다.
7 x 99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이는 99단은 없다며, 미처 외우지 못해서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단번에 포기했다. 단순히 19단까지 암송했던 그 시간에 제대로 원리를 이해해 "9가 10에서 1이 모자란 수"라는 숨은 의미를 꿰뚫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제대로 원리를 알고 있다면 암기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 그 다음에도 암기가 필요하다면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9는 10에서 1이 모자란 수
아이에게 9단을 아냐고 물었을 때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3곱하기 9를 묻자 바로 27이라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아이에게 다시 풀어서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3 X 9"의 원래 의미는 "9가 3개 있다"는 뜻으로, 이를 "9개의 사탕이 3줄로 놓여 있다"는 걸 교실에 있던 사탕을 이용해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직접 보여주었다.
처음엔 이렇게 쉬운 걸 선생님이 왜 다시 가르쳐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한 줄에 사탕을 9개 대신 10개를 놓고 각 줄마다 1개씩을 뺐다. 결국 "3 X 9"는 "3 X 10 - 3"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아이는 내 의도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몇번 연습을 거듭한 끝에 아이는 시원스레 이렇게 대답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7 X 99"는
"7 X 100 - 7"이므로
"700 - 7"
원주율(파이·π)을 컴퓨터에게 계산해보라고 하면 3.141592653589793… 순식간에 끝도 없는 숫자를 쉽게 산출해낸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에는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런 문제들은 울프람 알파와 같은 기계에게 어느 정도 맡겨도 되지 않을까?
물론 계산기, 인공지능 앱이 다 해주는 시대라도 기본 원리는 꿰뚫고 있어야 한다.
물론 계산기, 인공지능 앱이 다 해주는 시대라도 기본 원리는 꿰뚫고 있어야 한다. 또한 구구단도 살면서 실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크고 난 후 외워두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실용적이다. 하지만 한참 자연을 관찰하고 놀이를 통해 마음껏 상상력을 키워나갈시기에 의미도 모른 채 영혼없이 19단
까지 외우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반 아이들과 “인공지능 시대에 수학 공부를 잘 하려
면 어떻게 해야할까?” 토론했던 적이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것이 최근의 수학교육학에서 말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 좋은 수학적 질문 던지기
- 가족이나 친구에게 설명하기
- 구체적 조작물 사용하기
- 문제를 다르게 표현해보기
- 실제 생활에서의 수학과 연결해보기
- 단순 연산 연습보다는 수학 사고력 키우기
- 자신의 수학 논리를 증명해보기
제 아무리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초연결
시대라 해도 아이들의 말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은 적어도 이렇게 열정을 느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하거나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열정을 가질수도,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