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Piaget) 인지발달단계 중 감각운동기(0~2세(영아기))
영어학을 전공한 지인으로부터 언어학자들의 로망이 ‘자기 아이를 키우며 언어 습득을 연구하는 것’이라 들은 적이 있다. 교사나 교육학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지켜보고 그 경이로운 과정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10대 때부터 가졌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더욱 공감했었다. 2018년 10월에 태어나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대학교에서 배웠던 교육이론,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 등을 접목해 교육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육학 개론을 배우며 가장 궁금하고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대상 영속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Jean Piaget)가 인지발달이론(Piaget's theory of cognitive development)을 통해 제시한 개념인데, 그 역시 1925년 첫딸 재믈린의 출생 후부터 아이가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인지적 행동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각자의 속도는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아이에게는 선천적으로 정해진 사고력 발달 시간표가 있다는 이론으로, 그는 이 인지발달과정을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조작기, 형식적조작기 4단계로 분류했다. 그 중 첫번째 감각운동기(0~2세(영아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대상영속성’이다.
‘대상영속성’은 대상이 보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대상영속성은 생후 6개월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감각운동기 후반부(생후8~24개월)까지 점차적으로 완성되어간다. 그러고보면 2개월 무렵 갓난 아기 때에는 가만히 바운서 위에 누워서 종일 모빌만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뽀뽀세례를 퍼붓던 아빠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라도 알아채지 못했었다. 이는 대상영속성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개월차에 접어들면서부턴 하루종일 엄마와 아빠가 어디로 가나 그 움직임을 살피느라 부쩍 바빠졌고, 엄마 껌딱지 롤을 충실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9개월에 접어든 지금은 아주 꼿꼿한 자세로 베이비 가드를 잡고 일어서서는 안아줘, 놀아줘, 간식줘 훈수라도 두듯 옹알옹알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주방으로, 화장실로, 다른 방으로 이동하더라도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아빠와 엄마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차츰 깨달아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 6개월 정도에 실제로 해보았던 인형실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 때는 아이가 갖고 놀던 인형을 갑자기 숨겨버려도 이상하게 그것을 애타게 찾지 않고, 금세 다른 장난감에 관심을 두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감각과 운동능력에 의존할 시기여서 그것이 감지될 때에만 갖고 놀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인형으로 금세 관심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고나서 사라졌던 인형을 다시 눈 앞에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아이는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한 듯 신기해하며 인형을 만지려들었다.
하지만 9개월에 접어든 지금은 그 때와 달리 문 뒤에 숨겨둔 토끼 애착인형도 자기가 직접 문을 열어 발견하고 좋아하는가하면, 장난감 우체통 안에 숨겨둔 크롱 미니어쳐 역시 직접 문을 열어 찾아낸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의 안경을 갖고 놀길래, 위험하다 싶어 살짝 이불 밑에 숨겨두었는데, 그걸 금세 찾아내서는 놀고 싶어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피아제의 사고력 발달 시간표에 새삼 놀라게 된다.
첫돌 이전 아기 앞에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엄마 없다!”하다가 "까꿍!"하며 나타나는 까꿍놀이(peekaboo)가 바로 같은 원리다. 얼굴을 가리기만 해도 엄마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아기는 잠시 사라졌던 엄마가 다시 나타나니 그 모습을 보고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영속성의 발달 정도를 살펴보면 웃음을 터뜨리는 이 아기는 아직 완전히 대상영속성이 발달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얼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손 뒤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는 아기라면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의 손을 치우는 식의 반응을 보일테니 말이다. 반면, 대상영속성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에는 우리 아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었듯, 놀고 있던 장난감이 보이지 않으면 없어진 것이라 여긴다. 딴곳으로 시선을 돌려 금세 다른 놀잇감을 찾는 식의 양상을 보인다.
<대상영속성 발달단계>
[0~2개월]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거나 딴 행동을 한다.
[2~4개월]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지만, 능동적으로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4~8개월] 주변의 물체가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8~12개월] 사라진 대상을 능동적으로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장소에서만 찾는다.
[12~18개월] 자신이 볼 수 없는 공간에서 이동한 대상은 찾을 수 없다.
[18~24개월] 눈 앞에 없는 사물을 찾을 수 있고, 자신도 독립된 하나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까꿍놀이 놀이방법 및 대화법 Tip>
까꿍놀이는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베이비 가드나 문 뒤에 숨어 있다가, 혹은 손이나 가림막, 보자기, 부채, 인형 등을 활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아이와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밝고 경쾌한, 혹은 재미있는 목소리 톤으로 아이를 웃게 하는 일일 것이다.
아빠(엄마) :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ㅇㅇ아, 아빠(엄마)없다~ 어디있게?
아기 :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아빠(엄마) : 까꿍! 여기 있었지
무척 간단한 놀이지만, 숨어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양육자의 얼굴을 보며 아기는 대상영속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 이 놀이는 아기와의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데, 시야에서 양육자가 사라져도 그 존재를 여전히 신뢰할 수 있게 하여 발달과정상 겪게 되는 격리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게 한다. 더 나아가 양육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발달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이처럼 첫돌 이전에 엄마랑 하는 ‘까꿍놀이’는 감각운동기에 획득하여야 할 결정적 과업인 대상영속성 발달과 애착 형성 등 인지, 정서 발달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hildren need the freedom and time
to play. Play is not a luxury.
Play is a necessity.
Kay Redfield Jamison